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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운 May 22. 2023

재롱이는 어떻게 됐을까

나는 오늘을, 너는 내일을 -엄마의 스무네 번째 편지



재롱이는 엄마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져보았던 반려견의 이름이다. 초등학교 시절 약 4년간 귀찮음으로 약간의 죄책감으로 식구들의 천대 아닌 천대만 받다 우리 곁을 떠난 재롱이는 어쩌면 우리 집으로 오지 않았으면 좋았을지도.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개를 싫어하는 너의 할머니가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재롱이를 손에 들고 오던 모습이. 얼마나 싫었으면 그 귀여운 강아지를 품에 안지도 않고 팔을 뻗은 채 손바닥에 그저 받쳐 들고 왔을까. 지인이 억지로 억지로 줘서 할 수 없이 데리고 왔다는 강아지는 우리 집에 오자마자 낯선 곳에 긴장을 했는지 방에 깔아놓은 대나무자리에 그만 실례를 하고 말았다. 노발대발하는 너의 할머니에 의해 그 즉시 밖으로 쫓겨났고 하필 그날 밤 엄청난 폭풍우가 쏟아졌지. 강아지 걱정에 잠 못 들던 나는 통사정을 해서 강아지를 겨우 현관에나마 재울 수 있었다. 재롱이는 식구들의 사랑을 별로 받지 못한 걸 티라도 내는 양 엉덩이가 삐쩍 마르고 별로 크지 않은 몸집으로 마당 구석에 묶여 지냈지. 가끔 오시는 나의 할머니가 챙겨주시는 밥은 입에 맞았는지 곧잘 받아먹었다. 할머니에게 재롱이를 시골로 데려가시라 누차 말하고 어쩌다 한번씩 오시는 고모에게도 재롱이를 귀여워하는 눈치가 보이면 데려가서 잘 키우라 권했다. 제발 누군가가 다른 데 데려가 그 아이를 잘 키워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엄마가 중학교를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사를 하게 됐어. 아파트로 가는 거라 개를 데려갈 수 없었지. 데려갈 생각이 없었다는 게 더 솔직한 표현이겠다. 이제 이 개를 어떡해야 하나, 그 임무를 너의 할아버지가 맡았다. 일단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개의 목줄을 잡고 밖을 나갔겠지. 개의 입장에선 생전 처음 하는 '어른'주인과의 산책에 이게 웬일인가 느꼈을까? 어찌할까 하다가 알아서 가라고 개를 일층에 풀어두고 이층의 다방으로 올라가 커피를 한잔 했단다. 이제 갔겠지, 한참을 지나 내려가보니 이 개가 안 가고 기다리고 있더래. 평생을 한평 남짓한 마당구석에서 보내 거기가 전부인 줄 아는 개가 '자유다!' 하고 알아서 가기를 바란게 큰 착각이었던 거지. 낯선 곳에서 덜덜 떨며 개는 초조하게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너의 할아버지는 그만 난감해졌다.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며 동네를 서성이고 있는데 한 고물을 주우러 다니는 영감이 개에 관심을 보이더래. 줄 테니 가져가 키우라 하니 흔쾌히 데려가더란다. 그렇게 너의 할아버지는 임무 완수하고 가볍게 떠날 수 있었지. 엄마는 물었다. 그 고물장수가 재롱이를 잘 키우겠지? 너의 할아버지는 대답했다. 아마 잡아먹으려고 데려갔겠지.


