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도 집순이였지만, 전주로 이사를 온 후 나의 동선은 더 단조로워졌다. 새 직장과 새 일에 적응하는 데에 대부분의 에너지를 써버리는 탓이다. (3개월 차에 접어든 지금은 바쁘다, 진짜)잠자리에 들 때에는 '내일은 꼭 나가야지' 하고 다짐하지만, 정작 퇴근 후 운전석에 앉으면 결국 집으로 직행해버리고야 만다. 퇴근길 교통 체증과 여전히 어려운 끼어들기, 목적지에서의 주차 고민까지 하다 보면 그대로 지쳐버리기 때문이다. 심지어 장보기마저 온라인으로 가능해져서(군산은 쿠팡 로켓배송도, 이마트 배송도 이용 불가였다) 단 하나 있던 외출 동기마저 사라졌다.
그러니 어쩌겠나. 집에나 가야지.
문제는 가뜩이나 연고가 없는 지역에서, 돌아다니지조차 않다 보니 사람을 사귈 기회가 전혀 없다는 거다. 혼자 밥 먹고, 산책하고, 맥주 마시는데 도가 텄지만 그래도 가끔은 시시껄렁한 얘기를 나눌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다. 직장 동료가 아닌 그냥 아는 사람,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그 어떤.
한 줄기 희망, 독서모임
그렇게 사람이 그리워지면 독서모임을 찾았다. 내가 아는 방법은 간단했다. 각 지역에서 운영 중인 취미 기반 커뮤니티를 모아놓은 '소모임'이라는 애플리케이션 살펴보기. 서울에서 살 때 유용하게 이용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탈서울 직후에도 가장 먼저 이것부터 떠올렸다. 그런데 없었다. 독서모임뿐 아니라 커뮤니티가 거의 없었다! 원하는 모임을 찾으려면 인근(이라지만 자차로 1시간이 넘는 거리임)의 광역시까지 가야 했다. (청년) 인구의 부족을 이렇게 또 실감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었다. 왜? 외로우니까. 하지만 근처에서 운영 중인 모임이 필요했다. 천상 게으름뱅이에 운전까지 무서워하는 터라, 가까운 곳에서 모임이 진행되어도 온갖 핑계를 대면서 결석을 밥 먹듯 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를 뒤졌다. 검색하고 또 검색을 하니 다행히 운영 중인 독서모임 몇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독서 취향이 맞으면 더 좋겠지만 선택지가 적으니 일단 시간이 맞는 모임에 우선 참석했다. 그렇게 군산에서는 2개의 독서모임에 몇 차례 참여했다. 하나는 두 달 만에 해체되었고, 두 번째 모임은 일이 바빠서 점차 소홀해지다가 결국 자연스럽게(?) 이탈했다. 그렇게 군산에서 친구 만들기는 실패했고, 전주에서 심기일전해 다시 도전 중이다.
이렇게만 써놓으면 독서모임에 대한 좋은 기억이 많은 '독서광' 또는 '독서모임 열혈 횐님'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군산에서 뿐 아니라 그 이전에 서울에서도 취향에 맞는 독서모임과 친구를 찾다가 결국 포기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지난 실패에도 불구하고 독서모임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책을 통해 취향과 성향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MBTI나 첫인상에서 드러나지 않는 성격과 성향을 비교적 빨리 노출시키는, 낯간지러운 스몰토크 없이도 대화를 이어나가게 해주는 가장 좋은 매체가 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관성이겠지만.
로컬커뮤니티를 발견하다
책이라는 매개체에 대한 믿음에 더해, 전주에서는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고작 한 차례 참여한 것뿐이라 '촉'을 발동할 근거조차 부족한, 어쩌면 절박함의 발현일지 모르지만,조금 더 희망을 품는 건 참여 중인 독서모임이 '지향집'이라는 로컬커뮤니티에 기반하고 있어서다.
지향집은 말 그대로 '지향하는 가치들을 모아놓은 공간'이다. 연령, 성별 등의 구분/구별 없이 지향하는 바가 같다면 누구나 드나들고 쉬고, 밥 먹고, 일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서로 만나고, 연결된다. 지난여름, 취업 준비를 하면서 지향집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 소셜미디어 계정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마음이 끌렸다. 전주로 이주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 가운데 최소 5할은 지향집에 지분이 있을 정도랄까.
지향집을 시발점으로 로컬커뮤니티에 관심이 생겼다. 틈틈이 살펴보니 여러 지역에서 로컬커뮤니티들이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었다. 커뮤니티마다 색깔과 목적은 달랐지만, 연결되고 싶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왠지 마음을 흔들었다. 연고 없는 지역에 뚝 떨어진 이방인이 한 번쯤은 용기를 내어 문을 두드릴 수 있는, 환대를 기대할 수 있는 공간/모임들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다고나 할까.
THANK YOU, STRANGERS
어디 지역에나 사람들이 있다. 그 매개가 책이든, 혹은 조금 더 다양하고 열린 로컬 커뮤니티가 되었든. 나를 반겨줄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지난 시간에서 배웠다.
그러니 연고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탈서울을 망설이는 분이 있다면, 걱정 마시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정 갈 데가 없으면 전주로 오시라. 내가 일자리는 못 드려도 친구는 되어드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