윙크레터 #63|링크컨설팅|조직의 소통을 만드는 사람들 01
천재성엔 '인종'이 없고, 강인함에는 '남녀'가 없으며, 용기엔 '한계'가 없다
1962년 NASA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2016년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히든 피겨스〉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이 영화는 인종차별, 성차별이 심하던 1960년대에 이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여성 과학자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 비하면 사회적으로나 직장 내에서나 차별이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아직도 우리가 직장에서 겪는 어려움은 많습니다. 특히 요즘은 '조직문화'가 주목받는 것처럼, 우리 조직에 맞는 좋은 조직문화를 가꾸기 위한 노력과 그에 따른 어려움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윙크레터 시리즈 〈조직의 소통을 만드는 사람들〉 첫 번째로 소개할 인물은 바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나로호, 누리호를 만들어 발사해 왔고, 최근에는 발사서비스 정착과 관련된 업무를 하고 있는 임석희 책임연구원입니다. UN 여성과학자 워크숍을 함께하며 그리고 퍼실리테이션 교육, 조직개발 컨설팅 현장에서 만날 때마다 조직의 소통에 ‘진심’이 느껴졌던 분이라, 〈조직의 소통을 만드는 사람들〉 첫 번째로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히든 피겨스〉의 대사처럼 용기 있는 리더가 가꾸어 가는 조직의 소통이 어떤 방식인지 궁금한 분들이라면, 2회차에 걸쳐 발행될 임석희 책임연구원의 이야기가 흥미로울 것입니다.
(윙크레터 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5월 이후 참 오랜만에 인사드렸습니다. 소식도 없이 뉴스레터를 게시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윙크레터를 만들어 온 지난 5년간 가장 긴 공백이었는데요. 앞으로 윙크레터는 한 달에 한 번씩 매달 둘째 주 목요일에 게시됩니다.
어떤 조직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2,200명 〈윙크레터〉 구독자 분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대전 연구단지 내에 위치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발사체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책임연구원 임석희입니다. 저는 1999년부터 KSR-III, 나로호, 누리호를 만들어 발사해 왔고, 최근에는 발사서비스 정착과 관련된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객(위성개발자)들이 요구하는 서비스가 발사체 설계에 반영될 수 있도록 동료(발사체개발자)들에게 전달하고, 최근 급격히 증가하는 위성발사에 맞춰 매년 어느 정도의 발사서비스가 필요한지 수요조사를 합니다. 동시에, 조직 내에서 집단지성으로 과제를 기획하거나 조직문화 개선과 관련된 TF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조직의 소통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상하관계에서의 소통에 문제를 처음에 느꼈습니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무작정 상사에게 건의했던 것 같아요. 메일도 보내 보고, 차 한잔 달라고 해서 상담도 자처했고요. 남성동료들과의 소통은 여성들과의 방식과는 조금은 달랐지만, 일에 파묻혀 지내느라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희 조직은 3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여성이 10%가 되지 않는 상황이라, 여성들이 여전히 소수자 그룹입니다. 여성직원들의 큰 언니로서 후배들과 정기적으로 식사도 하고, 상담 요청을 받으면 응해 오다가 여성협의회를 최근 만들었습니다.
퍼실리테이션 교육을 받을 후로는 모였다하면 ‘기승전퍼실리테이션’을 주장하면서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작은 모임에서도 퍼실리테이션 기법을 사용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효과를 많이 보았어요. 특히 얼마 전 우주항공청과 관련해서 사내 TF가 결성되었을 때 퍼실리테이터를 자청하여, 시간은 매우 부족했지만, 몇 가지 기법을 적용해서 참여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우리의 뜻을 정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퍼실리테이션의 여러 기법들 가운데, 회의나 모임 시작 전 그라운드룰만 잘 만들어도 나머지가 이전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현상을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링크컨설팅에서 퍼실리테이션, 소시오크라시 교육을 받은 직후, 사내에 새로운 조직을 신설하는 TF를 운영할 기회가 있었고, 그동안 발언 기회가 제한적이었던 것을 라운드로 회의 진행을 해 보았는데, 이날 “발언 기회를 주어서 감사하다”는 후배의 피드백, “대개는 발언이 없어서 나라도 의견을 길게 말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는 선배의 피드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정 효과를 크게 보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회의를 진행하는 경우에도, 상황 봐서 괜찮겠다 싶으면 살짝 개입해서, 회의 마무리 즈음 오늘의 결론을 한 줄 요약해서 참가자들에게 확인 차 반문하고, 액션 아이템을 정리해서 그 자리에서 공유하는 시도를 하고 있어요.
소통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계기나 특정한 목표가 있나요?
저는 어려서부터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할 말은 꼭 해야 하는 성격이었어요. 즉, 내가 이해되지 않으면, 답답해서 견디기 어려워해요. 어떤 방식으로던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 생기면, 이를 해결하려고 해 왔어요.
