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중얼중얼

화를 잘 풀어내고 싶다

#350

by 예원

중학교 때 명치끝이 답답하고 배가 자주 아픈 탓에

한두 번은 쓰러지는 일이 발생했다.

엄마는 수소문 끝에 아는 양학/한의학 선생님들을 몇 군데 찾아 데려갔다.


특별한 질병이 없다는 진단 결과에 엄마도 나도 모두 답답해했었고,

몇몇 담당의 선생님들은 이런 결과를 냈다.

'아이가 신경이 예민한 편인데, 아마 화병 같은 게 걸린 것 같다.'


참는 것이 언제부터인가 습관이 되었고, 몸이 그 화를 견디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도, 대학 때도 여전히 이런 일은 반복되었다.

지하철에서 쓰러지기도, 119에 실려가서 고등학교 때는 난리가 난 적도 있었다.


'타인에게 화를 낼 에너지로 나를 돌본다.'라는 원칙으로 살았지만 화는 결국 나를 공격하고 있었다.


작년, 31년을 이렇게 살아오던 내가 별로로 느껴졌다. 그리고 이걸 고치고 싶었다.

'누군가에 대한 잠재적 분노나 마음이 풀리지 않을 때, 나는 분출을 앞으로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한다면 어떤 방식인가?'라는 주제로 고민을 이어나갔다.


1년 넘게 하고 있지만 아직 딱히 답이 없다.

지인은 사람마다 화를 담는 판도라 상자를 만들어서 그곳에라도 버려야 한다고 했고,

내가 좋아라 하는 Take this waltz라는 영화에서는 '세상의 모든 구멍을 매우며 살 수 없다.'라고 말했다.


말로는 다 맞는 말이지만, 유독 잊기 어려운 상처나 사건이 살다 보니 생긴다.

특히 위선과 기만하는 행위 앞에서는 성별 구분 없이 인내가 어렵다.

그러니 사실 나는 화가 많이 나고 있는 것이다. 숨기는 것에 능할 뿐이다.

그리고 몸이 아프면 동굴로 들어가 버린다.


엄마가 된 이후에 나는 경계와 모서리를 점점 흐리게 만들며 살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가 된다해서, 이런 내면의 고민들이 한 번에 성숙하지는 않는다.


화를 건강하게 풀어내고 싶었다.

그에 대한 방법은 이 정도를 생각했다.

'화를 내지 않거나, 화가 나더라도 외부가 아니라 나자신 안에서 풀어내야 한다.'


그런 마음을 임신 내내 품었었고, 개선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알았다. 화를 내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거슬리는 기억들 앞에 다가서지 않고 나를 멀리 우두커니 세워둔 것뿐이었다.

1년 넘도록 이 주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니, 이 성향을 더욱더 개선하고 싶다.

화를 담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야할까?

바다가 이렇게 참으며 자학하며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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