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에 부르릉 하고 시동이 걸리면
매일 새벽 1시 무렵이면 들리는 소리가 있다. 창문을 열어두는 여름밤이면 더 선명하게 들리는, 1톤 트럭에 시동이 걸리는 소리. 트럭은 시동이 걸리자마자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주차장을 떠난다. 그러면 주변은 다시 고요해진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이 집에 살게 된 처음부터 그 트럭의 시동음에 귀를 기울였던 건 아니었다. 거의 매일 새벽 1시에 깨어있었지만 같은 시각, 같은 차량에 시동이 걸린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지금으로부터 딱 1년 전 - 2022년 6월. 나는 차를 샀다. 내 소유의 첫 번째 차량. 내가 빚을 내어 처음으로 구입한 것이었고, 그것은 내가 가진 가장 고가의 물건이었다. 서울에 계속 살았다면 평생 후순위로 밀렸을 행동(?)이었다.
운전면허를 따고, 자동차를 산다는 것은 나의 일상에서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9to6 출근 패턴이 아니었고, 내가 다녔던 언론사들은 늘 주차장이 부족했다. 결정적으로 나는 늘 이동 중에 일을 하고 있었다. 출근길에는 원고를 쓰거나, 취재 혹은 출연진 섭외를 위해 메모를 하면서 통화 중이었다. 퇴근길에는 오늘 놓친 이슈, 내일 더 커질 이슈를 찾아 기사를 읽거나, 인사이트를 발견하겠다며 소셜미디어를 탐독했다. 그때의 나에게 이동시간은 곧 업무 시간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짧은 휴식, 혹은 서울 여행이었달까.
탈서울 이후에 이동시간은 자유로워졌지만, 이동의 자유는 확 줄었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자동차로 고작 15분 거리였지만,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엔 험난했다. 대중교통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시내 버스가 하나 있었는데 배차간격은 1시간, 뱅뱅 도는 노선 탓에 거의 50분이나 걸렸다. 일주일에 한 번씩 새벽 당직도 나가야 하는데, 일주일에 한두 번은 야근도 해야 하는데...점점 더 막막해졌다.(그나마 회사에서 통근버스를 제공해 준 덕에 운전면허를 딸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출퇴근 외의 일상에도 문제가 생겼다. 한동안 나는 일주일에 1회 열리는 책모임에 참여했는데, 모임 하기 좋은 카페들은 어찌 된 일인지 차 없이 가기 힘든 곳에 위치한 경우가 많았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차가 없어서 모임에 못 나가다니! 먹고 살아야 하는데 마트에 장 보러 가는 일이 이렇게 힘들다니! 커피 한 잔 마시러 가려면, 영화 한 편 보려면...외출을 할 때마다 버스 노선도를 붙들고 씨름하는 나 자신이 좀 불쌍해졌고, 결국 지역에 내려온 지 10개월 만에 운전면허를 땄다.(아, 회사를 다니면서 운전면허를 따는 일은 또 어찌나 어렵던지! 공무원도 이렇게 힘든데, 민간 회사를 다니는 경우라면 가능했을까?)
나는 내 성격을 안다. 바로 운전을 시작하지 않으면 절대 차를 사지 않으라는 걸. 그래서 바로 중고차를 알아보기 시작했다(사실 면허 따기 전부터 알아봤다). 지인의 소개로 좋은 딜러를 만났고, 괜찮은 가격에 괜찮은 차를 손에 넣었다. 그렇게 2022년 6월 18일 토요일, 나의 첫 차가 내 집 앞으로 배송되었다. 처음 내 차의 운전석에 앉았을 때, 아파트 주차장에서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어찌나 무섭던지 고작 5분 운전을 하고 담이 왔다. 그래도 무슨 용기가 났는지 바로 다음날인 일요일, 혼자서 회사까지 차를 몰고 가는 데 성공했다. 조금 괜찮아진 나는 월요일 아침에도 혼자 차를 몰고 나갔고, 무사히 돌아왔다.
자신만만했던 탓일까. 집 앞에서 사고가 터졌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지방에서도 외곽에 있는 낡은 아파트라 늘 주차장에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차가 많아서 2칸이 연속으로 비어있는 공간이 없었다. 한참을 우물쭈물하다가 트럭과 경차 사이의, 그나마 공간이 넓어 보이는 칸에 각을 맞추기 시작했다. 한두 번은 더 오락가락 해야 하는데, 갑자기 내 왼쪽에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얌전히 주차되어 있던 차량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갑자기 심장이 쿵쿵거리기 시작했다. 길막을 하고 싶지 않은 탓이었다. 긴장을 한채 서두르다가, 아뿔싸. 브레이크와 엑셀레이터를 헷갈렸다. 내 차의 오른쪽 엉덩이가 트럭의 옆쪽을 그대로 밀고 들어갔다. 무려 트럭의 운전석 문에서부터 화물칸 1/3 지점까지.
맞다. 앞에서 언급한 새벽 1시의 트럭이 바로 내가 들이받은 그 트럭이다. 부쩍 마음이 심란해져서 차를 산 지 1주년이 된 날도, 첫 사고를 낸 지 1주년이 된 날도 잊고 지나쳤다. 그러다 문득 오늘, 트럭에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1년 전 그날을 상기시켰다.
나는 여전히 초보 운전을 벗어나지 못했지만(초보운전 스티커도 그대로 있다), 1년 전보다는 지방살이에 꽤 익숙해졌다. 엉망진창인 보도블록도, 포트홀 투성이인 도로 상태도, 부족한 인프라에도 이제는 크게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 운전면허를 딸 때만큼, 처음 차를 받았을 때만큼 지방에 계속 살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다. 직장이 없어서인지, 지방에서 사무직 구직에 어려움을 느껴서인지, 혹은 외로워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저 차를 가지고는 서울에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러니까 아직은 탈서울을 유지해야 할 이유가 하나쯤은 더 많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