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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운 Apr 03. 2023

사주팔자를 이기는 단 한 가지

나는 오늘을, 너는 내일을 -엄마의 열여덟 번째 편지



엄마는 20대 때 이따금 점을 봤었다. 친구들끼리 몰려가서 한창 유행하는 타로점을 봤었고 길거리에서 손금 사주 봐준다는 사람에게도 해봤고 사주카페란데를 가서 보기도 했지. 그러다 20대 중반에 친구의 권유로 진짜? 점집을 가 볼 기회가 있었다. 무슨 도사라는데 미국에 원정을 갈 정도로 인기 있는 사람이고 마침 자리를 지키고 있다길래 그럼 가보자, 한 거지. 복채를 봉투에 챙겨 들고 조심스럽게 미닫이 문을 여는 엄마를 쓱 보더니만 상석에 앉아있던 도사는 한마디 하더구나. "니는 그렇게 웃으면서 살면 된다!"


긴장한 마음에 멋쩍게 웃으면서 등장을 했던가 보지, 그런데 그 도사는 정말로 맹숭맹숭하게 점을 봐주더구나. 형식적으로 생년월일시를 대고 그저 형식적인 문답이 오갔는데 뭘 물었는지도 모르겠고 무슨 대답을 들었는지도 기억이 안 나. 재물운, 결혼운, 뭐 그런 게 아니었을까. 총 10분 남짓에 걸친 그 면담은 시시하기 짝이 없었다. 더 물을 말도 없어 할 수 없이 복채를 내미는데 옆에서 기회를 보던 친구가 자기 물을 말을 묻기 시작했다. 한 30분 넘게 얘기를 주고받았나, 엄마는 그만 지겨워지기 시작했지. 그 도사도 그런 눈치였던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복채 낸 사람은 이미 끝났는데 복채도 없이 물어 쌌는 그 친구가 여간 눈치 없는 게 아니었던 거지. 밖을 나오면서 나는 너무 시시해하며 친구에게 뭘 그리 물을게 많더냐 했다. 그 친구는 거길 한 번가면 한 시간은 기본이라 그랬고.


그 이후로 엄마는 점을 본 적 없어. 무료 신년운세를 인터넷으로 몇 번 보다가 것도 관뒀다. 뭐 별로 맞는 것 같지도 않고 재미가 없어진 거지. 그런데도 호기심은 살아있어 주변에 소위 '신기' 있다는 사람에게 은근히 나 좀 봐줄래요? 물어보긴 한다. 후후. 참 신기한 능력이지? 다른 사람의 과거나 미래가 보인다는 것이? 그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잖아. 무의식과 연관해서 설명하려고 해도 설득력 떨어지고.



엄마가 한창 유튜브로 경제공부를 할 때 어쩌다 연결이 된 영상이 기억에 남아있다. 몇십 년 동안 몇천 명인지 몇만 명인지 수많은 사람들의 사주와 관상을 본 한 무속인이 성공에 관한 내용의 인터뷰를 했는데 그 말미에 질문자가 이렇게 물었다. 그렇다면 만약 안 좋게 사주팔자를 타고나도 그것을 이기고 성공하는 사람들이 있나요? 예. 그 비결이 뭔가요? 그 무속인은 별로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확실하게 대답했지. "인내심"


그녀에게 와서 묻는 말 대부분에 세속의 성공이 포함되었을 테고 자기 사주에 그것이 들었나 알고자 했겠지. 일을 시작하면 그것이 되어가는 시간이 걸리는 것이 당연한데 너무나 급하게 성공을 바라는 마음에서 섣부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이나 요행만을 바라는 사람들이 새겨들어야 할 조언이란 생각이 들었다.

무속인조차 사주나 운이나 요행이 아닌 인내심이 성공의 큰 바탕이라 한 것은 충분히 새길만하지 않니? 비단 돈뿐 아니라 자기의 일에서 영역에서 인생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은 그 끈기와 인내심이 발휘되지 않았다면 가능한 일이 아닐 테고 그런 사람들은 저 무속인의 조언이 정곡을 찌른다 생각할 듯하다.



엄마와 도사에게 같이 갔던 친구는 배우지망생이었다. 연극은 돈이 안되니 싫고 영화 오디션은 자꾸 떨어지고 학교에 대한 자만심은 있고 빨리 유명해지고는 싶고. 한 계단씩 내 다리로 밟아가며 오르기보단 어떤 추월차선을 타고 빠른 길로 가길 원했던가 보지, 그렇게 점집들을 전전해도 요행만을 바랐을 뿐 그저 묵묵히 인내심을 가져야만 성공이란 열매를 딸 수 있다는 것을 몰랐던 거야.


