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람들 #9. 미래를 함께 그렸던 너와의 이별을 통해 깨달은 것들
이 멋진 옥탑방에 살고 있는 아이는 알고 지낸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참 착한 아이이다. 요즘 아이같지 않게 다른 사람을 많이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 줄 아는 따뜻한 아이인 것 같다. 요즈음 그 아이가 이별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
오늘 친구와 그 아이의 옥탑방에 찾아갔다. 착한 성격에 계속 괜찮다고는 하지만,
그 아이 표정을 보니 난 또 꼰대 같은 말을 꺼낼 수 밖에 없다.
마음 아프지만 이 반복적인 꼰대 같은 말이 사랑과 이별 충고에는 어김없는 정석이다.
"야! 좋은 것만 같이하려는 건 짝꿍이 아니야"
"인생의 굴곡을 함께 견딜 사람을 만나야지"
"관계가 끝난다고 네 미래가 없어지는 건 아니야"
금방 정신을 차리고 있는듯 아직 반은 못차리는 듯한
그 아이를 달래고 싶은 마음에
급작스러운 고해성사라도 하듯 내 과거를 뱉어버렸다.
나도 누군가와 미래를 그려본적이 있어.
헤어질 때는 엄청 미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헤어진 사실보다
그와 함께 그렸던 미래가 무너진 것에 분노했던 것 같아
함께 미래를 그린다는 건 그 과정은 참 환희롭지만, 그 꿈과 그림이 무너졌을 때 찾아오는 아픔은 온 우주가 무너지는 것 같은 고통을 동반하니까.
노희경 작가님의 드라마 <디어마이프렌즈>에는 고현정과 고두심이 모녀로 나온다. 그리고 그 고현정의 연인으로 조인성이 나온다.
사고로 후천적 장애인이 된 조인성을 사랑할 수 없는 고현정. 어렸을 적부터 장애인은 안된다는 엄마의 말 사랑하는 엄마의 말을 외면 할 수 없다. 그래서 결국 이별을 택했다.
그 후, 고현정은 엄마 고두심에게 끔찍하게 소리치며 분개한다. 마치 자신의 비겁한 선택인 이별의 모든 고통이 엄마탓인냥 그렇게 소리 지르는 장면이 있다.
그런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나는 심지어 이별이 있은 몇 개월 후, 몇년 후 까지도 엄마 앞에서 울며 소리치기를 반복했다.
"전부 다 엄마 탓이야! 엄마는 나를 지키려 했지만! 마음대로 하게 냅뒀어야했어! 난 죽겠어! 몇 달을 울기만했어! 몇년 째야!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 도대체 나한테 왜그랬어! 왜!"
(고현정의 독백 중)
연하(극중 고현정 연인 조인성)와의 헤어짐이 누군가의 탓이라고 해야만이
그렇게 해야만이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동생 위로를 하려 시작한 말 끝에 내 과거를 회상에 빠져 그 아이의 옥탑방 마당에 서서 멍하니 서울을 바라본다.
한양이라 불리던 지금의 서울도 숱한 변화를 경험했다. 사람도 도시도 존재하는 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나 역시, 함께 미래를 그렸던 당신과의 이별이라는
그 거대한 변화를 통해 깨달은게 두가지 있었다.
혼자였다 함께였다 혼자이지만
이전의 혼자일 때 와은 전혀 다른 혼자이다.
그 때 사랑해줬던 당신이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다는 걸 안다.
덕분에 이젠 내가 사랑할 사람의 과거까지 직면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래서 난 이제... 몇 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이지만,
이제는 그 사람을 길에서 다시 마주쳐도 이제 웃으며 인사 할 수 있다.
결국 꼰대 같지만 해줄 수 밖에 없는 말 한 가지 뿐이네.
우린 또 ... 참 뜨거운 시간을 지나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