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름다운 Sep 04. 2023

문득 행복을 느낄 때

나는 오늘을, 너는 내일을 -엄마의 서른한 번째 편지



엄마가 이렇게 보면 우리이도 참 행복해 보일 때가 있어. 너는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잠자리에 들기까지 아주 많은 기쁨의 순간들을 보낸다.

네가 원하는 빼빼와 우유와 쌀과자와 주스의 코스를 엄마가 착착 서비스해 줄 때, 그러면서 TV까지 착 틀어줄 때. 줄까 말까를 가늠해 보는 눈치로 고꾸빵도죠(초코빵도 줘)라고 말해봤는데 엄마가 선뜻 그래! 할 때 너는 얏호! 만면에 행복한 웃음을 웃지. 좋아하는 만화를 매일 보고, 만화의 대사를 흉내 내며 아침을 먹고, 긴긴 물놀이(목욕)를 하고, 아무 데나 빈들빈들 누워있고. 조금 부딪히면 쏜살같이 와서는 엄마 다쳤어 위로를 구하고, 놀이터에 실컷 놀다 땀에 흠뻑 젖어 와서는 엄마 모기 물렸어 투정도 하고. 심심할 틈 없는 너의 일상들을 보며 -너의 속사정을 다 알지는 못한다만- 우리 이도는 그래도 아기 때의 막바지를 행복하게 보내고 있구나 엄마는 가늠해 보는 거야.


사소한 행복의 순간을 충실히 보내다가 어느 지점, 어쩌면 철들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행복은 반감기가 시작되어 내리막길로 들어서는 것이 아닐까 싶어. 어떻게 아이같이 맨날 기쁘게만 살겠나 하겠지만 어쩌면 그건 우리의 선입견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세상을 더 아는 어른들이 세상을 더 기쁘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좋은 것은 영어로 써야 좋은 게 표현된다 여기는 듯한 세태를 반영해 쓰자면) 살아보니 사람은 버라이어티 하고 다이내믹하며 판타스틱하고 럭셔리한 빅 이벤트에서 행복을 느끼는 게 아니더라. 복권에 당첨되거나 원하는 일에 높은 경쟁률을 뚫고 됐다거나 아주아주 비싼 선물을 받는다거나 하는 일들은 두말할 나위 없이 큰 기쁨을 준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행운이나 기쁨은 늘 지속될 수도 없고 그래서 뒷맛이 공허하고 허무하기도 하지. 물건에서 오는 기쁨, 욕망의 성취에서 오는 기쁨, 타인이 주는 기쁨은 잠깐의 환희와 만족을 주지만 곧 사그라들고 말아. 참 희한한 일이지?


그러니 이런 기쁨을(또는 쾌락을 또는 즐거움을) 우리는 행복이라 부를 수는 없을 거야. 사람은 이런 기쁨으로 살아지는 게 아니라 행복으로 살아진다. 행복은 마치 공기와 물 같아서 이게 없으면 살 수 없고 존재할 수 없지만 공기를 늘 의식하지 않듯 공기와 같이 늘 있는 행복을 우리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

잔잔하고 소소한 것, 늘 우리 곁에 있는 것, 행복이라는 아이의 성격이란다.


의식적으로 공기(호흡)를 찾는 명상을 하듯 그래서 마음의 평온을 얻듯 의식을 조금만 허락한다면 찾아질 소소한 행복이, 여기, 너에게 전해주고 싶은 그 조각들이 있다.

틈틈이 기록해 놓은 엄마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너와 얼른 공유하고 싶구나.




아이스라테의 첫 모금


오늘도 엄청난 폭염이었다. 내리쬐는 볕에 그야말로 살갗이 타들어가는 느낌이랄까, 엄살이 아니라 살이 찌르르 찌르르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비명을 지르는 듯했어. 너를 하원시키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태양은 막바지 스퍼트를 있는 힘껏 올려대는 중인지 그 쨍-한 열기가 특히 견디기가 힘이 들어, 이도야, 엄마 더워 죽겠어! 느려터진 네 걸음을 자꾸만 닦달하게 된다.