근 30년 전의 일이다. 그때를 생각해 보면 개를 집안에서 키우는 건 보기 힘든 일이었고 지금처럼 개를 가족으로 애지중지하는 분위기는 확실히 아니었어. 개는 엄연히 사람과는 분리시켜 동물로 대했다. 어느 날 너를 데리고 걸어가는데 개를 안고 지나가던 어느 아주머니가 '봐, 아기야' 하며 너를 구경시켜 주더구나. 엄마가 아기에게 '저 봐, 강아지야' 하듯이. 사람이 앉는 자리에 개를 앉혀 항의를 하는 사람에게 도리어 큰소리치는 사람들이 있다지. 그것은 애견인도 뭣도 아닌 분명 잘 못된 행동이라고 개통령이라 불리는 유명한 조련사가 말했다. 개가 자식들 다 제쳐두고 상속을 받고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수준의 유기농 사료를 먹고 유치원이며 호텔이며를 다니고 별별 호강을 다 하는 시대가 되었어. 요즘 같은 인식으론 재롱이는 동물학대를 받은 셈이지. 재롱이는 남은 생을 좀 더 행복하게 지내다 갔을까, 주인과의 그 떨리던 산책이 마지막이 되었을까.




며칠 전 너는 어린이집에서 느닷없이 올챙이를 받아왔다. 플라스틱 컵 안에 든 한 마리 올챙이를 받는 순간 그만 기분이 상했어. 이걸 어쩌자고 주는 건지. 플라스틱 컵 안에서 개구리라도 만들라는 건지. 너무도 쉽게 쥐여주는 생명에 사람들의 가벼운 인식이 느껴져서 말이야. 고백하자면, 물론 엄마도 올챙이 여럿 죽여봤다. 학교 앞 문방구에 비닐에 넣어 팔던 올챙이를 호기심으로 사서 마당의 화분 받침대에 풀어놓고 한참있다 생각나서 나가보니 쨍쨍한 햇볕에 바싹 말라 바닥에 붙어있던 올챙이의 형체에 어찌나 어안이 벙벙하던지. 또 문방구에서 팔아대던 병아리를 사서 함께 팔던 모이도 사서 좀 키워볼라치면 곧 죽고 말던 일도 생각이나. 요새도 병아리들을 얼마나 끔찍이 대하냐면, 뉴스에서 봤는데 수평아리들은 태어나자마자 분류되어 기계에 갈려서 없어지더라. 상품의 가치가 없다고. 그 끔찍한 기사로 인해 엄마는 결심 하나를 했다. 꼭 동물복지 달걀을 사겠다고. 물론 갈려 없어지는 수컷과 직접적 관련 있는 일은 아니지만 닭의 삶이 전반적으로 좀 괜찮아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말이야. 높은 곳에 올라가야 하는 닭의 본능을 억제한 채, 24시간 불 켜진 케이지안에, A4용지만 한 공간에 갇혀 항생제 주사를 맞으며 미친 채로 평생을 알만 낳고 죽어야 하는 그 환경부터 개선되면 차차로 수평아리들의 일에까지 옮아가지 않겠니.

엄마는 네가 받아온 올챙이를 일부러 산 아래의 실개울로 가 풀어줬다. "꼭 개구리 돼라." 그 한 마리의 올챙이가 야생을 잘 견뎌낼지는 엄마도 모르겠구나.



이도는 동물을 무서워하지 않는 아이더구나. 겁이 많은 편인데도 불구하고 네 몸만 한 개들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손가락으로 열심히 가리키고 고양이를 좋아하는지 길고양이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수목원에 있는 양들과 당나귀도 별로 무섬 없이 잘 보고. 너의 아빠가 어느 날 '아빠 어릴 땐 동물원 가면 동물들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이도는 그런 기회가 없어서 아쉽다'라고 알아듣지 못하는 너에게 말하는 걸 봤어. 부산에 하나 남아있던 동물원이 경영난으로 몇 년 전에 문을 닫았거든. 그게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그리 되었어도 엄마는 차라리 잘 된 일이라 생각한다. 동물을 전시하고 보는 행위는 없어지는 쪽이 맞다고 생각하거든. 야생성이 훼손된 채 인간의 관찰욕구를 호기심을 채워주기 위해 살아야 하는 동물들이 존재하는 건 요즘 말하는 동물권에도 위배되는 일이잖아. 유럽의 어느 동물원은 사람이 몰래 숨어서 동물을 관찰한대. 어떤 스트레스도 주지 않기 위해서. 뭐 그렇게까지 해서 동물들을 가까이에서 봐야 한다면 이런 노력이 차라리 가상하지 않니?

