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런. 알레르기 비염인 줄로만 알았던 너의 증상이 감기였어. 본의 아니게 오랜 시간 방치 된 감기는 이제 또 오랜 기간 항생제를 먹어야만 낫는 걸로 되어버리고 말았다. 참, 나는 둔했던 건지, 게을렀던 건지. 너를 고생시키고야 말았네...
너에게 옮은 감기로 편도선이 부어서 엄마도 며칠 고생을 했다만 갈까 말까 하다 결국 안 간 병원행은 게으름이 확실하다. 글쎄, 나의 소중한 낮시간을 병원 따위?로 허비하고 싶지 않은 욕망 쪽이 더 강했달까. 어떤 게 손해 나는 건지 불명확하다만 그래도 좀 미련하다 할 수 있겠지. 너도 아마 어른이 된다면 죽어라 하고 병원 가지 않을 확률이 클 것 같구나.
젊을 때는 몸 좀 아프더라도 그렇게 병원이 잘 안 가지더라. 지금은 그래도 병원을 좀 가는 편이다만 2,30대 때는 한 번씩 앓아눕는 독감이나 잘 못 먹어 생긴 두드러기 같은 것에도 절대 병원을 가지 않았다. 웬만한 아픔은 그냥 누워서 좀 앓는 것으로 견디는 거지.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그러지 않을까. 나이가 들면 이제 나라에서도 정기적으로 검사를 시키고 또 스스로도 노파심이 일고 하니 몸검사를, 그러니까 정기검진을 때 맞춰한다. 그리고 좀 불편하면 그냥 병원을 찾게 되더라. 오전시간에 특히 붐비는 듯한 병원엔 대부분 노인들이다.
예전 작업실을 출퇴근할 때 이용하던 지하철에 노약자석은 물론이고 일반석까지 그득 채운 노인들을 보며 부산의 노인인구비율이 높다는 뉴스통계를 실감하곤 했지. 산에 가도 거의 노인들이고 아파트단지를 오가며 마주치는 주민들도 대부분은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다.
매스컴에서 늘 떠드는 인구절벽 시대의 불안과 걱정을 차치하고라도 일상에서 느껴질 정도로 많은 노인들에 우리는 긴긴 수명을 대비해야 하는 전과 같지 않은 상황에 놓여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너의 세대가 가진 기대수명이 120-140세라고 하는데 엄마는 그 숫자에 그만 기가 질렸다. 와, 그 세월을 어떻게 살아낸다니? 늙어져서 버텨야 할 수십 년의 세월이 무서워서 엄마는 지금부터 건강 걱정을 하는데 100년 이상을 살아야 하는 너는 도대체 몇 살부터 관리 아닌 관리를 해야 할까. 몇 살부터 노년의 생활을 위한 재정관리를 해야 하고 결혼과 출산과 같은 대소사는 물론 취업과 정년과 은퇴는 어느 시점으로 정해야 할까. 숫자가 100을 넘어가버리는데 사회적 시스템은 80에 맞춰져 있으니 뭔가 혼란한 기분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할 수 있을까?
엄마의 지인 중 한 분은 31년 생으로 한국나이로 치자면 93세, 곧 바뀌는 만 나이를 적용하더라도 91세로 완전한 노인으로 규정할 수 있지. 한국 전쟁이 있었을 때 이 분은 이미 20대였다는 계산에서 90이라는 나이가 가진 엄청남이 확 느껴졌다. 한 번씩 하시는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게 만드는, 그야말로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내신 분이지.
어르신은 작가들이 작업실로 세 들어 있던 건물의 건물주이신데 미술 애호가이기도 하시고 문화예술 쪽으로 관심이 많으셔서 한 번씩 입주 작가들에게 점심을 사주시곤 하셨어. 엄마가 비결이 뭐냐고 따로 여쭙기도 했었던 곧은 자세를 하시고 늘 단정한 옷 차림새에 어떤 때는 그분의 등장과 함께 은은하게 풍기는 향에서 신선한 충격을 느낀 적도 있었고. 젊은 작가들에게도 어느 때고 한번 말을 낮추셨던 적이 없다. 엄마 성姓의 종친 어른이기도 하신 그분은 항렬로 따지자면 엄마에게 할아버지 뻘인데 늘 "선생님" 또는 "씨"란 호칭을 내게 쓰신다. 한 달에 한번 갖는 목요 미식단 모임을 기다리는 이유는 그 어르신과 함께 하는 대화가 너무나 즐겁기 때문이야. BTS를 좋아하는 손녀를 보고 BTS의 다이너마이트 동영상을 50번 돌려 보셨다는데 대단하지 않니? 사실 엄마도 '요즘 애들' 노래는 모른다고 고백하는 젊은 꼰덴데.