이 무더위에도 엄마는 산을 탄다. 솔직히 얼마나 가기 싫은 줄 아니? 아이고 오늘은 이 더위에 그냥 확 가지 말까, 오늘은 청소하는 날이니까 운동한 걸로 칠까, 아침부터 귀청 찢어대는 매미소리처럼 머릿속은 온갖 핑계들이 맴맴 도는데 그러면서도 몸은 등산복을 베란다에서 꺼내와 주섬주섬 꿰어 입고 있다. 아휴, 이런 생각하느니 그냥 갔다 오는 게 속편해. 어느새 몸에 밴 습관은 이럴 때 제 역할을 잘 해내주고 있다.


땀을 그야말로 비 오듯 흘려 속옷이 축축이 젖고 모기에게 한 대여섯 방 뜯기고, (이놈의 모기는 꼭 문 데만 물어) 열기에 얼굴이 벌겋게 부어서 아이고아이고를 연발하며 갔다 오면 물 한잔 마시고 찬 물로 샤워하고 선풍기 틀어놓고 소파에 몸을, 아이고 죽겠다 하고 부려버리고 아이스라테 한 모금 딱 하면 , 이래서 산에 갔다 온다! 이유가 분명해진다. 산에서 땀 빼고 먹는 아이스라테와 그냥 집에 있다가 먹는 아이스라테는 절대 같은 아이스라테가 아니다.

엄마는 알았다. 아이스라테의 첫 모금이 너무도 맛있을 때도 행복을 느낀다는 걸.

(엄마는 꽤나 애주가지만 너를 임신했을 때 삼복더위에도 시원한 맥주가 땡기는게 아니라 그 시원한 아이스라테 한 모금이 절실하더라! 배는 남산만 하지만 막달이 아니라 불안했던 엄마는 모성애로 겨우 유혹을 이겨냈다는 썰.)




태풍이 가져다준 솔주


태풍과 비로 연이틀 쉬고 오늘 한 산행은 지루했던 며칠 전보다 덜했지만 그래도 좀 지루하게 계속되고 있을 때 문득 '솔주'가 생각났다. 채 익기 전에 태풍으로 떨어진 초록의 솔방울로 너의 할머니는 작년에 술을 담갔지. 여기저기 어지러이 흩어진 나뭇가지들과 나뭇잎들로 태풍의 여파를 느끼다 돌연 솔주와 그 재료인 초록의 솔방울이 떠올랐고 어, 솔방울을 좀 주워볼까 생각이 든 엄마는 가는 길을 유심히 살폈다. 처음엔 좀처럼 눈에 띄질 않다가 한 번 눈에 들어온 솔방울은 -의식하지 않았다면 초록의 덜 익은 솔방울이 땅에 떨어져 있다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그 여린 존재가- 계속해서 눈에 띄었다. 뭐, 진짜 담그겠어? 기념으로 하나만 가질까 하고 하나를 줍자, 걸음걸음 계속해서 그 초록의 솔방울이 눈에 밟히는 거야.

그래서 진짜 술 담을 요량으로 모아간 초록의 솔방울이 마치 다람쥐가 양볼 가득 미어터지게 도토리를 물고 있듯, 엄마의 바지 양주머니가 터지도록 가득 찼다. 아이고, 이제 됐다, 욕심 그만 부리자, 하고도 몇 번을 연이어 줍고, 또 줍고. 안 되겠다, 이러다가 바지가 훅 내려가겠다, 뜻밖의 치욕을 겪게 될까 위기의식에 부랴부랴 바지를 추켜올리고 진짜 그만 줍겠다고 얼른 주머니의 지퍼를 걸어 잠갔다. 그러나 엄마는 또 한 손 가득 솔방울을 주웠다는 고백을 한다. 휴.

그런데 왜 한 손이냐고? 한 손은 이미 솔방울가득 매달려있는 가지 하나가 차지하고 있었거든.


마지막까지도 눈에 밟히는 솔방울들을 어찌어찌 외면하고 잰걸음을 놀리는데 하산길의 끝에 다다랐을 때 이번엔 태풍에 떨어진 밤송이들이 쫙 깔려있었다. 아직 덜 익은 밤이라 아무도 손을 안 댄 건지 (가을에 도토리 떨어진 것은 사람들이 다 주워가거든) 관심 없게 지나치는 찰나 어, 밤은 술 못 담나? 생각한 너의 엄마는 못 말리는 애주가 맞다. (...... 안 되나?)


