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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운 Apr 10. 2023

성장통을 앓는 너에게

나는 오늘을, 너는 내일을 -엄마의 열아홉 번째 편지


올해의 이른 봄은 지금 한창인데 이도와 엄마는 요즘 컨디션이 썩 좋진 않은 듯하다. 할머니에게서 온 게 분명한 계절성 알레르기 비염이 정작 할머니에게서는 사라지고 몇 년 전부터 엄마를 괴롭히고 있고 아기인 너도 그 증상으로 코가 막히거나 콧물을 훌쩍거리고 있다. 편하지 않은 코와 목은 어른인 엄마에겐 좀 성가신 일로 약으로 다스려가며 이 계절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데 네가 불편한 게 마음에 걸린다.


네가 불편한 것이 알레르기 때문만은 아닌 듯해서 엄마는 신경이 더 쓰인다. 특히나 밤에 꼭 한두 번씩 소리를 지르고 크게 우는 한참 동안의 시간이 요즘 계속 반복되고 있어 이도가 이가 나느라, 뼈가 자라느라, 근육이 생기느라 성장통을 겪고 있는 게 아닐까 그저 추측해 볼 수밖에.


처음 며칠 동안 엄마는 잠결에 나도 모르게 신경질을 냈었다. 이틀정도는 엄마의 화에 네가 울음을 곧 그치길래 계속 그렇게 했는데 잠결에도 고통당하는 너에게 할 짓이 아니다해서 그냥 모른척하고 울음을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 엄마가 잠 깨는 것은 둘째치고 아래 윗집에 크게 들릴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 한지.

"엉엉엉~~~ 아기상어, 엄마상어, 아빠상어, 할아버지상어, 엄마 사랑해~~ 엉엉엉~~ 아니야, 아니야~~ 싫어~

엉엉엉~~ 엄마 안아줘, 안아줘~~ 엉엉~~" 울면서 방언을 쏟아내면 엄마는 잠을 잃고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웃는다. 네가 그럴 때마다 너에게 내려가서 두드려줘야 되는데 잠결에 그렇게 하기가 왜 그리 힘든지. 정 안되면 네가 기어올라 온다.


너도 나도 밤에 잠을 잘 못 자서 그런지 엄마는 요새 영 기운이 좀 없고 너는 떼를 잘 쓴다. 오늘은 다리가 무겁고 두통도 있어 도저히 산 정상까지 올라갈 힘이 없어서 중간쯤에서 도로 내려왔어. 좀처럼 없는 일이다.

오늘 아침에도 눈 뜨자마자 너는 기분이 안 좋은지 또 벌러덩 누워 한참을 떼쓰고 울었다. 어젯밤에 자기 전에도 그랬고 자면서도 그랬고. 요즘 부쩍 그러는 너를 보고 너의 아빠는 4살인가! 했지. 요새는 미운 네 살 이라잖아. 요즘 애들 빠르다고 예전에는 그래도 미운 일곱 살이었는데. 너의 사촌 두 명을 봐도 4살 때는 굉장했었다. 그런데 엄마생각엔 네가 4살 투정을 부리기엔 좀 빠른 듯하고 그저 물리적 성장통의 후유증이 아닌가 하는데 잘 모르겠어.



네가 떼쓰는 게 소모되는 감정낭비로 받아들이지 않고 내가 스트레스받지 않고 네가 마음 상하지 않게 그저 잘 보내고 싶다. 4살의 투정이건 성장통이건 너의 잦은 울부짖음에 내가 자꾸 한숨 쉬고 냉정해지는 마음으로 돌아서지 않고 그저 아무렇지 않은 일상의 한 토막으로 잘 보내고 싶다.

화를 확 내버렸고 역시 나는 육아와 안 맞아, 하며 좌절했지만 크게 마음에 안 담고 네가 또 그러면 그냥 무던히 넘기고 네가 귀여울 때 너를 보는 눈으로, 똑같은 눈으로 너를 보고 싶다.