엄마가 좋아하는 한 에세이스트의 글에서 '아흔 살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하는 문장을 읽었을 때 아, 삶의 지침으로 삼아도 좋겠구나, 생각했다. 내가 아흔 살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그 구체적인 이미지를 내 속에 그려놓으면 그 뚜렷한 목표를 향해 방향을 잡고 한결 수월하게 걸어가지 않을까 싶어서야. 목표하는 길은 간단하다. 자유로운 인간.
더하기는 내려놓고 빼기를 실천하는 인간. 그래서 본질만을 추구하는 인간.
엄마가 전에 어르신을 뵀을때 물어본 적이 있다. 아흔까지 건재하신 비결이 스스로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절제"라고 하시더구나. 먹는 양의 절제, 하는 말의 절제, 생각의 절제, 행동의 절제, 탐욕의 절제. 다 빼기지?
인간은 습관의 동물이라고 하지? 아흔 살에 가까워져서야 부랴부랴 가르침을 실행하려 하면 절대 되질 않지. 그러니 미리미리 빼기의 삶을 실천하는 것이 이롭고 무엇보다 하루라도 더 자유인의 삶을 사는 것이 된다.
우리는 지금, 산업화 시대 그 말미에 전혀 다른 세상의 초입에 놓여있다. 미래에 네가 가질 세상은 경쟁과 축적, 과시가 중심인 엄마의 세상과는 달리 분명 개인의 행복을 추종하는 세상이 될 거야.
그러나 변화와 혼돈이 동반된,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과도기적 시점에서는, 나를 그래도 잘 지켜줄 수 있는 가치는 변함없는 검소함과 생활의 절제와 참고 견디는 능력이다. 그리고 본질적 가치를 챙기는 공부를 해서 네가 늘 성장의 길 위에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
보이는 것이 중요한지, 남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것이 순리인지, 순간의 기분으로 하는 선택이 옳은지, 삶에서 끊임없이 이어질 선택의 기로에서 잘 판단하고 또 기꺼이 책임 질 준비가 됐는지, 이 공부를 매일 잘하고 있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부가 내비게이션의 업데이트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비교, 불안, 걱정, 사치, 게으름, 중독의 샛길로 되도록 빠지지 않고 만족, 사랑, 인내, 검소, 웃음, 공부의 큰길로, 행복의 길로 너를 다독이며 안내할, 길을 잡아 줄 내비게이터가 그 누구도 아닌 너 스스로가 되어 120살의 골문까지 잘 이끌어야 한단다. 그러니까 다른 불필요한 것들은 빼기를 하더라도 올바른 내비게이터가 되도록 업데이트는 충실히 해줘야겠지.
주변에 좋은 롤모델이 있으면 너에게 더없이 좋다. 엄마도 어르신에게 말한 적이 있다. 아흔 살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가 나의 삶의 모토가 되었는데 딱 어르신처럼 되고 싶다고. 그분께서는 손을 휘휘 내저으셨지만. 아직도 토론하기를 즐겨하시고 책을 읽으시고 손녀가 권하는 BTS영상이나 오징어 게임을 보시고 오래된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으시고 꼿꼿하고 단정하고 겸손하신 분. 집에 오시는 요양보호사에게 손수 커피를 갈아 내려주시는 분. 멋지지 않니?
그런 모습이 되기는 어렵지 않다. 언제나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만족하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나를 매일 실천하면서 살면 저절로 그리 된다.
엄마는 이제 그것을 믿고 받아들여서 하루하루 내가 그린 아흔 살로 다가가고 있어. 성실하게 쌓아나간 하루하루를 가진 90의 노인, 근사하기만 하다.
나이 든다는 것은 서글프다고들 하지만 꽉 찬 내면이 드러나 빛나는 노인의 모습은 참 보기 좋더라. 저절로 존경심이 들고. 그런 노인이 많은 세상이면 참 괜찮겠다.
엄마 세대가 노력해야겠네. 결국은 또 내가 노력해야 하는 거야, 이런! 후후.
APR. 2023. 엄마의 스무 번째 편지.
병원에 갔더니 네가 좋아하는 캐릭터의 슬리퍼가! 엄마가 찍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