작년에 처음 마셔 본 솔주의 맛은, 뭐랄까, 아주 아주 독창적이랄까. 유일이 그 술을 담근 당사자와 나, 두 사람만 좋아했다. 이 맛을 어떻게 묘사해야 하나. 엄마가 직접 담근 매실주의 맛을, 매년 담을 수밖에 없는 그 마성의 맛을 엄마의 옛 동료에게 설명했더니, "선생님 말만 들어도 그 맛이 정말 기막힐 것 같아요! 군침이 도는 게 진짜 먹어보고 싶네요!"라고 예상치 않은 탄성을 듣는 바람에 엄마는 좀 멋쩍어졌지만... 그때만큼 잘 묘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 번 시도해 볼게.

처음 입에 살짝 대어 조금 삼키면 독주 특유의 코를 찌르는 알코올향과 화하고 쓴맛에 먼저 격한 거부반응이 일어난다. 그러나 독한 술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면 비로소 입안에 퍼지는 그 형용할 수 없이 청명한 솔향! 알싸하다 해야 하나, 시원하다 해야 하나. 들척지근하기도 하면서 혀가 쏙쏙 아린, 미묘한 미각의 자극 끝에 무엇보다 맑은 향! (엄마가 매실주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향!) 그 풍미는 정말이지 나를 세상 제일가는 한량, 풍수꾼으로 만들어 버린달까. 찌르르한 위의 감각도 처음 몇 모금이 지나면 이내 사라진다. 독주가 숙취가 없다고 했던가. 솔주는 숙취는커녕 술자리에서도 맑은 정신을 끝까지 유지하게 하는 정말이지 선비 같은 술이지.


엄마는 초록 솔방울을 한가득 주워 오면서 너를 생각했다. 이 좋은 술을 한 15년 묵혀 놓으면 약성이 더 좋아지겠지? 그렇다면 너의 첫 술로 딱이다! (너 개인적으론 첫 술이 아닐 가능성이 있으니) 공식적으로 어른에게 배우는 첫 술로 엄마가 15년 전, 산에서 다람쥐처럼 욕심 내 주워온 솔방울로 담근 약주를(전혀 근엄하진 않네. 큼큼.) '이도'가 새겨진 술잔에 주는 상상은 엄마를 꽤나 들뜨게 했다. (엄마의 지인이 주신 술의 이름이 '이도'. 너와 이름이 같으니 특별히 챙겨주신 건가 봐. 술과 함께 딸린 도자기잔에도 멋지게 '이도'라고 박혀있다.)


하기 싫었던 산행도 이렇게 혼자 상상을 해가며 웃어가며 오랜만에 재미나게 했다. 솔방울 쫒으며 어느새 오른 정상의 바람이 오늘따라 특히 시원했고. 감사합니다! 주문 외우듯 늘 하는 말을 오늘도 속으로 말하며 이미 실실 웃고 있던 나는 입꼬리를 더 바짝 올려서 한 번 웃어봤다. 그래, 이렇게 웃어야 웃을 일이 또 생기는 거지. 웃어야 기분이 좋아지지. 그 반대는 가짜지. 엄마가 즐겁게 살아야 너도 그렇게 된다고 굳게 믿어서, 너라는 나무가 행복하게 잘 자라게, 네가 아직 묘목일 때 양분이 는 엄마가 행복하게 살아야 해서 지금 엄마는 힘을 내고 있지만 언젠가는, 네가 내 품을 떠날 때, 너로 인해, 너를 위해 했던 연습으로 엄마는 스스로 온전히 행복한 어른이 되어있을 거야. 이런 생각을 하며 엄마는, 정말 행복해져서 실실 웃으며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맨발의 청춘


저-기 맨발로 걸어오는 머리가 벗어진 초로의 아저씨. 가까이 오니 뭔가 중얼중얼. 나를 스쳐갈 땐 말을 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어학연습기를 틀어놓고 있었던 듯 흘러나오는 영어. 아이 해브 -----

그를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뭔가를 하고자 하는 인간은 참 아름답구나. 이런 아름다운 사람들의 노력들로 세상의 부피가 채워지는 것 아닐까. 이런 생각이 언뜻 들자 세상에 고마운 마음이 일었다.

이 더위의 햇살이, 우거진 나뭇잎 사이로 스미는 밝음이 그의 정진에 에너지를 보태주길.




