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과 가족이 함께 살아났다.

사랑과 리듬의 회복, 그리고 공존.

by 빛율

연주대에 오르며 사랑의 회복을 간절히 기도했다.

모임을 시작하고부터 자꾸만 나와 너무 다른 그가 밉고 답답하고 화가 났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일을 이해해주지 않아 서운했다. 모임이 나아갈수록 부딪히고 주저앉았다.


공들여 힘들어 일구어나가는 모임에 주말이면 그를 데리고 나가는 일은 이른 겨울잠을 자는 곰을 굴밖으로 꺼내는 것만큼 힘이 들었다.


극 E와 극 I. 나가서 사람에게서 에너지를 얻는 나와 혼자 쉬면서 에너지를 얻는 그. 주중엔 내내 혼자인 나와 직장에서 내내 사람에 시달렸을 그. 이해하니 쉬라고 해도 자석의 N극과 S처럼 그는 관성처럼 우릴 따라나섰다.


우리가 그리는 주말은 서로 달랐지만 같은 건 서로 함께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사랑과 책임감이 서로를 더 힘들게 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아이와 아내를 위해 때로 꾸역꾸역 모임에 함께하는 그의 모습. 모임이 끝나면 아프거나 피곤함을 토로하는 그. 모임 운영과 사람들을 살피는 일, 페이퍼 워크들까지 신경 쓸 일도 많은데 내가 기대하던 지지나 응원은커녕 내편이어야 할 남편이 자꾸만 방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그의 모습에 힘이 빠지고 지치고 서운한 나. 가족보다 모임을 먼저 우선순위에 둔다며 화를 내는 그. 아이와 우리를 위한다며 시작한 모임이 우리 가정에 일으킨 파장은 꽤 크고 불균형했다. 한 번 시작하면 제대로 해야 하고 늘 쉼 없이 움직여야 즐거운 나. 꼭 해야 하는 일은 최대한 빨리 쳐내고 나머지 시간엔 거의 움직이지 않는 그.


내가 무슨 일을 벌인 거지?


다 내려놓고 싶은 순간들이 많았다. 속 쓰린 일들이 있을 때나 재미나 의미를 찾지 못할 때. 이 모임이 뭐라고. 아이를 원에 보내놓고 내내 모임과 관련한 일만 하고 있는 건지 현타가 올 때가 있다. 이토록 소중한,

생애 단 한 번뿐인, 다신 없을지 모르는 마지막 육아휴직 기간을 이렇게 쓰는 것이 맞나. 이 모임의 의미가 내게 무엇이 건데. 가족이 먼저다. 모임은 내 가족을 향한 사랑의 불쏘시개일 뿐. 가족을 향한 일, 집안일에 소진되지 않기 위해 엄마는 연료가 필요했다. 그 연료가 우리 가족을 까맣게 태우고 있는 줄을 알았지만 이제와 멈출 수는 없었다.


회복해야 했다.

우리 가족의 리듬.


우리 가족만의 사랑스러운 리듬을 기억한다.

주말 아침이면 요리를 하며 하루 세끼 두 여자를 먹이는 일을 즐기는 그. 좋은 음악을 같이 듣고 몸으로 놀고 책도 읽으며 주말 내내 딸과 시간을 보내기를 좋아하는 그. 하루 중 잠깐 가까운 공원이나 단지를 딸과 산책하는 일을 즐기는 그. 그가 가진 리듬은 소박하고 정갈하며 충분히 아름다웠다. 평화 그 자체.


우리 가족의 리듬을 해치지 않으면서 내게 에너지를 주는 이 모임의 리듬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1. 모임 횟수 조정 대신 모임 운영 방식 변경 : 진정한 품앗이 모임으로!


월 2회 토요 모임을 월 1회로 줄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대다수가 2회를 유지하기를 바랐다. 그만큼 좋은 모임이 되고 있다는 뜻이니 감사했다.


그래서 월 1회 모임만 내가 리딩하고 나머지 1회는 모임원들이 돌아가면서 각자의 재능을 살려 이끌기로 했다. 진정한 품앗이 모임의 구조가 드디어 만들어졌다.


6개월간의 스케치가 현실이 되기까지 혼자 얼마나 기다리고 기대했는지. 나를 이해하고 응원하며 지지해 주시는 회원분들이 너무나 감사했다.


주말 모임은 내가 아이와 단둘이 나가고 그는 쉬게 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가고 싶다고 하기 전까진 그만의 시간을 주기로. 우린 서로 다른 방식으로 충전해서 만날 수 있다.


2. 가정보육, 아이와 일상 여행 시작


아이를 보내놓고 고작 하는 일이 온통 모임 일이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와 하루의 시간을 온전히 함께 보내며 다시 서로 깊이 연결되고 느끼며 서로의 리듬이 맞춰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고요와 행복. 아이의 빈자리를 나는 모임으로 메우고 있었다. 밑 빠진 독이 아닌가. 내게 아이만 있으면 종일 맛있게 먹고 살부대 끼며 까르르 웃고 노는 것 외엔 아무것도 생각할 일이 없었다. 폰을 볼 이유도 여유도 없다. 아이도 나도 안정감을 느끼며 피로하지 않았다.


