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심리학과로 전과할까. 첫 학기를 끝내고 잠시 고민했다. 1학기에 들었던 <상담 과정과 기법> 강의가 내 성향과 잘 맞았고 해당 과목 교수님과 라이브강의에서 매주 만나면서 전문용어로 라포가 형성됐다. 앞으로도 자주 등장할 예정이지만 하여간 이 라이브강의가 요물이다.
전과하더라도 문창과 과목은 얼마든지 수강할 수 있으니까. 그래, 그러자! 했지만 다행히(?) 학교 공지사항을 확인하지 않아 신청 기간을 놓치고 말았다. 글을 쓰고 나서 여기까지 온 과정을 돌아보니 오묘한 타이밍이 참 많았다.
글쓰기로 먹고 살 수 있을까. 글쓰기로 안정적인 직장에 다닐 수 있을까. 도무지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안정적인 직장이 내겐 더 간절했기에 꿈을 놔버렸다. 쉽게 놔버린 후에도 크게 미련 남았던 기억은 없었던 걸 보니 사실 꿈이었다고 말하기도 그렇지만 어쨌든 돌고 돌아 다시 안정적인 장래를 위해 놔버린 꿈을 잡게 됐다. 이것 역시 묘하기 그지없다.
인연이 있으면 천 리 밖에 떨어져 있어도 결국엔 서로 만나게 된다더니. 이만하면 글쓰기와 만날 인연이었다고 말해도 되는 거겠지. 어쨌든 글쓰기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하고 있었음에도 글쓰기와 관련된 어떤 생각도 못하고 살았으니 이 또한 놀라울 따름이다.
편입 후 두 번째 학기가 시작됐다. 심리학 과목 세 개, 전공 두 개, 교양 하나를 수강했다. 2021년 1학기부터 지금까지 수강 이력을 살펴보면 글쓰기에 관심이 조금씩 커지고 있는 것이 보인다. 강의 듣고 교수님이 좋아지니 장르마다 관심이 생기고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2학기가 시작됐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여전히 좀 시큰둥했었다. 박진아 교수님께서 짓궂게도 그 부분을 콕 집어 말씀하셨는데 놀란 마음에 웃음이 나왔다.
“처음에 우리 과에 관심 없었죠?”
“티 났어요?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다 느껴졌지.”
정말 예리하시구나. 순간 학기 초에 버릇없이 굴었었나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딱 하나 찜찜한 게 떠올랐다. 국가장학금을 신청하고 장학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어서 등록금 납부를 미루고 있었다.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었음에도 지금 안 되면 다음 학기에 하지 뭐, 라는 생각에 급할 게 없었다.
그때 박진아 교수님께 문자 메시지가 왔다. 등록금 납부가 늦어지니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거로 생각하셨던 것 같다. 형편이 여의찮으면 같이 방법을 찾아보자고, 어떻게든 도와드리겠다는 따뜻한 메시지였는데 답장을 아주 사무적으로 보냈다. 어쩌면 교수님은 기억 못 하실 수도 있겠지만. 아니다. 예리한 교수님은 다 기억하고 계실 거다.
(도대체 얘가 어느 정도로 버르장머리 없었으면 이러나 싶을까 봐 말씀드리자면 나는 메시지 쓸 때 주로 습니다 체를 쓰는데 그땐 이모티콘도, 특수문자도 없이 빳빳하고 딱딱하게 보냈다. 아무튼 그랬다. 일단 넘어가자.)
이쯤에서 부끄러운 고백 하나 하자면, 편입하고 첫 학기엔 사이버대학을 조금 가볍게 생각했다. 정말 부끄럽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 만난 이 세계에 점점 깊이 빠지고 있다. 진짜 이상한 세계다. 이유도 목적도 달랐지만 쓰기 위해 모인 학우들이 자랑스럽고 멋지다. 너무 멋져서 울컥할 때가 많다. 밤낮 쓰고 읽는 마음들이 너무 곱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잘 쓰고 싶어 노력하는 학우들이 사랑스럽다. 말 한번 나눠보지 않았어도.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음에도. 학우들의 글과 그 안에 담긴 삶과 조그만 줌 화면에서 울고 웃던 모습을 기억한다. 잊을 수 없다.
대부분 이런 마음으로 인연이 되고 있지만 모두 같은 마음인 건 아니다. 이곳에서의 배움을 가볍게 여겼던 그때의 내 모습을 타인을 통해 볼 때가 있다. 순수함과 열정을 촌스럽게 여기고 가끔은 무시하는 것 같은 마음이 느껴진다. 그러다 누군가는 떠나기도 한다. 안타깝다. 이 뭉클하고 다정한 만남을 경험하지 못하다니. 진짜 좋은데.
가끔 아찔하다. 나도 그랬으니까. 혼자 배우고 혼자 쓰는 게 좋았다.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이 소속에서 떠나야 할 때의 허전함을 벌써 걱정한다. 사이버대학인데 열심히는 무슨. 학과 행사는 무슨. 오픈북인데 공부는 무슨. 두 번째 학기가 시작되면서 이런 생각도 서서히 바뀌고 있었다.
매거진 <싸대기>는 세종Cyber대 다니는(?) 이야기입니다. 문예창작학과에서 배우고 쓰면서 만난 설렘을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어 기록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