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말 기준도 많고, 조건도 많은 인간이다.
ㅡ 그 구분을 마주할 때마다 소름 끼치지만,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런 내가 작은 인간을 조건 없이 사랑하고 돌본다는 것은 사실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이놈들 인생에 얼룩이라도 될까 두려운 마음이 항상 존재한다.
그럼에도 내가 이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건 무엇일까.
매일 아이와 발맞춰 새로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일까.
이럴 때마다,
누구보다 많이 희생한 엄마가 어김없이 생각난다. 메시지로 불쑥
"엄마한테 김치를 배워야겠어. 조금씩 김치 독립 도전해보자."
그랬더니 "아니!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영역 좀 남겨줘.
나 아직 그럴 힘 있어."
김치만 해도 모자라서
내일은 정이 먹을 과일에 절인 불고기를 만들어서 집에 잠시 들른다고 한다.
사실 정이가 잘 먹어서도 있지만, 내가 한 끼라도 요리를 덜하길 바라는 그 마음도 안다.
남편 말대로 우리들의 엄마는 수호천사 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천사였다가 타락한 인간은 있을 것 같은데, 인간이 천사가 될 수도 있는 건가.
가족들 덕분에 기준 많고 까탈스러운 인간이 순수한 희생을 조금이나마 흉내를 내며 살 수 있는 걸까.
내 눈에는 엄마가 김치로 고통받는 걸로 보였는데, 그게 좋단다.
이건 인간 사이에 감정을 넘어선 다른... 자연과 같은 뭐라 표현할 수가 없다.
자연 안에 뿌리 깊게 존재해온 깊은 사랑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