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혜 May 03. 2023

시골장은 더 싸고, 클 줄 알았는데

로컬푸드직매장을 왜 뒤늦게 알았을까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통상적인 ’ 서울의 삶‘에는 익숙지 않았다. 내가 나고 자란 동네는 서울 중심가보다도 경기도에 더 가까운 북쪽의 외곽 지역. 지하철 역에서 도보로 20분가량 걸리는 꽤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고, 3개 구의 경계에 있어서 그런 건지 발전이 더뎠다. 1990년대 후반에서야 동네에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할 정도였다(아파트가 들어섰어도 살아보진 못했다). 그런 동네에 대형마트나 백화점은 당연히 없었다. 대신 집에서 걸어서 3~5분 거리에 시장이 있었고, 30여 년 동안 나의 먹을거리와 입을거리 대부분을 그 시장에서 해결해 왔다.


부모님 집 옆의 그 시장은 그래서 나에게는 '시장의 기준' 같은 거였다. 내게는 그저 동네시장이었기에 어딜 가나 이 정도 규모의 시장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강릉, 부산, 제주 등 국내 여행을 다니면서  보았던 시장은 더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나의 편견(?)은 더 굳어졌다.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것을 지금 살고 있는 소도시에 자리 잡고 한참 후에서야 깨달았다. '중앙'이라는 이름이 붙은 시장에 갔을 때, 부모님 집 근처 시장의 절반에 불과한 크기, 다양하지 않은 상품의 종류, 좋지 않은 상태에 크게 실망했다. 운전면허를 딴 직후에 겨우겨우 찾아간 이 지역의 유명한 5일장도 실망스럽긴 마찬가지. 지역 최대라는 시장의 규모가 부모님 댁 근처의 시장과 비슷했고, 물건의 종류는 더 적었다. 가격도 저렴하지 않았다. 관광객을 타깃으로 하지 않는, 인구 25만 명 소도시 시장의 규모는 클 수 없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다.


결국 대형마트로 발길을 옮겼다. 1인 가구를 위해 소포장된 채소들이 있어 오히려 편하고 저렴했다. 지방에 내려온 뒤에 대형마트에 익숙해지다니! 마트에서 장을 볼 때면 가끔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하지만 가격과 품질, 제품의 종류 등 모든 면에서 재래시장, 식자재마트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운전을 시작한 이후로는 대형마트를 찾는 일이 일종의 주말 루틴 중 하나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곳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로컬푸드직매장을 발견하다


우연이었다. 관광객이 많지 않아 주차 연습하기 좋았던 공원 주차장 옆에 로컬푸드직매장이 있었다. 솔직히 존재 자체는 이사를 온 초창기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 선뜻 발길이 향하지 않았다. 관광지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관광객 타깃의 그저 그런 매장 같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날도 고된 주차연습이 아니었다면 들어갈 생각조차 들지 않았을 터였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주차에 잔뜩 짜증이 나서 집에 가기 전에 잠시 관심을 돌리기 위해 매장에 들어섰다. 마실거리와 함께 채소를 몇 가지 사들고 왔는데, 맙소사! 신선도가 남달랐다. 냉장고에 일주일 이상 넣어 두어도 싱싱한 채소라니! 로컬푸드직매장은 그렇게 나의 최애 식료품 매장이 되었다.


물론 단점도 있다. 채소 종류가 들쭉날쭉해서 원하는 것을 살 수 없을 때가 잦고, 과일 종류도 늘 서너 가지뿐이다. 그럼에도 이제는 거의 모든 신선식품을 그곳에서 구매한다. 누가 이 예쁜 것들을 키우셨는지, 납품 일자는 언제인지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점은 기본 중의 기본이고, 계절에 맞는 채소와 신선한 달걀을 사 먹는 재미에 빠졌다고나 할까. 1천 원(5장) 짜리 조미김도 자주 사는 제품이다.


예상치 않은 득템을 할 때도 많다. 최근에는 킹스베리 딸기가 말 그대로 대박이었다. 20알 이상이 들어있는 한 팩이 겨우 5천 원이었는데, 바로 며칠 전 대형마트에서 1만 2천 원(한팩에 9알이 들었다)을 주고 샀던 것보다도 훨씬 맛있었다. 크기는 절반 정도에 불과했지만, 식품에서 가장 중요한 게 맛 아닌가! 이름에 맞지 않는 사이즈 때문에 겉보기로는 상품 가치가 떨어졌지만, 먹어보니 최고의 상품이었다. 3천 원에 한 단인 프리지아도 언급하지 않으면 섭섭할 만큼 훌륭하고.


다음 주에는 또 어떤 싱싱한 식재료가 기다리고 있을지 이 글을 쓰는 내내 설렌 마음이 든다. 이번 주에 사 온 파프리카와 토마토가 아주 맛있었는데 또 있으려나. 시금치와 양배추가 없어서 아쉬웠는데 다음엔 살 수 있을까. 장 보는 날이 기다려진다.


이전 04화 연고 없는 지역에서 살아남기(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