아이가 어른을 키운다


요즘 엄마아빠의 냉전으로 함께한 나들이가 전혀 없었던 터라 오늘 토요일은 아침부터 너희 아빠가 무슨 보상이라도 하듯 서둘러대더니 저녁을 먹고 나선 바다까지 가자했다. 우리가 사는 이 도시는 얼마나 좋은지. 해운대든 광안리든 송정이든 차를 잠깐 타고 나가기만 하면 얼마든지 콧바람 쐬고 기분 전환 할 수 있다. 오랜만에 본 송정 밤바다는 해무가 얕게 깔리고 태풍소식을 대변하듯 파도가 제법 거세게 모래사장으로 밀려들었다. 밤바다의 파도는 귀가 먹먹하도록 웅장한 소리를 싣고 와 내던지곤 미끄러져간다. 바닷가의 공기는 선선했어. 너는 컴컴한 바다가 아마 무서웠을 테지. 바다는 아랑곳없이 멀찌감치 떨어져 모래장난에 심취했고 옷과 신발은 물론 머릿속까지 엉망으로 모래가 맥질됐고 눈 속에 들어간 모래를 모래 묻은 손으로 비비느라 한바탕 눈물을 쏟았다. 또 입속에 들어간 모래를 잘근잘근 씹어 먹는 너는 꽤나 신나 보였다. 엄마가 야심 차게 시도했지만 네가 몇 숟갈 먹다 만 팥빙수보다 모래알갱이를 더 맛있어하는 듯 보이던걸. 이 장난꾸러기야.


아침부터 밤까지 물놀이장이다 바다다 돌아다니느라 좀 곤했는지 너는 거실의 쿠션에 쓰러져 자고 있다. 엄마 이제 다 씻었어? 못다 한 집안일과 샤워를 끝마칠 때까지 목 빠지게 나를 기다리던 너는, 옆에 내가 읽어줘야 할 책을 한 무더기 쌓아놓곤 결국 꿈나라로 또 놀이를 떠났구나. 11시 20분이다.


너의 코스를 말해볼까? 저녁 먹고 씻고 물놀이하고 다음 순서로 엄마가 씻을 동안 누워있는 너의 아빠옆에 붙어있다 내가 나오면 이제 엄마차례야 하며 책을 들고 온다. 엄마는 응, 머리부터 말리고~ 물 좀 마시고~ 엄마 양치질부터 하고~ 치실 하고~ 방 한 고~ 이불 깔고~ 온갖 엄마의 용무부터 보고 맨 마지막에 겨우 엉덩이 붙이고 앉아 딱 두 권만 읽자, 하고 쌓인 책들을 다 읽어 달라고 할까 봐 미리 단속하지.

어느 날은 빵 만든다고 요란을 떨다 그만, 할 일이 너무 많아져버린 거야. (엉망이 된 빵에, 냄새는 일류빵집이다라고 너의 아빠가 말했다.) 엄마 다 했어? 중간중간 물을 때 응, 이것만 하고~를 몇 번이나 되풀이했을까, 지쳤는지 그만 물어오던 네가 엄마는 포기한 줄 알았다. 일을 겨우 끝내고 휴~ 다했다 하니, 엄마 이제 책 읽어줘.

평소라면 짜증이 좀 났을 만도 한데 대단한 너의 인내심에 놀랐고 이내 미안한 마음에, 아직도 기다린 거야? 기다려줘서 고마워!라고 진심으로 말하게 됐어.

물론 또 몇 권만 읽자고 너와 '네고'를 하고 너는 책을 건성으로 듣기는 했지만 너의 그 진득한 기다림이 한순간 코끝 찡한 행복으로 소름 돋게 했다이렇게 나를 원하는 너란 존재가 있는 지금만큼 내 인생에서 빛나는 시간이 있을까.

너의 인내심을 참을성을 꾸준함을 또 나에 대한 사랑을 배운 엄마였단다.




사라지지 않아 안심이 되는 것들


너를 재우고 나갈 때 잠든 너를 돌아보니, 사지를 쭉쭉 뻗어 자는 네 모습이 돌 되기 전 아기 때 자던 모습과 꼭 같은데 어느새 길어진 팔다리가 문득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거실로 나온 엄마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너의 아기 때 사진을 새삼 들여다보며 언제 이렇게 컸노, 기특해하고.

슬리퍼를 신은 앙증맞은 너의 발과 스티커를 떼는 꼬물꼬물 한 너의 손과 동글동글 작고 귀여운 너의 얼굴과 포동포동한 너의 허벅지와 엉덩이와 너의 볼록 나온 배와 그 귀여운 목소리가 어느 때 사라질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안타깝고 아쉬운지 몰라. 세상 귀여운 너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을 볼 수 있을 때 많이 보고 만져볼 수 있을 때 더 쓰다듬어주고 안아줘야지.