단유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27개월 아이는 요구하는 울음을 운다. 갓난아이의 살려달라는 사정없는 울음은 사라졌다. 이제는 빠빠이 할 시간이라고 오래도록 충분히 설명하면서 천천히 점진적 단유를 해나가고 있다. 아이와의 충분한 시간과 교감, 자연에서 보내는 편안한 시간, 아빠와 아이와의 온전한 저녁과 주말 시간이 도움이 되었다.


보내고 싶지 않지만 보내야 한다. 우리는 서로 그렇게 느끼고 있다. 작별할 때인 줄을 알지만 조금만 더 붙들고 있고 싶다. 아이는 원에 가기 전, 돌아온 직후 항상 오래도록 내 젖을 물고 안겨 있는다. 그게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회복하며 회복하는 우리만의 사랑의 시간이다.


멀리 제주 여행을 갈 필요가 없었다. 거창한 단유 여행은 필요하지 않았다. 세상 모든 게 처음인 아이와 함께라면 어디든 새롭고 아름다울 수 있었다. 우리 동네부터 매일을 여행하듯 보내보기로 했다.


3. 새 회원 모집 재개!


연회비 납부, 품앗이 재능 기부 및 나눔에 동의하며, 영어만으로 대화가 가능한 중급자라는 조건이 맞는 회원을 사전 인터뷰를 통해 한 달에 한 명 정도 단계적으로 다시 모집해 나갈 계획이다. 열린 모임이 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새 멤버가 주는 열정과 에너지로 모임에 활기가 더해지리라 기대한다.


이 글은 모임 일기다. 모임에 대해 가감 없이 기록한 모임 장부에 다름없다. 내 마음의 들고나감이 기록되니 모임 가계부라 해도 되겠다. 이 글은 나의 오늘을, 나의 작당을 의미 있게 남기고자 함보다 다만 쏟아내고 나아갈 힘을 얻고자 함이다. 우리 모임을 향한 나의 간절한 기도이며 부끄러운 고백이다.


가족 모임을 꿈꿨던 이유는 가족 안에서 아이와 부모가 언어적으로 함께 성장하는 공통의 경험을 나누며 시너지를 얻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아빠들은 주말 사교에 어려움과 피로를 보이는 듯 보였다. 내가 만든 모임이 우리 가정뿐만 아니라 모든 가정의 육아와 일상에 플러스가 되기만을 바란 것은 어쩌면 지나친 이상이고 욕심이었다. 득이 있으면 실도 있다.


중요한 것은 가장 소중한 것을 잊지 않는 일이다. 내가 기획한 영어 캠프닉에 수많은 가족이 함께 와 시간을 보냈다. 많은 어른과 아이들의 리듬을 다 고려할 수는 없었기에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무리가 되었다. 나는 또 그런 것들에 오래 마음이 쓰였다.


중요한 질문이 계속 나를 괴롭혔다.


'나는 내 아이가 바이링구얼로 크길 바라는가?


요즘 내 대답은 '물음표'에서 '아니요'로 바뀌었다.


컬컴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영유 출신들은 확실히 발음이 남달랐지만 영어 조기교육 탓에 영어를 싫어하는 경우가 많았다. 잘하지만 싫어하는 아이러니.


보통은 한국인의 소울로 한국스러운 대화를 단지 영어로 할 뿐인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가끔 영혼까지 외국인인 것 같은 한국인을 만나면 왠지 엄청난 거리감을 느낀다. 조크부터 가치관이나 즐기는 문화가 나와 완전히 다른 세상 사람인 것 같은 느낌. 바이링구얼 육아를 하며 외국의 문화를 일찍 받아들이고 좋아하던 아이가 사춘기가 되어 K엄마와 대화가 안 된다며 부딪힌다는 사례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내 아이가 한국인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열린 사고와 태도, 뛰어난 언어 능력을 가진 한국인으로 살면 좋겠다. 나는 그런 생각이다. 경계에 있는 사람이기보다 한 곳에 터를 잡고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요즘은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이 모임에서 나는 '바이링구얼'이라는 환상 어린 언어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베싸님이 그러하셨듯이 '영어 육아'라는 말만 사용한다.


'가장 중요한 건 밥보다 애착이다.'


독서 모임 벗이 나눠주신 그 글귀에 무릎을 치고 가정보육 주간을 시작했다.


아이와 나, 우리 가족의 애착과 건강한 리듬 생활의 회복. 모임의 활용과 공존. 무엇보다 엄마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나는 오늘도 힘껏 하루를 사랑으로 채운다. 엄마가 행복해야 온 가족이 행복하다. 엄마가 건강해야 온 가족이 건강하다. 그건 참말이었다.



keyword
이전 13화금기를 깨다 "Breaking the Tab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