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죽고 싶다."
극단적인 모닝 인사로 아침을 열었다.
나는 비교적 운이 좋은 편이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생각하는 사람임에도, 아침 기상 시간은 죽음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고통스러운 순간이다.
별다른 일 없이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밥 먹고 잡스러운 집안일 좀 하다가 누워서 유튜브 보며 잠이 든 다음 날에도 어김없이 가기 싫다, 죽고 싶다, 미치겠다, 자고 싶다 등 평소에는 하지도 않는 부정적인 단어들을 나열하면서 반쯤 감긴 눈으로 출근 준비를 한다.
자도 자도 피곤한 이유는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 생성이 원활하지 않아서 라는데 철분을 적당히 섭취하면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철분제 좀 챙겨 먹는다고 내 아침이 나아질까?
사실 이 베드 모닝 인사는 아무래도 '일어나기 싫다' 보단 '회사에 가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투영된 일종의 말버릇에 가깝다. 주말 아침에는 부족한 수면 욕구 풀 충전하고 일어나거나 혹은 일찍 일어나더라도 기지개 한 번 켜면 개운한 하루가 시작되니까 말이다.
나에게 회사란 언제부터 저승보다 더 끔찍한 곳이 됐을까.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는 근로 소득은 물론이고, 일 잘하는 방법, 인간관계에 대한 경험, 업에 대한 지성 등 직장에서 얻는 것들이 참 많았다. 몰라서 발생한 문제, 알아도 놓친 실수들에 '그래, 더 배우면 되지', '앞으로 더 잘하면 되지'라며 초짜를 위로했던 곳. 그래서 뿌리만 내리면 버티고 싶었던 비옥한 땅이었다.
1년, 3년, 6년. 30 중반이 되고 연차가 쌓이니 회사에서의 내 위치는 달라진다. 회사와 동료가 나에게 갖는 기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뭐든 잘하는 척해야 하고, 누구든 잘 어울리는 바람직한 사회적 인간처럼 보여야 한다.
내 '아침에 대한 거부감'은 여기서 시작됐다. 잘난 사람도 아닌데 잘나 보이려고 버둥거리는 곳, 잘난 건지 잘난 척하는 것인지 헷갈리는 사람들과 계속해서 부딪혀야 하는 직장이란 곳에 출근하는 일이 점차 두려워진다.
결국 업이란 생존을 위한 수단. 의식주,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에 돈이 필요한 세상이다. 노동을 하고 그 대가를 받아야 맛있는 음식도 사 먹고, 좋아하는 친구도 만나고, 부모님께 용돈도 좀 챙겨드리는 자랑스러운 자식이 될 수 있다.
보편적 인간인 나는 이 기본적 요소를 충족하기 위해 아침마다 '나는 뭐든 잘하는 사람이다'라고 최면을 걸고 출근한다. 깡통 지성에 다수의 인간관계를 버거워하는 나 같은 인간이 기묘한 가면을 쓰고 말이다. 회사에 출근하면 그나마 기분은 좀 나아진다. 일에, 사람에 여기저기 치여 높은 열량을 소모하면 사실 이런 넋두리를 할 새가 없으니까. 그래서 이렇게 1년, 2년 버텨왔던 것이 아닐까.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생존을 위한 노동.
다수의 직장인들이 조물주 위에 있다는 건물주를 꿈꾸는 세상.
로또 1등, 건물주를 꿈꾸며 나는 가면을 쓰고 출근한다. 오늘도, 내일도 힘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