이런 마음으로 엄마는 아들이 있는 지인에게 물었다. 아들이 언제까지 귀엽던가요? 그녀는 대답했지. 지금도 귀여워요! 20대 중반인 그의 아들이 알아서 자기 일을 잘하고 그래서 귀엽다고 했어. 대견함을 그녀는 엄마의 입장으로 말한 거겠지. 엄마는 좀 안심했단다. 아기 때의 귀여움이 있지만 어린이가 되면 그 나름대로의 귀여움이 있고 청소년기가 되어도 청년이 되어도 마찬가지라는 걸 알았어. 지금도 네 얼굴에서 가끔 신생아실에 누워있던 그 얼굴이 설핏 지나가고 또 백일 때 찍은 사진의 얼굴도 담겨 있다. 네가 소년이 된 어느 순간, 또 청년이 된 어느 순간의 얼굴에서 사라지지 않은 너의 돌 때 얼굴이, 세 살 때 짓던 표정이 쓱 지나가겠지. 엄마의 눈에는 그런 것들이 고스란히 보이겠지.


요 며칠 부쩍 밤에 자러 들어가면 아빠~ 하면서 칭얼대는 너. 방금까지 아빠와 붙어있다 아빠 잘 자, 내일 봐하고 방문 닫고 들어오자마자 아빠~. 지난주 어느 밤은, 내일이 되면 아빠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하며 눈물을 줄줄 흘리더라. 어처구니가 없어진 엄마는 이도야, 나가서 아빠 보고 와! 하니 아니. 그러면서도 계속 서럽게도 울길래 엄마는 뭔가를 눈치채고 물었다. 아빠가 너무 좋아서 그런 거야? 응! 응! 아빠가 너무 좋아서 그런 거야.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 너. 오호라, 너에게 이제 이런 감정이 생기는구나.

엄마가 아주 어릴 , 엄마가(나의 엄마 말이다) 죽으면 어떡하지 걱정하며 이불속에서 남모르게 눈물을 줄줄 흘리던 날들이 생각이 났어. 이도는 너무 좋은 또 너무 소중한 엄마아빠와 항상 같이 있고 싶은데 잘 때도 그러고 싶은데 아빠의 편의를 위해 따로 자던 게 너에게는 아빠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다가왔던 거야. 네 어린 마음을 충분히 공감한 엄마는 네가 더없이 기특하게 느껴졌다. 부모에게 가지는, 사람에게 가지는 따뜻한 마음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고 이렇게 대물림되는구나.




부디스트 엄마


땀을 뻘뻘 흘리며 오늘도 산 정상을 밟았는데, 올라서자마자 바로 내려가는 평소와는 달리 너무나 시원한 바람이 엄마의 발걸음을 붙들어 한참을 서서 달디 단 바람을 맞았다. 아, 좋다. 시원하다. 참 감사하다. 마침 오늘 상쾌하게 불어 준 바람 덕택에 엄마는 또 한 번 아름다운 문장을 떠올릴 수 있었다.

"가피(은총)마치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처럼 언제나 쏟아지고 있다. 그것을 받을지 말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릇이 크면 많이, 작으면 적게 담을 수 있을 것이고, 그릇을 거꾸로 받쳐 들고 있으면 그 그릇에 담기는 게 하나도 없을 것이다."

엄마는 이 문장을 생각할 때마다 그려지는 그림이 있어. 하늘에서 마치 반짝이 가루를 뿌린 듯 반짝반짝 쏟아지는 가피 그것을 자신이 든 그릇만큼 받고 서 있는 사람들의 무리. 반짝반짝 황홀하게 빛나는, 그 쏟아지는 은총을 그릇을 거꾸로 들고 우뚝 서서 혼자 못 받는 멍청이는 되지 말아야겠지.


엄마는 어릴 때 강제적인 천주교 신자였다. 세례명을 받고 첫 영성체를 위한 교육도 받고 또 의식도 치르고, 주일학교나 방학 때의 프로그램에도 참여를 해야 했던, 엄마의 엄마가 시키는 대로 어린 시절을 가톨릭 신자로 살았지. 엄마가 마음대로 행동을 할 수 있을 무렵부터 (사실 부모님의 신앙도 소원해지기 시작했고) 무늬만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가 무교자가 되었다가 자세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어떤 경위로 불교 경전을 접하고 읽으면서 엄마의 마음속 신앙은 불교가 됐어. 아주 신선했달까! 세속적인 종교적 색채가 강하지 않으면서 절대적 유일신에 의지하지 않고 뭔가, 자기 수행에 초점을 맞춘듯한 불교에 오히려 마음이 더 끌렸달까. 


