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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운 May 15. 2023

중독의 길

나는 오늘을, 너는 내일을 -엄마의 스무세 번째 편지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휴대전화로부터 '주간 리포트'라는 알림을 받는데, "지난주보다 1시간 4분 많이 휴대전화를 사용했습니다.", 이번에 받은 내용이다. 집안일을 하면서 듣는 ㅂ스님의 법문이 꽤나 유익해 이번주는 좀 길게 들었었나 보다.

휴대폰을 거의 들여다보지 않던 엄마는 유튜브를 보게 되면서 휴대전화 사용량이 많아졌다. 너를 임신했을 때 경제공부를 시작하면서 유튜브를 보게 되었고 네가 갓난아기 때 좀 소원해졌다가 어린이집 가고 적응할 즈음 엄마의 유튜브 사용량이 다시 늘어난 것 같아. 이게 끝도 없는 게, '이것까지만 보자'가 안 되는 시스템으로, 나의 관심사와 그 변주를 끊임없이 내놓으니 계속해서 보게 되고 보관함의 영상들은 그 개수가 백을 넘어가고 있다.



엄마는 오늘 중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중독, 참 무서운 말이다. 인간의 의지는 중독을 야기하는 물질의 거센 태풍 앞에서 그저 미미한 촛불쯤에 불과하다. 이 중독을 야기하는 것들이 제약 없이 네 주변에 또 내 주변에 우리의 일상에 흔하게 마주할 수 있고 또 얼마쯤은 이미 물들어 있어서 엄마는 너를 키우면서도 이것들과 싸워야 할 테고 네가 성인이 되어서도 너는 스스로를 단속하며 살아야 할 거야.


중독하면 뭐가 떠오르니? 엄마의 편지를 보게 될 정도로 큰 어느 시점에 네가 중독인 줄도 모르고 스마트폰이나 게임에 빠져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스마트폰 중독은 아주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sns, 모바일 게임, 유튜브 넷플릭스 같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등등 이 작은 기계 안에 펼쳐진 무궁무진한 세계에 한 번 발 들이면 벗어나기가 쉽지 않음을 인정한다. 온라인 세상과 떨어져 생각하기 힘든 지금의 현실 자체가 그렇기 때문에 무작정 금하는 것보다 자제력을 길러주는 교육이 어린아이에게 필요하다고 하지만, 이미 부모부터가 스마트폰에 중독된 경우가 허다하고 스마트폰을 신체 일부로 인식한다는 너의 세대에게 어느 선까지 제어를 해줘야 할지, 어떤 규제가 먹혀들지 참 아리송하기만 하다.


엄마가 앞서 잠깐 언급한 유튜브를 예로 들자면, 이 유튜브의 알고리즘이라는 것이 네가 검색한 어떤 것에 관한 정보를 계속해서 새로이 제공하여 계속해서 보게끔 만든다. 이러한 시스템에 무분별하게 놓이면 어느 순간 '스톱' 기능이 사라지고 중독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거지. 그러니까 알고리즘 자체가 우리 뇌에 도파민을 계속 주사해 중독을 야기하는 거야. 특히 '숏 폼'같은 짧은 영상들은 더욱 자극만을 유발해 도파민의 과다 분비를 촉진하고 이런 유의 영상들은 합성마약 중독의 정도로까지 중독성이 강하다고 해. 더 어린 층에 이런 숏 폼 영상의 소비가 집중된다지? 아직 다 성장하지 못한 아이의 뇌는 성인의 뇌보다 중독에 더 취약한 것은 상식이다. 과다한 스마트폰 사용, 그러니까 과다한 도파민의 분비는 결국 과도한 스트레스를 일으키고 전두협의 발달을 저해해 억제력, 통제력을 발달하지 못하게 하고, 그래서 성인이 되어서도 그 기능의 부족으로 인해 고통받을 확률이 커진다.

더군다나 이 알고리즘에 기반한 한쪽으로 치우친 정보 제공은 편향성을 불러일으킨다. 지금 우리 사회에 극렬한 좌우의 대립이 이 알고리즘의 편향성에 한 원인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거야. 편파적인 정보제공으로 세상 다수가 극좌적인, 또는 극우적인 성향을 가졌을 거란 자기식의 해석과 착각을 하게 만들지. 