그리고 소통은 생존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능력이잖아요. 저는 러시아에서 공부했는데, 언어는 생활과 학습에 직결되는 소통 도구였어요. 상대의 말이 이해되지 않으면 즉각 모른다고 말했어요. 외국인이 현지 언어를 그리 잘 알아 들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니까 다시 설명해 달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었던 것 같고요. 그래서 “나의 수준이 중3 정도이니, 여기에 맞춰 쉽게 다시 설명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고, 러시아인의 말이 알아듣기 어려우면 쉬운 단어들로 내가 다시 표현해서 서로 같은 얘길 하는 것인지 계속 확인했었던 것 같아요.
특히 기술 통역을 하거나 계약 협상을 할 때는 이 방법이 매우 중요했어요. 그리고 이 때 들인 습관이 귀국 후에 자연스럽게 이어졌나봐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한글로 하는 의사소통도 마찬가지 같아요. 모르면 모르겠다고 먼저 말하는 것이 상대와 원활한 소통을 하게 되는 경험이 많았어요.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소통 or 회의는 어떤 모습인가요?
뛰어난 지도자(리더)가 훌륭한 아이디어를 내세워 “돌격 앞으로!” “나를 따르라~” 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봅니다. 현대사회 구성원은 각자 나름의 세계를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그 세계는 우연의 연속이라서 예측도 어렵고요. 그러니, 구성원 모두가 함께 헤쳐나가야 합니다. 이제 리더는 가성비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가성비 좋게 조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죠. 구성원들의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는 강요나 지시가 아니라 그들의 마음이 움직여서 자발적으로 손 들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목표에 대해 얘기 나누면 어떤 그림이 그려지요. 미래상요. 이걸 상정해 두고, 약속을 하고, 각자가 속 깊은 의견을 아주 작은 것이라도 터 놓게 된다면, 그리고 다같이 들으면서 투명하게 어떤 것은 왜 채택이 되고, 어떤 것은 왜 채택이 되지 않는지 스스로 알게 된다면, 저절로 우리의 공동 목표를 향해서 마음을 정렬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요.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회의에 맺음이 있어야죠. 회의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그 목적을 달성했는지, 오늘의 결론은 무엇인지를 마지막에 다같이 확인하면 참여자들이 회의 이후에도 같은 수준으로 업무를 이해하고 같은 방향으로 진행할 수 있으니까요. 결론이 있는 회의는 무엇보다 그 시간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요.
한 줄 요약하면, 우리는 공동의 바람을 가지고 있다. 작은 의견도 모두 소중하다. 집단지성으로 결정한다. 그래서, (1) 우리는 우리 조직의 목표를 각자 알고 있다. (2) 모두가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3) 모두의 의사를 반영해서 결정한다. (4) 결론이 있는 회의. 늘 이런 회의가 되면 좋겠습니다.
소통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는 조직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그 특징을 유지하고 향상시키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요?
개인 의견을 내는데 거리낌이 없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편안하게 말을 하는 거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평소에 자신의 생각을 말할 기회가 별로 없다 보니, 말하는 사람도 두서 없는 경우가 많고, 듣다가도 핀잔을 주거나 말을 자르거나, 대화가 삼천포로 빠지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평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한 줄 요약으로 말하는 습관을 길러야 할 것 같고요. 또 상대의 얘기를 들으면서, 한 줄 요약을 해 본 후, 말한 이에게 내가 이해한 바를 다시 물어서 확인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책이나 보고서를 읽고 요약해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 좋은 방법 같고요. 이외에 무엇인가 합의된 것이 있다면, 크던 작던 실천하는 거죠. 행동으로 옮기고 효과가 나타나야 그래야 사람들은 계속 속마음, 진짜 얘기를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희는 내부 공용 폴더를 활발히 사용합니다. 즉 개인이 작성한 문서, 자료를 거의 항상 공개하는 것인데요, 타인의 자료와 내 자료를 모두 함께 보다 보면, 나의 업무 속도도 반성하게 되고, 타인의 업무 스타일을 배울 수도 있고요. 무엇보다 부서 업무 돌아가는 상황을 모두 같이 파악할 수 있어서 평등한 느낌, 투명한 느낌이 많이 들고요.
소외되거나 상처받는 사람은 없는지 항상 관심 가지고 살펴야 하고, 다른 조직에서 사용하는 새로운 효과적인 소통 방법을 계속 시도해 보면서, 우리 조직에게도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다면 적용해 보는 용기, 열린 마음, 이런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발사체연구소 임석희 책임연구원이 만들어가는 조직의 소통 이야기는 다음화에 계속됩니다.)
서두에서 소개한 〈히든 피겨스〉에 나오는 명대사가 또 있습니다. 바로 영화에서 우주 임무 그룹의 수장으로 등장하는 앨 해리슨(케빈 코스트너)의 대사인데요. 요즘 조직문화를 만들어가는 리더들에게 어울리는 문장인 것 같아 이번 윙크레터를 마치며 한 줄 남겨봅니다.
자네 일이 뭔지 아나? 천재들 사이에서 천재를 찾아서 팀을 이끄는 거야.
함께 오르지 않으면 정상엔 못 올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