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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율 Dec 09. 2023

서운한 건 사실이야

사랑은 늘 도망가

아가 너를 위해 무슨 시를 들려줄까
아가 너를 위해 무슨 노랠 들려줄까
이 세상 모든 꽃들이 널 위해 피어나고
이 세상 모든 별들이 널 위해 빛나는 걸
-백창우, 음악태담 중에서


이 노래를 부르며 몸을 쓰다듬어 주면

잠자코 가만히 있다가

네가 울지도 않고 스르르 잠드는

아름다운 밤, 감히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 말할 수 있을,

나만이 아는, 꽁꽁 싸두고 싶은 시간


9개월 아기인 네가 말이야

다 알아듣고 다 느끼고 있다는 걸

내가 스르르 잠이 들면 너도 잠이 온다는 걸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는 걸

엄마가 거짓으로 조바심으로 너를 재우려 하면

너는 기어코 자지 않고 울거나 뒹굴거리거나 침대 난간을 잡고 서서

한 시간이고 그렇게 보낸다는 걸

엄마는 알아


네 앞에서 사람들과 주고받는 얘기를 다 듣고는

엄마가 너 때문에 힘들다는 얘기를 하면

속상해서 울거나 보챈다는 것도 알아


핸드폰 없이 너와 온전히 연결된 순간들이

내 삶에서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운 날들이야


물론 요즘 가끔씩은 미워지려 하기도 해

네가 죽을 안 먹으려고 입을 꾹 다물고 고래를 돌리며

숟가락을 집어던질 때,

낙하 실험을 하듯 일부러 음식도 숟가락도 물컵도 그릇마저 떨어뜨릴 때,

기저귀를 갈거나 로션만 바르려고 하면 재빠르게 기어가

멀리서 나를 보고 씩 웃으며 나와 술래잡기하려 할 때

너는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기어 다니는 9개월 아이임에 틀림없어.

문화센터 수업에서도 엄마에게서 멀지 감치 떨어져 있는 보기 드문 아이라는 것도!


안정 애착 때문이라지만

서운한 건 사실이야


그러다가 또 엄마만 졸졸 따라다니며 해벌쭉- 웃고

엄마아빠만 보면 강아지처럼 바닥에서 다리를 파닥거리며 댕댕거리고

엄마가 조금만 장난을 쳐도 까르르 어린이 같은 웃음소릴 내며 웃는 너를

어찌 오래 미워할 수가 있겠어

미움보다 사랑이 더 오래오래 함께하는 날들이 되었으면


오늘도 많이 미안하다 말했지만

내일은 고맙다 사랑한다 멋지다 기특하다 소중하다 그런 말들을 더 많이 하는 날이 되기를 기도하는 밤.


-너와 한 시간 반 동안 뒹굴며 등 대고 자기 수면의식을 끝내고

평화롭게 혼자 등을 대고 엄마 옆에 꼭 붙어 잠든 너를 두고 나와 쓰는 엄마의 일기


*이 글을 쓰고 얼마 후 깨어서 젖을 조금 물다 다시 잠이 들었답니다. 아는 거죠.

엄마가 자랑삼으면 아가는 청개구리처럼 군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꽁꽁 싸매둔 아름다움들이 잊힐까 두려운 엄마는 자꾸 이 금기를 어기고야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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