이렇게 '싶다'라고 일관하는 것은 그렇게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겠지? 미안하다, 아들아. 너의 기억엔 남아있지 않겠지만 글로써 엄마가 이렇게 잘못을 남긴다. 엄마는 아직도 너에게 화를 내고 한숨 쉬고 너를 차갑게 본다. 떼를 쓰면서도 울면서도 엄마를 보는 간절한 너의 눈빛은 그대론데.



네 마음대로 네 몸과 행동이 제어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 어른인 나도 그런데 너는 어떻겠니. 모든 것이 폭풍같이 자라는 지금, 그러나 모든 게 서툰 지금, 아직 아기인 지금, 너는 아무것도 엄마에게 잘못하는 것이 없다. 엄마가 아무것도 잘못하는 것이 없는 너를 잘 못 이겨내고 있을 뿐이야. 엄마는 아직도 연습 중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4살의 고비, 7살의 고비, 11살의 고비, 13살의 고비, 18살의 고비, 정확이 명명할 수 없는 네가 커갈 날들의 고비마다 엄마는 너의 방황과 크느라 생기는 통증을 돼 튕기지 않고 잘 받아들여 너의 성장을 돕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세상 온갖 것들로 인한 고통과 너 자신으로 인한 고통은 있을지언정 이 엄마로 인한 고통은 티끌만큼도 없이, 너의 성장 과정에서 엄마가 지겹고, 밉고, 원망스러워도 후에 네가 어른이 되어서 돌아봤을 땐 엄마에 대한 미움과 원망은 네 안 어디에도 없도록 그렇게 너를 지금도 또 나중에도 잘 받아주고 싶다.



뭐가 맘에 안 드는지 얼마 전엔 하원하고 집에 와서 만화 보는 데도 계속 좀 성질이 돋아있더니 괜히 옆에 다가온 아빠에게 가라고 소리치며 또 울음이 터졌다. 너를 물끄러미 보다 '기분이 계속 안 좋았어? 엄마가 안아줄게 이리 와' 하자 아앙~ 물린 울음을 터뜨리두 팔을 벌리고 두 무릎으로 걸어오던 날을 엄마는 항상 잊지 않을게.

설거지하지 말라며 계속 칭얼거리던 너를 달래려고 딸기를 씻어주고 다시 일을 하려는데 그새 다 먹고 다가와선 또 칭얼거리는 너에게 참지 못하고 뭘 원하는데! 하던 나에게 더듬대는 못하는 말로 딸기 더 줘. 더 씻어주자 하나를 나에게 들고 와서 엄마도 먹어, 하고 올려다보는 너의 눈을, 그때 네 코에 흐르던 콧물을 엄마는 절대로 마음에서 지우지 않을게. 앞으로 어떠한 형태로 네가 나를 힘들게 한다 생각이 들더라도 이때를 생각하며 나의 아이인 너의 본질과 양육자인 나의 본질을 잊지 않을게.



네가 떼를 쓰는 지금 억지로 너를 달래지 않는다. 너는 달랠수록 더 주체 못 하고 그냥 두면 오히려 스스로 가라앉는다는 것을 엄마는 미리 알았다.

네가 가라앉으면 너를 꼭 안아주고 충분히 토닥토닥 해 줄게. 앞으로도 계속해서 말이야. 네가 떼쓰고 울 때 행할 나의 언어와 행동과 눈빛을 성심껏 연구하여 양육자로써의 본질을 잊지 않도록 할게. 더 사랑해주지 못한 걸 후회하는 일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아. 진심으로.


그래 그게 본질이다. 더 사랑해주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게, 너의 어린 시절을 후회와 아쉬움으로 내 가슴에 남기지 않게, 네가 어른이 되면 너를 기쁘고 가볍게 떠나보낼 수 있게 엄마는 스스로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또 점검하고 확인해 본다. 그렇다면 몇 살의 성장통인들 문제 될 게 없겠지.

네가 나를 키우는구나, 언제나 고맙다.




APR. 2023. 엄마의 열아홉 번째 편지.


이도의 소울메이트. 엄마가 찍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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