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번째
오빠와 제천에서 무성영화를 볼때 즈음 가을이 막 시작되었던 것 같다. 한 달이 겨우 지난 우리. 8년 만에 갑자기 만나 충돌사고처럼 사랑에 빠진 사이라 하기엔 마냥 뜨겁지만도 않았다.
뜨거운 여름바람이 적당히 섞인채 가을을 맞이하는 이 하늘처럼 높았지만 깊었고 무르익는 빨강 같았다. 그날 제천 하늘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더라. '여름 지나 매해 맞이하는 가을인데. 서른해를 넘게 보아도 매번 설렌다. 이 하늘 우러러 보는 마음처럼.'
오빠의 애정은 지나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보다, 다가오는 것에 대한 공포보다 설레임이 더 크게 만든다. 다만 앞으로 흐려지고 왜곡되어버릴 내 기억을 막을 길이 없어서. 이 시간을 기록하고 싶다.
꿈만같은 가을이었다. 그리고 어젯밤부터 느껴지는 차가운 바람에도 설렌다.
오빠와의 가을을 꾹꾹 눌러담아 손 잡고 겨울로 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