엄마가 지난 편지에서도 심심찮게 말했지만 세상에는 우리가 미처 예상치 못하고 피해 가지 못하는 일들이 수 없이 일어난다. 전쟁, 자연재해, 교통사고, 질병, 온갖 사건사고들이 가까운 내 주변에서 그냥 일상같이 일어나잖아. 어찌 보면 위험을 내재하고 있는 우리의 삶에 오늘 아침 아무 일 없이 잘 일어났고 나는 산에 왔고 너는 원에 갔고 평범하고 무사한 이 아침이 바로 가피의 은혜다. 그러니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뇔 수 있는 거지. 가까이 있는 어린이집도 옥봉산도 산과 강에 싸인 우리가 사는 집도 또 건강도 맛있는 식사도 도서관도 무료 콘텐츠도 가까이 있는 가성비 좋은 의료서비스도 교육 서비스도 틀기만 하면 나오는 깨끗한 물도 깨끗한 공공화장실도 편리한 교통도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안전한 나라도 생각해 보면 가피 아닌 것이 없을 정도지.


생각해 보면 가피 아닌 게 없을 정도로 널린 이 가피와 은총을 모르고 그것이 행복인 줄 모르고 사는 어리석은 사람은 결단코 되지 않아야 한다. 행복은 늘 주어져 있어. 그것이 행복인 줄 모르기 때문에 불행이 닥쳐야 비로소 되찾기 위해 급급해진다. 그러니 늘 감사하면서 사는 게 진리야. 가피는 늘 쏟아지고 있고 내 그릇을 키워 그것을 많이 받을지 거꾸로 그릇을 들고 받지 않을지가 행복한 삶을 사냐, 아니냐의 열쇠야.

(교회 찬송가도 있잖아.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받고 있다고. 성인들의 말씀은 비슷한 데가 있지 않니?)


자신에게 맞는 종교를 찾으면 좋지. 종교를 믿지 않아도 괜찮아. 그러나 저런 멋진 가르침을 남겨 주신 부처님을 어찌 따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엄마는 부디스트가 되었단다.




총총


말버릇처럼 '엄마 사랑해'를 하는 너지만 엄마의 어딘가를 쓰다듬으며 엄마 사랑해할 때 너의 표정에서 보이는 행복이 나에게도 옮아오기도 한다.

우리가 서로 말버릇처럼 사랑해를 하는 순간. 오랜만에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한 외식 후 같이 강변을 걸어 돌아올 때, 와 정말 아름답다! 너의 외침에 다 같이 웃었던 순간. 마음 맞는 목요 미식단 지인들과의 수다가 즐거운 순간. 을 읽으며 작가가 써 놓은 정말 기차게 아름다운 문장으로 작가에게 또 세종대왕에게 감사함을 느끼는 순간. 목욕하는 너의 노랫소리를 듣는 순간. 그냥 너를 바라보는 순간. 이렇게 너에게 편지를 쓰느라 생각이 깊어지는 이 순간. 이런 일상의 섬세하고 안락하고 따뜻한 순간들이 자연스럽게 스미어 단단한 행복을 품게 되겠지. 깎이더라도 또 채워지고 부서지더라도 또 영글어가는, 쉬 허물어지지 않는 짙은 밀도로 행복은 계속 거기 있을 거야.


사람이 이 세상에 난 데는 분명히 괴롭자고 난 것은 그래서 아닌 것 같아. 괴로움은 이 세상의 자연스러움에 비해 너무도 인위적인 별도의 에너지를 오히려 요구한달까.

비처럼 자연스럽게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물처럼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태어난 대로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행복을 자연스럽게 누리며 사는 것. 사는 동안에는 그저 자연스러운 순리를 따라 행복하는 것. 이처럼 단순하고 명료하니 어때? 시도 때도 없이 행복한 게 훨씬 자연스러운 것 같지 않니?





AUG. 2023. 엄마의 서른한 번째 편지.



바닷가에서 이도 좋아하는 돌 던지기. 엄마가 찍고 그림.


이전 29화 오직 마음이 짓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