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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으니 Dec 27. 2021

한약방 할아버지가 지어준 것은 꽃이었다.

어렸을 때 이름 예쁜 친구들이 무척 부러웠다. 요즘 아이들 이름은 어찌나 세련되고 예쁘고 멋지기까지 한지. 이름만 봐도 시대가 많이 바뀌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지금 예쁜 이름은 할머니가 되면 별로일 거야’ 하며 애써 내 이름에 만족해보려 했지만, 뜻대로 잘 되진 않았다. 내 이름은 너무 흔하고 밍밍한 느낌이었다. 같은 반에 내 이름과 똑같은 친구가 있었을 때는 “은희들아~”라고 불려서 속상했다. 4분단 네 번째 줄 왼쪽 끄트머리에 앉은 기분이랄까? 그냥 ‘나’이고 싶었는데 무리 중 한 명이 된 기분이어서 싫었던 것 같다.


내 이름은 한약방 하시던 할아버지가 지어주셨다. 고 들었다. 어릴 때 자주 놀러 갔었는데 이젠 기억이 너무 흐릿해져서 덩어리로만 하나둘 남아있다. 한약방 할아버지 댁 냉장고엔 플라스틱 쥐 모양의 자석이 붙어 있었다. 동생이 진짜 쥐인 줄 알고 무서워해서 놀려먹다가 할아버지 방으로 불려 간 적도 있었다.


“동생은 조용하게 노는데, 언니인 네가 제일 시끄럽구나”

동생을 놀리고 시끄럽게 떠든 벌로 내 무릎에 침을 하나, 둘, 셋... 아프진 않았는데 침이 꽂혀있는 모양이 아팠다.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던 한약방 할아버지의 방은 꼭 비밀의 방 같았다. 할아버지는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으셨다. 떠들다 불려가서 본 할아버지는 언제나 좌식 책상에 책을 펼쳐놓고 읽고 계셨다. 고요함만 가득한 넓은 방 안, 할아버지와 나 단둘, 침을 빼주실 때까지 그 적막을 견디는 일은 침이 내 살을 뚫고 들어올 때 보다 더 긴장되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내 기억 속 할아버지의 방은 무섭기보다 환하고 따뜻하고 포근했다. 한약재 냄새도 왠지 좋았다. 커서 생각해 보니 할아버지는 말씀이 없으셨을 뿐 무서운 분이 아니셨던 것 같다.

한약방 할아버지와 정확히 어떤 관계인지 궁금해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내 이름 누가 지었어요?”

라고 장난스럽게 물어보니 아빠가 살짝 멈칫하셨다.


“와, 니 이름 좋다 아이가~”

이름이 맘에 들지 않아 물어보는 줄 아는 아빠의 반응이 재밌었다.


“네, 제 이름 좋아요. 한약방 할아버지가 지었다는 건 아는데 저랑 무슨 관계에요?”

족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아빠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형님...인데... 아빠한테는 그러니까 할아버지 쪽 형제들인데, 옛날로 치면 마~ 큰집으로 쳤다. 아빠한테는 4촌이고, 니한테는 8촌인가 그럴끼다”

“………”


얼핏, 대충, 그럭저럭 이해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아빠에게 또다시 전화가 왔다.

“은희야, 할아버지가 쉽게 말해 5촌 당숙인데, 친할아버지의 아버지 형제간 중 큰 형님 아들이다.”


순간 너무 웃겨서 전화기에 대고 깔깔대며 웃었다. ‘쉽게 말해’를 시작으로 끝날 듯 끝나지 않고 줄줄이 이어지는 설명이 너무 웃겼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열심히 설명해주시나 싶어 아빠 때문에 한참을 웃다가 순간 깨달았다. 아, 내가 아빠의 꼼꼼함을 닮았구나.


한약방 할아버지가 내 이름을 지어주시면서 아빠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이름이 읽히는 대로 좋은 이, 좋은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도 그렇게 지었다”라고.

그 당시 한약방 할아버지의 라임? 플로우? 에 새삼 놀라는 중이다.


사실 내 이름이 좋아지기 시작한 건 브런치 작가명 때문이다. 평범한 내 이름을 작가명으로 쓰고 싶지 않았다. 나인지 전혀 모르는, 하나밖에 없는 작가명을 쓰고 싶기도 했다. 메모장에 가득 써두었던 것 중 가장 유력했던 후보는 글이 맛있는 집이 되고 싶어서 지은 글슐랭이었다. 떠오르자마자 이거다! 싶었는데 멀찍이 밀어두었던 좋으니가 작가명이 되었다.


익숙한 것을 좋아하고 정든 것을 외면하지 못하는 탓에 결국 별명이 작가명이 되었다. 별명처럼 불렸을 때는 몰랐는데 작가명이 되고 나니 새삼 의미가 다르게 다가왔다. 작가명처럼 되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하루하루 더 마음에 드는 중이다. 이렇게 좋은 이름을 놔두고 하마터면 내내 부담스러운 이름이 작가명이 될 뻔했다. 아찔하다.


좋으니. 뒷말의 서술어나 문장을 꾸며주는 형용사. 이 단어를 넣으면 문장이 예뻐지고 가끔 수줍어지기도 한다. 어디에 붙여도 왠지 미소 짓게 되는 이 단어. 한약방 할아버지 덕분에 고운 이 단어가 내게로 와 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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