정보를 계속해서 제공만 하지 거기엔 어떠한 통제도 규제도 검열도 윤리도 없다. 어떠한 기술이, 그것이 애초에 선의로 만들었다 해도 통제 없이 발전만 거듭되면 사고의 편향과 거기서 오는 갈등 같은 큰 부작용을 낳아.

윤리가 결여된 기술은 자칫 끔찍해질 수 있다. 지혜로운 누군가의 통제와 제어가 분명 필요해 보이는 영역이다.


스티브 잡스가 2009년에 처음으로 스마트폰이라는 것을 대중에게 소개하고 그것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보급되어 이제는 그것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앞으로는 AI나 가상현실 등이 더해져 지금과는 또 다른 상상할 수 없는 세상이 펼쳐질 거야. 네가 살 세상 말이야. 아날로그 시대에 태어난 엄마가 스마트 시대에 태어난 너에게 어떤 식으로 이 기기들을 인식하게 해야 하는지, 이미 유튜브(뽀로로와 아기상어)에 뿍 빠져사는 너에게 어떤 '스마트폰 교육'을 해야 하는지 참으로 막막할 때가 있단다.

엄마는 네가 한창 게임을 좋아하고 스마트폰에 눈을 박길 좋아할 나이 때, 우리의 큰 식탁에 함께 앉아 책을 보고 그림을 그리고, 우리의 두툼한 매트에 둘러앉아 보드게임을 하고, 저녁이면 가끔 우리 집 앞 강변에 나가 같이 배드민턴 치고 공놀이하고, 주말이면 우리 집 뒷산을 함께 오를 꿈을 꾸는데, 그것이 엄마의 한낱 야무진 꿈에 불과한 걸까. 엄마의 어린 시절 놀던 방식들을 이도는 흔쾌히 잘 받아줄지, 함께 하는 놀이를 무척 즐거워하는 지금처럼 나중에도 엄마의 바람을 수용해 줄지, 모르겠구나.




이제는 술 이야기를 해볼까. 이제 엄마가 매년 하는 연례행사를 치를 때가 다가오고 있어. 바로 매실주 담그기. 엄마는 상당한 애주가로서 주종을 가리지 않고 즐기지만 특히 풍미 가득한 매실주를 아주 좋아한다. 결혼한 후, 임신 기간을 제외하고 매해 매실주를 손수 담고 있지. 잘 익은 홍매실을 한 20kg 정도 사서 씻고 꼭지 따고 꼼꼼히 물기제거하고 병에 담아 술을 붓고, 평소엔 엄두도 안내는 힘들고 귀찮은 과정들을 정성을 담아 한다. 이것을 지인들에게 좀 나눠주고 일 년을 요긴하게 사용한다. 음식에 술은, 특히 매실주는 한두 잔 걸치면 평범한 음식이라도 맛을 돋우지. 술을 좋아하는 것은 집안 내력인지, 부모님도 반주를 즐기셨다. 특히나 외삼촌들의 주량은 엄청나서 그 괄괄한 성미들에 술이 더해져 독이 됐는지 엄마의 외삼촌 한 분은 알코올중독,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술에 대한 엄마의 확고한 철학은 이렇다. 술은 좋은 거야. 음식의 풍미를 돋우고 사람들과 함께 할 때 화기애애하게 분위기를 고조시키지. 그러나 절대 화가 나거나 슬플 때 혼자서 술을 마시는 것은 안된다. 화나 슬픔을 잠재우기 위한 용도로 술을 사용하게 되면 거꾸로 그것을 증폭시키게 되지. 절망과 우울에서 시작한 술은 중독의 길로 가는 지름길이다. 너의 기분이 언짢을 땐 그냥 잠을 자는 것이 차라리 도움이 된다. 