실내 동물원에서 온갖 아이들의 손을 타는 작은 동물들은 그 고통이 얼마나 클까. 나는 한 번의 터치지만 그 동물들에겐 수천번의 터치가 쓰라림으로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매일같이 겪어야 하고 견뎌야 하는 소음이 소란이 얼마나 지치고 힘들까.


우리는 동물들의 고통에도 관심을 써야 한다. 동물을 식량으로 먹을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서는 그 고통에 관심을 쓰는 것이 우리들 자신에게도 이롭고 올바른 일이다. 최소한의 움직임도 허락지 않는 좁디좁은 케이지에 갇혀서 사는 내내 새끼만 낳고 죽어야 하는 개와 돼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효율로만 가치를 따지는 공장식 축산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계속 구제역이니 광우병이니 조류독감이니 하는 바이러스들에서 해방될 수 없고 그래서 동물들이 맞아야하는 그 수많은 항생제를 결국 우리가 먹을 수밖에 없지. 윤리적으로 따져봐도 이런 식의 '생산'방법은 꼭 개선되어야 해. 몇백 몇천 마리를 떼로 몰아넣고 키우는 환경에서 전염병이 돌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하니. 구제역이 발생한 지역의 돼지들은 떼로 생매장당해야 하고 마찬가지로 닭들도 그런 식으로 살처분을 해야 한다. 바람 통하지 않고 빛도 통하지 않는 철창 안 시멘트 바닥 위에서 미쳐가는 동물들을 철저히 외면하고 그저 생산량에 초점을 맞추는 이런 구조는 반드시,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돼지가 사실은 아주 깨끗하고 영리한 동물이라고 해. 그런 돼지들이 진흙대신 자신의 오물을 온몸에 바르고 움직거리지도 못한 채 살만 비대하게 찌워지고 매일 동료들의 비명을 듣고 그 생을 마감할 때, 그 엄청난 스트레스와 고통이 고스란히 우리 입으로 전해지는 거다. 끔찍하지 않니?


앞서 말했듯, 개의 위상과 처우는 30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물론 펫숍과 강아지 공장 같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긴 했지만-. 그러나 다른 동물들의 경우는 그에 미치지 못한 것 같아. 엄마 어릴 때만 해도 시골에서 소는 다 여물을 먹이고 키웠는데-매일 쇠죽을 끓이시던 큰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금은 곡물사료로 키우지. 고기 1킬로를 얻기 위해서는 곡물 5킬로가 든다고 하니 효율측면에서 썩 낫다고 할 수도 없다. 결국 우리의 입이 많은 양의 고기에 길들여져 포기 못하는 측면이 크다 볼 수 있겠지. 소의 내장과 뼈까지 다 사용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에서는 소의 부산물들을 사료로 만든다고 해. 그러면 그걸 소가 다시 먹겠지. 소는 원래 풀을 먹어야 하는 초식동물인데 곡물로 사료로 비대하게 살만 찌운 병들고 비정상적인 소를 만들고 그걸 우리가 먹는다. 어쩌면 30년 전의 사육방식이 더 건강하고 더 자연에 가까운 방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욕심이 가미된 사람의 손을 거친 모든 인위적인 것은 결국 탈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아.



고기를 썩 좋아해 자주 먹어야 하는 우리 식구이지만 이런 불편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좋아하기 때문에 더 관심을 가지고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서야. 그저 무분별하게 소비하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고기가 생명으로 살아있을 때 그 생명이 처한 환경이 어떠한지, 또 죽어야만 하는 상황에서 어떡해야 덜 고통을 느낄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은 꼭 필요한 가치다. 이는 먹거리에 관한 관심이면서 건강에 대한 관심이기도 하고 지구오염에 대한 이해는 물론 생명권, 동물권에 대한 인식의 증강으로 이어지는, 개인 한 사람의 작은 인식과 그 변화가 사회전반적 의식의 도약을 이룰 수 있는 큰 계기가 될 수도 있단다.

