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덟 번째
아침에 일어나 보일러를 '목욕'으로 바꾸고 물을 틀었는데 계속 찬물만 나온다. 그것도 차가운 물. 다시 옷을 추려 입고 나가보니 보일러에 'Er 01'이라는 문자가 뜬다. 이건 딱 봐도 에러코드다. 다시 켜면 괜찮겠지 하고 기다리는데, 여전히 찬 물만 나오더라.
늦어도 9시에는 집에서 나가야 한다. 보일러를 켜다 꺼다를 반복하다 보니 이미 8시 40분. 오늘 출근은 택시를 타야겠다 결정하고,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커피포트를 한번, 두 번 끓이고. 찬물과 뜨거운 물을 섞어서 머리를 감고. 다시 한번 뜨거운 물과 찬물을 빙빙 돌려 섞었다. 그러다 보니 이대로 물놀이하다 거실에 앉아 책 읽다 점심 즈음 출근하고 싶었다.
샤워기로 몸을 세척하는 느낌이 아니라 조금씩 몸을 닦아 내는 느낌이 좋더라. 모든 걸 천천히 하고 싶어 졌다. 그래서 여유 있게 몸을 닦아내고 9시 25분 즈음 집을 나섰다. 보일러가 고장 났고 20분 정도 회사에 지각했지만, 꽤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