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취향이나 취미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숙소에서 출발해 내 집에 도착할 때까지 꼬박 24시간이 걸렸다.
유럽에 다녀온 것도 아니었다.
내게 주어진 휴가는 고작 5일. 주말과 개천절 연휴를 합쳐도 최장 10일 뿐이라
이번에도 나의 여행지는 동남아시아 국가 중 한 곳이었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유일하게 방문해보지 않은 나라, 태국.
그 중에서도 수도인 방콕과 중세 유적이 많이 남아있는 작은 도시, 수코타이에 며칠씩 머물렀다.
귀국길이 이렇게 험할 줄, 비행기를 예약할 때까지는 알지 못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후부터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비행기를 탔다.
2014년 이후에는 5시간 내외의 비행으로 갈 수 있고,
야간 비행편이 있어 시간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동남아시아 나라들을 주로 찾았다.
나름의 루틴도 있었다. 금요일 저녁, 정시 퇴근을 하고 밤 10시 이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출발.
그곳에서 꼬박 9일을 보낸 뒤, 일요일 아침에 도착하는 비행기를 이용해 돌아왔다.
완벽한 일정이었다. 더구나 음식도, 기후도, 사람도...모든 것이 나와 잘 맞았다.
그래서 나에게 휴가는 동남아시아 여행과 동의어였다.
탈서울, 탈수도권을 선택할 땐 이 루틴이 깨어질 걸 알지 못했다.
정시 퇴근을 해도 야간 비행기를 타는 건 불가능.
다행히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인천공항으로 직행하는 리무진 버스를 이용할 수 있었지만,
인천으로 가는 가장 마지막 버스의 출발 시간이 오후 2시30분이었다.
5일 연속 휴가만으로도 부담스러운데, 휴가 전 금요일에 반차까지 써야 한다니.
5.5일의 휴가는 심적으로 감당할 수가 없었다.
결국 토요일 오전 11시에 출발하는 비행편을 선택했다.
새벽 4시 반, 집에서 출발해 인천공항행 리무진에 올랐다.
인천에 도착하니 아직 체크인 카운터도 열리지 않았을 만큼 이른 시각이었다.
서울에서 살았다면 이제 슬슬 집에서 나왔을 텐데, 라고 생각하며 새삼 서울살이의 장점을 깨달았다.
귀국길은 더 험난했다.
태국의 소도시에서 대한민국의 소도시로 이동하는 루트를 잡아버린 탓이었다.
수코타이에서 탑승 전 2시간 대기. 태국 국내선을 타고 1시간 20분을 날아 방콕에 도착했다.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하니 출국 비행기 체크인 때까지
짧지도, 그렇다고 길지도 않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4시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수완나품 공항을 배회하다가, 결국 매우 빠르게 체크인을 했다.
면세 구역을 또다시 방황했고(2시간 30분), 무한 대기에 지쳐 지갑을 잃어버렸다.
다행히도 나의 지갑이 정신과 함께 돌아왔지만, 인천에 도착하기 전에 정신은 홀로 또 사라졌다.
지역으로 오는 리무진 출발 시간이 1시간이나 남은 탓이었다.
피곤에 절어 리무진 버스에 탑승, 하필이면 고속도로에 차가 그득했다.
예정보다 40분 늦게 시외 버스터미널에 도착했고, 공영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역살이의 유일한 장점은 무료 공영주차장이라고 생각하며 시계를 보니,
태국의 숙소에서 출발한 것과 정확히 같은 숫자를 시침과 분침이 가리키고 있었다.
아뿔싸, 태국은 한국보다 2시간 늦다는 사실을 이 글을 쓰며 알았다.
귀국까지 걸린 시간은 총 26시간이었다.
여행을, 나라 밖으로 떠나지 않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나이를 먹으며 여행에 취미가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이번에 또 다른 이유를 깨달았다.
"고추 말리는 공항"이라고 언론에서 아무리 비난을 해도,
지역에서 국제공항 건설을 그렇게 간절히 원하는 이유가 있었다.
서울, 수도권 바깥 사람에게는 환승하지 않는 비행편은 없었다.
최저가 비행깃삯 역시 서울 바깥 사람에게는 해당사항 없음이었다.
(왕복 리무진 버스비는 6만원이었다. 태국행 왕복 비행깃삯이 37만원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