('템플 그렌딘'이란 영화는 이런 생각을 한 어떤 인물의 실화를 그리고 있다. 자폐를 극복하고 비학대적 가축시설, 도축시스템을 구축한 인물로 재미있고 의미 있는 영화니 네가 한번 보는 것도 좋겠다.)


어렸을 때 동물을 도축하는 장면을 보고 고기를 입에 대지 않는 사람들이 주변에 의외로 많아. 그 충격이 고기를 먹고자 하는 욕구를 눌러버린 케이스말이야. 엄마 어릴 적의 어느 날 시골 외갓집에서 무슨 잔치를 했는지 검붉은 빛을 띠는 아주 큰 돼지 한 마리를 잡았다. 처절한 돼지의 비명에 괴로워하다가 창문너머로 흘끗 훔쳐본 광경은 정말이지 끔찍했다. 돼지의 목숨이 어서 끊어지길 기도하며 귀를 막고 창아래 쪼그리고 앉았던 나는, 왠지 모르게 신이 나 있어 보이던 (심지어 동참하던) 마당 가의 어른들의 모습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인간의 숨겨진 잔인성이 시의적절한 때 발현되었던 건지...

그날의 돼지고기를 내 입에 넣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엄마의 경우 그게 오래가지는 않더라. 어쩌다 집에 오는 소머리나 개고기는 죽자고 거부했다. 엄마는 아직 개고기의 맛을 모른다. 소나 돼지와 다를게 뭐냐 하던 식구들의 비웃음에 적당한 항변을 못했지만 나름의 윤리적인 이유로 입에 대지 않는 고기가 하나라도 있으면 엄마가 말한 의식의 도약에 더 수월할 수 있지 않겠니.


또한 작은 생명 하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지. 벌 한 마리도 올챙이 한 마리도 개 한 마리도 소 한 마리도 전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그 비중에서 결코 인간의 생명보다 덜하다 말할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다른 생명의 살을 탐욕스럽게 대하지 말고 적당히, 될 수 있으면 적게 먹는 것이 우리 양심에도 바람직하지 않을까. 우리가 하루에 필요로 하는 고기의 양은 50g 남짓으로 실은 아주 적은 양이다. 우리의 절제가 동물에게도 작은 숨통을 틔워준다면, 우리는 욕구를 좀 단속하고 누를 필요가 있을 듯하구나.

해서, 엄마는 내가 음식으로 소비하는 동물들을, 그것들의 짧고 고통에 찬 생을 잊지 않고 외면하지 않기로 새로이 결심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늘 가까이 있더라. 몰지각으로 타성으로 하지 않을 뿐. 나의 인식에 다가 온 일이라면 언제든 그 가치를 믿고 작은 행동 하나 실천하는 것이 변화를 원하는 자의 자세 아니겠니?




재롱이는 어떻게 됐을까. 늘 불쌍한 표정을 짓던 재롱이. 끙~끙~하며 앓는 소리를 잘 내던 재롱이. 재롱이는 엄마가 붙여 준 이름이다. 지금도 가끔 생뚱하게 그때의 일이 떠오르곤 해. 마지막 떠나보낼 때 한 번 안아주기라도 했는지 기억에 없고, 아마 그러지 않은 듯해 지금에야 이렇게 안타까워한다. 그 아이가 내 마음속에 남긴 죄책감이 뭇 생명을 어렵게 대하는 마음을 가지게 한 건 아닌지. 재롱이가 나에게 남겨준 유산이라면 유산일 수 있겠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해친 생명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참회하는 무거운 밤을 오늘은 보내야겠다.




MAY. 2023. 엄마의 스무네 번째 편지.


엄마의 바돌이를 탄 이도. 엄마가 찍고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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