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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율 Dec 19. 2023

하얀 눈이 내리고 네가 내 눈 끝에 앉았는데

눈 내리는 날 잠든 너와 함께 눈을 맞으며

아기가 투레질을 하면 비가 온다는 옛말을 엄마는 네 덕분에 완전히 믿게 되었어. 

네가 이상하게 푸푸 거리는 날에 꼭 비나 눈이 오잖아 이렇게! 신기해. 

아기는 자연에 가까운 존재인가 봐. 

맑아서 더 잘 보고 느끼는 것들이 있나 봐. 

그래서 자주 너를 신이라고 느껴. 

네 맑음이 나를 관통해. 

꼭 나를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단 말이야. 


눈이 참 예쁘게 와. 

너와 함께 맞는 눈이 문화센터 수업에서 맞던 비눗방울보다 오백배는 예쁘네. 

오는 길 차에서 세상모르게 잠든 너를 안았는데 왜 오늘따라 내려놓고 싶지가 않은 걸까. 

안아재우지 않으면 자지 않고 내려놓기만 하면 깨서 이렇게 안아재운 날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네가 벌써 이렇게 커서 밤잠은 마사지하며 자장가만 불러주면 혼자서도 잠들고. 

자다 깨서 울다가도 스스로 잠드는 걸 보면 참 시간이 약이구나 싶어. 

그러니 네가 지금 내 젖을 물어야 잔다고 해서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까? 

육아서를 보다 보면 엄청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 같아서.. 

잊거나 혹은 실천하거나. 하나만 하면 되는데. 

실천이 안 되니 불편해져서 자주 잊었더니 벌써 돌이 다 되어가다니 정신이 번쩍 들어. 

너- 잘 자라고 있는 거지?

안면변형이니 치아우식증이니 수면장애니 비만이니 그런 무시무시한 단어들과는 별개로 

우리 딸, 건강하게 잘 크고 있는 거지? 


너랑 함께 보내는 이 시간들이 참 좋아. 

단둘이 있는 하루하루가 소중해. 

며칠 전 휴직연장을 하고 돌아오니 더욱이 그런 걸까. 연말이라 그런 걸까. 오늘 너와 함께 식당에 가서 먹은 그리운 베트남 분짜와 파인애플 셔벗이 너무 맛있어서일까. 눈이 로맨틱하게 내려서일까. 쇼핑몰에서 들려온 크리스마스 캐럴 때문일까. 네 돌잔치를 준비하며 한 해를 보내고 있어서일까. 네가 오늘따라 더 예뻐서일까. 


그게 뭐든.

네가 그 무엇보다 따뜻하고 몽글하게 사랑을 가르쳐주고 있어 내게. 

사랑해. 사랑하고 있어.

아직도 내가 엄마라는 자각은 크게 들지 않지만 

그냥 너라는 존재가 내게, 우리에게 왔다는 거, 가족이 되어가고 있다는 거, 점점 더 소중하고 특별해지고 있다는 거, 네가 못 견디게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는 거. 그런 건 확실히 알겠어.


엄마가 되어가는 중인 나와

자라는 중인 너와

사랑하는 중인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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