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이트서퍼 Feb 21. 2022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상실의 순간 왜 나는 슬프지가 않았을까?

그렇다.

내가 이토록 울지 않는 이유는 그 날 새벽, 핸드폰 벨소리를 무음으로 해두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벨소리를 무음으로 해둘 경우, 진동이 울리는 아이폰의 옵션이 어느 날인가부터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데 이를 방치하여 착신시 진동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음에도 아무 생각이 들지 않은 이유는 거기에 있다.

마땅히 크게 슬퍼하며 눈물을 흘려야 할 때에, 상실의 상황을 모르고 자고 있었으니까.

그게 아니라면 무엇인가?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그 당연한 명제에 누가 반박하겠는가?

망자가 있으면 탄생이 있는 법. 그 당연한 이치에 그저 순응할 뿐 굳이 울고 불고 할 필요가 없다.

우리 할아버지는 92년을 사셨다.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가셨고, 그 꼿꼿한 삶을 꿋꿋이 누리고 가셨다.


그래서 나는 울지 않은 것이다.

더 납득이 간다.


장례식장은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축소판이다.

설날이나 추석, 누군가의 생신에는 저마다 온갖 심오한 핑계를 대며 빠질 수 있지만 장례식장은 그렇지 않다.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용납하기 어렵고, 본인상이 아닌 이상 웬만하면 와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평소라면 적당한 이유와 눈감음 속에서 피할 수 있었던 만남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런 만남들은 장례식장을 상실의 슬픔보다는 격조했던 시간을 따라잡는 장소로 변모시킨다.


숨막히는 호구조사 시간, 한강의 기적을 이룬 단군의 후손답게 여느 때와 같은 채찍과 채찍, 당근을 닮은 채찍의 순간이 찾아온다.

아 여기 무슨 자리의 누구십니다. 아 누구 둘째 딸은 이번에 무엇이 되었다면서요? 아이고 대단하네~ 그런데 결혼은? 눈이 너무 높은거 아니야?

너는 살 좀 찐거 같은데? 저번에 봤을 때는 날씬했는데~ 예전엔 참 예뻤는데 말이야~


피할 수 없다. 마주해야 한다.

회사였다면, 아니 지금 냉장고에도 인터넷이 되는 이런 세상에 이런 말을 한다고요?

헌법 수호 의무 아래에 법을 공부한 사람들이 그런 언행을 일삼는다고요?

라는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는 멘트가 아무렇지 않게 밥상을 뛰어다닌다.


다시 한 번, 그래서 나는 울지 않은 것이다.


정말 왜일까.

자주 만났고, 가깝게 지내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눈물은 나오지를 않고,

그저 철 없이 장례식장 한 켠의 온돌방에 누워 허리가 아프다며 등을 지졌다.

사람이 어떻게 문어숙회에 수육, 육개장만 먹냐고, 나는 다른 것을 먹고 싶다며 읍내로 나가 밥을 사먹는 한 편,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싶다며 할머니 집으로 돌아가 잔 것은 덤이다.


나 혹시...소시오패스인가?


나는 할아버지의 시신이 담긴 관을 묻을 때에도, 제사를 지낼 때에도, 산에서 하염 없는 시간을 대기할 때에도 그저 발이 너무 시렵다는 생각만 하였다.

고모할머니는 너무 서럽게 우셨는데.


다음날 집으로 돌아와 주말을 정리하면서도, 나는 멀쩡히 p와 맛집을 찾아다니고

맛있는 커피집이 생겼다면서 그저 좋아하였다.


통장에 들어온 조의금을 기억했다가 이 다음에 꼭 돌려드려야겠다는 생각에 더 마음을 쏟으면서...


그런데 왜일까.

회사에 출근하고, 평소와 같이 메모를 쓰며 허덕이는 시간을 보냈는데. 처음으로 출근하신 부장님께 직각으로 인사하고 남은 업무상황을 유창하게 설파하여 혹시 육사를 나왔냐는 평도 들었는데.

잘 다녀왔냐는 동기들의 말에 별안간 알 수 없는 눈물을 만나고 말았다.

왜 그 때 울컥했는지 알 수 없다.


아아.


리트 시험에 지치지 말고 힘내라며 흰 봉투에 편지를 써주고, 보청기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아 항상 두 번 나를 반기고, 우리 누구 왔냐며 환하게 웃어주던,


나에게도 하나 뿐인,

할아버지가 떠났다.

조부모님 중 할머니만 남은 세상이, 내게로 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