아이의 탄생 비화
서른셋.
일 년 남짓 연애한 남자와 결혼식 날짜를 잡아두고 나는 정말 무서울 것이 없었다.
마음속에는 '이 빌어먹을 회사를 그만둘 수만 있다면...!'을 머릿속에 수십 번 되뇌며 겁도 없이 결혼식 2개월 전에 나는 임산부가 되어있었다.
어찌 보면 남편도 예상하지 못했던 나의 치밀하지만 빈틈이 한껏 보이는 계획하에 생긴 아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얼마나 골 때리는 짓이었는지 뒤돌아보면 서른셋이나 먹고도 철이 덜 들었구나 싶다.
아무튼 한방에 생겨버린 아이 덕분에 나는 결혼을 하고 약 6개월 만에 출산휴가에 들어갈 수 있었다.
12월 초 출산예정일을 받아놓고 출산 전 한 달간의 출산휴가를 마음껏 누려보고자 했는데 너무 활발하게 돌아다닌 덕분인지 휴가를 시작한 지 보름 만에 양수가 터져 11월 중순이 조금 지나 아들을 낳게 되었다.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는데 아들을 키우는 89개월 동안 뼈저리게 느낀 것이 있다면 바로 '육아란 상상하지도 못할 엄청난 희생'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이걸 서른세 살의 내가 알았더라면 이렇게 겁도 없이 아이를 낳을 수 있었을까..?
게다가 장애를 가진 아이라니....
아이는 목을 가누고, 뒤집기를 하고, 앉기, 기기, 서기, 걷기 등 모든 과정을 일반 아이들과 다름없이 개월 수에 맞춰 모든 미션을 패스해나갔었는데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면 걷지도 못하는 생후 8개월 아기가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안을라치면 두 다리를 힘껏 뻗어 제자리에서 무한대 점프를 즐겼다는 점이다.
걷기 시작하자 아이는 땅에 내려놓기가 무섭게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탐색하기 바빴다. 물론 위험에 대한 인지는 거의 없는 상태여서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아이를 쫓아다니느라 출산으로 인해 찐 살이 그 시기에 다 빠져버렸을 정도였다.
처음 보고 만나는 것에 대한 자극이 얼마나 크게 다가왔을 것인가..?!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화장실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육아를 시작한 지 2737일 동안 나는 나 자신으로 살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삶이 그리 우울하지만은 않았던 것은 아이는 내가 노력해주는 만큼 느리긴해도 제 나름의 속도로 성장해주었고, 9살이 된 지금 너무나도 밝고 예쁘게 커주고 있기에 나는 힘든 육아에 크게 지치지 않았던 것 같다.
힘들어 지칠 때면 남편에게 말도 못 할 히스테리를 부리기도 했지만 (그런 나를 이해해주고 잘 받아주는 남편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왕 해야 하는 일이라면 깊게 생각하지 않고 꿋꿋하게 해내는 성격이라 하루 3~4개씩 잡혀있는 아이의 치료와 수업 스케줄을 다 소화할 수 있었다.
물론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혹은 그 이상의 기간이 걸릴지도 모르겠지만 기꺼이 버틸 수 있는 게 부모의 마음이 아닌가 싶다.
겁도 없이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책임은 오롯이 내 것이기에 꿋꿋하게 버텨내기로 마음을 다잡아 본다.
-독박 육아가 너무나도 힘들었던 어느 날의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