지금은 관람객 천만을 동원하고 캐스팅 영순위의 큰 배우로 성장한 사람들 중 몇몇은 과거 오랜 기간 무명으로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포기 직전의 순간들을 견디고 끝까지 버틴 들이다. 그런 과거의 일들을 회상하며 덤덤한 듯 말하지만 힘든 당시의 그는 매일을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까. 불투명한 미래를 감내하며 될까 말까 한 일을 붙잡고 씨름하는 것, 그것은 후에 잘 되면 영광의 거름이 될지 몰라도 그런 순간이 영원히 안 올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그만한 고통도 없을 거야.


그러나 설사 내가 원하는 그 무엇이 끝끝내 되지 않을지언정 그 시도와 인내의 시간이 결코 허망하다고 말할 수 없다. 내가 원하는 그것이 되기 위해 노력하여 내실과 내공을 쌓은 그 시간들이 어디로 증발해버리지 않는 한 어찌 헛되다 할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꼭 그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는 나 자체가 그 세월로써 이미 무엇이 되어있는 것이다.

어느 70대 배우는 연극무대와 영화에서 크지 않은 배역을 꾸준히 해오다가 '오징어게임'이라는 작품을 만나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쳤다. 작은 배역에 만족하지 못했거나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중도포기 했으면 없었을 영광이지.



말했듯, 세상에 내가 알려지고 말고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유달리 손이 큰 너를 보고 엄마가 피아니스트가 되려나~ 했더니 너의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아이고, 그거 유명해지려면 얼마나 어려운데, 안돼!

우리는 늘 이런 식이다. 예능을 하건 스포츠를 하건 공부를 하건 그 분야에서 특출 나지 않으면 실패라고 생각하는 거야. 네가 피아노를 좋아해서 전공한다면 후에 교습소를 해도 되고, 어디 반주해 줄 데 있으면 하면 되고, 리사이틀할 여력이 되면 그렇게 활동하면 되고, 그게 생계가 되지 않는다면 생계를 위한 벌이를 하면서 피아노를 치면 되는 거지 꼭 이름을 거나하게 떨칠 필요가 있을까? 엄마도 결코 유명한 작가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계속 작업을 한다. 내가 죽을 때까지 할 내 일이 있다는 게 중요한 것 아니냔 말이야.


그러니까 이런 말이다. 인내심, 끈기라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아주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아니, 검색만 하면 탁 튀어나오는 참을성 없는 이 시대에 뭔가 하고자 마음먹었으면 -그것이 숙고의 결과로 선택된 것이라면- 꾸준히 해내는 태도가 더 귀중하고 중요한 것이지. 어떤 분야에서라도 어느 정도의 식견에 통달하려면 시간과 공을 들여야지 어영부영은 결코 되지 않는다. 그런 탄탄한 쌓아감이 너의 인생 내공을 뒷받침하는 거고. 그것이면 족했지 꼭 세상이 명명하는 '무엇'이 되어야만 의미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스스로가 인정하는 성공이 가장 중요하다.


더욱이 조급함은 일을 망칠 뿐이다. 빨리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고 하다 보면 거기에 욕심이 개입되고 판단이 흐려지고 행동의 실수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빨리', '한 번 만에'와 그 변주들을 경계해라. 한 번에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것은 욕심이고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노력하는 것은 내공이다. 일을 해 나가는 행위와 시간들이 다 없어지는 게 아니라 그대로 네 안에 쌓인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해나가. 그리고 즐겁게 하고. 네가 하고 싶은데 그 일이 너에게 고통을 주는 주객이 전도된 이상한 일은 벌어지지 않게 주의하고. 물론 시행착오에서, 매너리즘에서 오는 고통도 있다. 그것은 과정 중에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걸림 정도로만 인식하면 돼.


그러니까 웃으면서 행복하게 네가 원하는 그 일을 끝까지 해 나가거라. 엄마가 만난 도사의 첫마디가 어쩌면 답이 된 거다. "그렇게 웃으면서 살면 된다". 또 다른 도사의 "인내심"이란 답까지 엮어보자.

웃으면서 끈기 있게 해 나가면 네가 무엇이 된 들 또 안된들 어떻겠니. 너는 이미 자체로 크고 단단한 사람일 텐데.


덧붙이자면 웃음은 정말 만능통치다. 웬만한 건 다 해결하지.

'인간에게 아주 효과적인 무기 하나가 있다, 웃음이다.' 하고 말한 현자도 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사람 사는 세상에 통용되는 가치는 분명 있다. 진리라고 하는 그것에 웃음과 행동-그러니까 목표를 이루고자 하면 필요한 최소한의 값인 행동을 지탱하는 끈기, 인내심-이 포함되어 있단다.

너의 사주팔자가 어떻게 되는지 나도 모르겠다만  두 가지 배움만으로  어떠한 사주팔자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구나.




MAR. 2023. 엄마의 열여덟 번째 편지.



둥글게 둥글게. 엄마가 찍고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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