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7일 토요일
막달에 접어드니 속이 좋지 않아, 태동과 함께 아침이면 여전히 눈이 떠지네요.
덕분에
오늘 아침에 말씀을 듣고 묵상을 하다가 뒷목을 치는 말들에 또 끄적거립니다.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현학적이고 고상한 척하는 것도, 도덕적인 것도 체면을 따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더 처절하게 엉망진창인... 나만 아는 내 속을 다 묵상과 기도를 통해 꺼내놓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 지질함과 처절한 과정을 통해 언젠가는 고상한 사람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 고상함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아이가 태어나기까지, 짧으면 3주 길면 5주 정도 남은 것 같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막연하고 앞이 점점 까마득해지지만, 이 막연함에 대해서 묵상해봤습니다.
분명 처음 맞닥뜨리는 상황 속에 속상하고, 화나고, 무기력하게 느껴지고 온갖 감정들이 밀려오겠죠.
근데 더 본질적인 사랑과 관계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이 고통과 지질한 울음들이 오히려 더 당연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원래 사람은 지질하고, 나만 아는 나는 그 속이 더 끔찍할 때도 많죠.
이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더 좋은 엄마이자 사람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출산 전까지는 이런 묵상의 시간을 더 깊고 길게 갖고 싶습니다.
만날 아이에 대해, 나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내 안에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 고상한 척하는 마음...
이 밑바탕에 깔린 모든 열망을 바깥으로 다 꺼내놓고 잘 분별하고 정리해야만이
그래야만 그나마 순수함에 가까운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지금은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한 달 뒤면 알게 되겠죠.
내가 가장 덜 섞인 상태로 바다가 원하는 맑은 사랑을 주고 싶은데,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