잊지 말거라, 아들아. 술은 네가 영화를 한 편 볼 때 필요한 팝콘과 같은 용도로, 음식을 더 맛있게 먹기 위해 곁들이는 용도로, 사람들과 더 잘 어울릴 수 있는 좋은 용도로만 써. 만약 혼자 홀짝거리는 시간이 늘어난 것을 인지한다면 그것은 위험하다는 신호다. 그때 너를 돌아봐야 해. 너를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술에 의지하려 하지 말고 고통의 원인을 스스로 찾아내어 술이 아닌 다른 것으로 이겨낼 힘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마약이다. 요즘 매스컴에서 자주 다루는 듯한 마약문제는 우리 주변에 너무도 가까이 와 있더라. 한 때의 '마약 청정국'이라 태평스레 손 놓고 있던 사이 마약은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어 이제는 얼마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지, 어떤 젊은 여성의 사례로 알 수 있었다. 한 시사프로램에 출연한 이 마약중독자는 아이가 둘 있는 20대 여성인데 약간의 우울증으로 마약에 손을 댔단다. 텔레그렘의 채팅방에서 너무도 손쉽게 구매할 수 있었고 주택가의 계량기나 화분 밑 등 '던지기'수법으로 마약을 숨겨놓은 곳에 가 찾아내기만 하면 됐다. 클릭 한 번이면 그만인데 지금 그래도 일주일째 약을 참고 있다는 그녀는 아주 무기력해 보였다. 자해한 다리에는 아물지 않은 상처가 가득했고 잠자는 많은 시간 외엔 오로지 마약생각이었다. 두 아이가 눈에 들어오지 않은 지는 오래고. 혼자힘으로 도저히 헤어 나오지 못하는 그 길에서 딸을 구할 방법으로 그녀의 어머니는 결국 신고를 생각하더구나.


오늘 저녁뉴스에 마약중독자 치료센터를 다룬 기사 하나가 났어. 마약을 하고 잡히거나 신고당해서 감옥을 다녀오더라도 절대 그 중독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유혹에 시달린다 해. 그래서 시설입소가 도움이 되는데, 여기 생활하는 젊은 청년은 인터뷰에서 일상으로의 복귀를 꿈꾸며 '이불 개기' 같은 일상의 사소한 일들에 집중한다고 했다. 그 작은 행동이 자기를 살리는 일임을 그는 알았다. 어떻게든 주의를 일상에 돌리려는 노력 같았어. 일분일초, 약의 충동은 뇌리에서 떼쳐지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약투약으로 구속된 젊은이 중 상당수는 체포 후 자신이 마약중독자라는 사실을 부정한다고 해. 정말로 자신이 중독자임을 모르는 그들은 주변에 너무 흔한 '약'을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끊을 수 있다고 간단하게 또 너무도 안일하게 자신만만해 있는 거야.)

역시 과거 마약중독자였던 시설의 원장은 테이블을 닦는 한 청년에게 "약을 찾아내듯 세세히 티끌을 찾아내서 닦아" 하는데 '던지기' 해놓은 마약을 혹시나 해서 찾아 헤매는, 결국 자신이 사용하고 버린 주사기 밖에 찾아내지 못했던 저 여성중독자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았다. 


엄마는 마약을 하면 어떤 기분일까 정말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기분이길래 저리도 목을 매는가. 좀 위험한 호기심이지? 밤에 주로 작업을 하고 불면증으로 잠도 잘 못 자고 창작으로 예민하고 그것을 평가받아야 하고,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마약에 손을 대는 일이 많은 모양이다. 최근 한 유명배우의 프로포폴, 마약투약이 발각되어 한바탕 시끄러운 일도 있었잖아. 그런데 생뚱맞게 다이어트약으로 마약을 시작하는 사람도 많더구나. 더욱이 기가 막히는 건 식욕억제성분으로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향정신성 약물을 문제없을 만큼만 처방전을 만들어주는 게 '다이어트 전문'의사의 능력이고 그것이 효과 좋다고 소문나면 병원이 문을 열기 전, 새벽부터 문 앞에 긴 줄을 만들어 놓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야. 매일 반복된다는 병원 앞 노숙이, 다이어트 약을 타려고 '오픈런' 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참으로 희귀한 나라더라. 이 약들이 까딱 잘못하면 중독의 늪으로 빠져드는 위험천만한 것인 줄도 모르고 그저 살만 빠지면 좋다고 그런 짓을 해대는 사람들을 어쩌면 좋겠니. 자신의 업을 돈벌이로 작정한 그런 의사란 것들은 도대체가! 이런 비양심적인 엘리트들이 도처에서 사회를 망친다.




중독이란 것은 얼마나 지독한지. 사람을 한 번 옭아매면 벗어나기가 끔찍스러울 정도로 힘이 든다. 아니면 금연에 번번이 실패하는 사람이 왜 그리 많겠니.  탄수화물 중독으로, 당중독으로, 도박중독으로, 온갖 중독에서 고통받는 사람들도 허다하다.

