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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니라 쟤예요

by 좋으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금요일 밤.

늦은 시간까지 잠이 오지 않아도 조바심 나지 않아 좋다.

금요일 밤은 유일하게 늦잠 잘 수 있는 날이다. 추천받은 드라마를 폐인처럼 정주행할 때도 있고,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자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졸려도 그냥 잘 수 없다. 이대로 자긴 억울하지.


어느 금요일 밤. 오랫동안 책장에 꽂혀있던 책을 꺼냈다. 책등이 대략 5cm는 되는 책이라 읽기를 미뤄둔 책이었다. 한 장 한 장 읽다 보니 책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책 넘기는 소리, 연필로 스윽- 긋는 소리만 들릴 정도로 소음이 사라진 시간이었다.

한 30분쯤 지났을까, 어디선가 젊은 남녀 여럿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는데 부끄러움도 없이 잠자는 동네를 깨우고 있었다. 책을 읽는 데 도저히 집중할 수 없었지만 참을 수밖에.


조금 지나니 소음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소음을 뒤로 보내 가며 읽던 책을 마저 읽었다. 이번엔 창문으로 노란 불빛이 서성거린다. 뭐지? 나는 그 노란 불빛의 정체가 궁금해 창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내 방 창문엔 사생활 보호창이 한 겹 덧대어져 있다. 창문과 사생활 보호창 사이 4cm 정도의 틈으로 노란 불빛을 쫓았다.


남몰래 쫓는 줄 알았던 노란 불빛이 갑자기 나를 비췄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시커먼 남성과 눈이 마주쳤다. 아이고 깜짝이야! 다행히 속으로 소리쳤다. 하마터면 나도 동네를 깨울 뻔했다.

나는 굴러가는 낙엽에도 깜짝하고 놀라지만 누구나 놀랄만한 상황에선 되레 침착해질 때가 있다. 그때도 그랬다. 놀란 티를 내지 않고 태연하게 쳐다봤다. 자세히 보니 경찰이었다.







“그쪽이에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쪽”에 담긴 의미를.

창문을 열었으니 떠든 사람이 내가 된 것 같았다. 밤과 하나가 된 경찰복도 어찌나 존재감 있던지 괜히 긴장되었다.


“아니요, 제가 아니라 반대편 건물에서 나는 소리 같은데요”

그랬더니 경찰 두 분이 반대편 건물 창문을 향해 노란 불빛을 이리저리 비추기 시작했다.

노란 불빛과 내 목소리를 들어선지 이미 떠드는 소리는 소리 없이 숨은 뒤였다.

“거기 조용히 좀 하세요! 신고 들어왔어요! 신고!”

신고를 했다고? 떠든다고 신고를 하긴 하는구나, 좀 심하게 떠들긴 했지… 혼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창문을 닫았다.


그런데 나 지금 고자질한 건가?

창문을 닫고 나니 방금 나 자신의 모습이 꽤 우스웠다.

“불빛이 보여서 누군가하고 열어 봤어요” 라고 그냥 있는 대로 말하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제가 아니라 쟤가 떠드는 거예요”라고 일러바치다니.

허허 그것 참, 이거야 나 원.


고상한 척 앉아 책을 넘기던 나는 없었다.

급박한 순간 본성이 튀어나오는구나. 부끄러움에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이게 인간의 죄성인가, 나의 죄성인가.

이 순간에도 인간으로 뭉뚱그리는 나란 인간. 쯧.

차라리 드라마 정주행을 하고 있었다면 덜 부끄러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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