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1. 네 맘이 내 맘 같지 않을 때.
관계에 대하여.
내게 마음이 없는 상대를 사랑하는 것만큼 마음의 깊이 다름을 인지하는 순간 역시 고통스럽다.
이것은 연애의 감정을 넘어 인생, 그 작은 울타리 안에 들어온 크고 작은 관계에 모두 적용된다.
지구 반대편 호주에 있을 때 처음 만나 힘들고 외로운 그 시기를 함께 버틴 친구가 있다. 우리는 담백하게 서로의 초년기를 털어놓고 위로하며 지금까지 인연을 쌓았다.
최근 그 친구는 오랜 남자 친구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하필 코로나19로 식장 최대 하객 수가 49인이었던 시기, 나 하나보다 더 귀한 손님 모시라며 쿨하게 말하고는 예식 당일 1시간 넘게 서울을 가로질러 얼굴만 보고 돌아왔지만 아쉬운 마음 하나 없이 친구의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했다.
하지만 식이 끝난 후 몇 달이 지났음에도 친구는 별다른 연락이 없었다. 한창 신혼 라이프를 즐길 때라서 일까. 새 신랑, 지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친구의 인스타그램 속 사진들을 지켜보면서 묘한 감정이 들었다.
내심 만나자고 먼저 연락해주길 바랐나 보다.
행복하게, 바쁘게 삶을 살다 보면 잠시 잊을 수도 있을 일인데 뭐가 그리도 배배 꼬였는지 평소에는 손사래를 치는 이과식 계량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동안 9할은 내가 너에게 먼저 연락했구나' 같은 유치한 생각.
그동안 내 연락이 귀찮지는 않았을까.
만나자는 내 제안이 부담스럽지는 않았을까.
네 맘이 내 맘과는 다르지 않았을까.
나는 소심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 줄 알았는데, 갈수록 줄어드는 인간관계 때문인지 애써왔던 그녀와의 시간들에 자조 섞인 질문들을 던지고 있었다. 그럴수록 그녀에게 가벼운 안부를 묻는 것은 어려워졌다. 소중한 물건 하나를 잃어버린 공허함 비슷한 것이 내 마음속 어딘가를 계속 휘젓고 있었다.
사실 상대의 맘이 내 맘과 정확히 일치할 확률은 불가능에 가깝다.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부모의 사랑의 깊이를 감히 가늠하지 못하는 것처럼, 조금씩 깊어지는 연인들의 마음도 어느 순간 식어가는 속도가 서로 달라지는 것처럼.
내가 울타리를 세우고 일군 이 마을은 너무 작아서 그 안에 사는 나무, 풀, 작은 동물, 이웃과의 거리도 그만큼 가깝다. 반면 친구가 일군 마을은 내 마을보다 넓고 울창하고 소란스럽다. 크기에 비례해 서로를 그리는 빈도가 다른 것은 너무 당연한 것. 넓은 그녀의 관계를 탓할 수도, 내 작은 관계를 탓할 수도 없었다.
이 유치한 저울질을 하며 깨달은 사실이 있다면 내가 상대방의 진짜 속마음은 들어본 적도 없으면서 '나에 대한 마음은 그 정도구나' 속단해 버렸다는 것이다. 내 잠깐의 외로움이 친구의 마음을 왜곡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내가 아무 일도, 아무 고민도 없는 것처럼 쿨하게 카톡 하나 보내면 또 아무렇지 않게 우리는 얼굴을 보게 될 수 있다.
관계란 원래 어느 누구 하나가 좀 더 보고 싶은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닐까. 욕심을 내려놓은 내가 그녀에게 기대하는 단 하나.
'너도 열 번 중 한 번은 나를 찾아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