학창 시절 보았던 금연홍보영상에서 흡연 때문에 후두암에 걸려 목에 구멍이 난 한 중년 여성이 그럼에도 끊지 못한 담배를 피우는데, 그 빠끔히 뚫린 목구멍으로 연기가 뿜어져 나오던 장면이 잊히질 않는다. 멀리 갈 것 없이 너의 아빠도 근 30년 담배 중독이고 심장에 스탠을 박은 너의 할아버지도 결국 담배를 못 끊으셨다. 폐암으로 돌아가신 엄마의 큰아버지도 끝끝내 담배를 못 끊으셨고. 다신 안 하겠다고 손을 자르고도 도박판 주위를 서성이는 이가 존재하, 중독이란 이런 것이다.


후회를 하고 돌이키려 하고 자책하는데 쓰이는 그 큰 에너지와 시간은 오히려 괜찮을지도 모른다. 중독임을 알고 벗어나려고 마음먹었다면. 중독인 줄도 모르고 또한 알고도 탐닉에 빠져 헤어 나올 생각을 않는 것보다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야. 그러나 내가 내 의지로써 언제든지 그것을 제어할 수 있다는 착각에 중독의 길로 들어서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설사 호기심이 일어도 아예 시작을 않을 수 있는 것은 중독에 있어서 의지란 내리누르는 거대한 충동아래의 한낱 발악에 불과함을 아는 지혜가 있기 때문이야. 중독은 의지와 관계없다. 그것은 질병에 가깝기 때문이지. 그래서 자신의 중독을 사람들에게 내놓고 돌아오려고 애쓰는 사람은 오히려 괜찮다는 말이야.


어쩌면 인간은 중독을 벗어나서는 살 수 없을지도 모르지. 해석하기에 따라선 좋아서 빠져드는 일도 중독일 수 있으니. 그러나 내가 내 의지로써 그만할 수 있는 것은 중독이라 부르지 않는 것이 옳겠지. 엄마가 술을 즐겨도 내 의지로써 조절할 수 있고, 유튜브를 매일 해도 엄마의 할 일에 차질이 가게 하지는 않잖아. 너무 자신만만한가? 후후.

일상적으로 우리는 가벼운 중독의 경계선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큰 중독의 길로 들어서지 않기 위해선 '중도의 길'을 깨달아야 한다. 무엇이든 선을 넘지 않게, 재미있는 콘텐츠를 즐기는 건 아주 좋지만 너무 빠지지 않게, 달달한 커피가 너무도 달달하지만 과하지 않게, 맛있는 과자가 너무도 맛있지만 지나치지 않게, 술도 적당히, 운동도 적당히, 야동도 적당히, 쇼핑도 적당히, 정치적 관심도 적당히, -담배와 마약은 '적당히'가 통용되지 않는 영역이다- 그저 적당히 즐기기 위해서 중독의 선에서 만족하는 중도의 자세가 꼭 필요하다 말하고 싶어.

엄마가 언젠가 편지에 썼듯, 너의 성능 좋은 내비게이션이 너를 중도의 길로 잘 안내해 주기 위해 매번 업데이트를 잘해줘야만 한다. 항상 너의 걸음이 바른 길에서 너무 벗어나 있지 않은지 잘 점검해 주렴.



엄마는 요새 좀 헷갈리고 있어. 아무래도 너의 만화중독이 좀 심한 것 같기도 하고 또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사실 너의 영상시청 시간이 전문가의 권고 시간을 훨씬 넘기고는 있지만 너의 발달에 지장을 주는 것 같진 않단 말이지. 글쎄, 엄마가 너무 편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너무 전전긍긍하지 않고 과민하지 않고 네가 크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늘면 자연히 만화로 죽이는 시간이 줄어들 거라고 좋게 생각하고 싶구나. 그저 네가 엄마와 아빠와 함께하는 보드게임을, 운동을, 독서를 좋아하기를 바라본다. 이런, 함께할 거냐고 너의 아빠에게 먼저 물어보지도 않았네! 우리가 함께 웃고 장난치는 시간을 좋아하는 너의 아빠는 아마도 기쁘게 함께 해 줄 것 같다. 그래, 어쩌면 사람과 사람이 더 가까워지면 사람끼리 더 재미있어지면 중독의 문제가 한결 옅어지지 않을까, 문득 생각이 드는구나.




MAY. 2023. 엄마의 스무세 번째 편지.


은근 중독성 있는 틈새에 끼기. 은근 중독성 있는 크롱크롱. 엄마가 찍고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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