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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혜 Sep 13. 2023

KXT가 있는데 왜 타질 못하니

서울과 지방의 차이를 실감하는 순간들

"서울에는 ㅇㅇㅇ이 있는데  여긴 없잖아. 지방에 오니 불편하지 않아?"라고 물으신다면, 어쩌면 내 대답은 당신의 기대와 크게 다를 수 있다. 왜냐면 별로 안 불편하기 때문이다.


먼저 나의 성향을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나는 게으른 집순이다. 입맛이 까다로운 듯, 안 까다로워서 밥은 주로 집에서 해 먹는다. 맛집이나 힙한 장소를 찾아다니는 것도, 쇼핑에도 그다지 흥미가 없다(없어졌다). 그렇다면 운동은? 그게 뭔가요. 


그럼 대체 뭐 하고 사느냐! 나름 바쁘다. 집에서 사부작사부작 쓸데없는 짓(요즘은 셀프 집수리, 겨울엔 뜨개질)을 하거나, 누워서 TV나 책을 본다. 그러다 지치면 잠깐 동네 마실을 다녀온다. 내가 하는 가장 활동적인 운동은 출퇴근, 그리고 자기 전에 하는 2~30분 정도 요가(라고 쓰지만 사실은 스트레칭 수준) 뿐이다. 생활 패턴이 단조로우니 사실 필요한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잘 없다.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 요소라곤 깨끗하고 아늑한 집, 살기 좋은 동네, 그리고 좋은 친구와 이웃뿐이니 지방으로 내려와서도 불편을 느낄 이유가 거의 없는 거다.


서울과 전주. 두 도시의 밤풍경은 닮은 듯 사뭇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과 지방의 차이를 실감하는 순간이 있다. 가장 큰 건 아무래도 대중교통이다.


군산에서 전주로 오면서 솔직히 기대했다. 서울에 오가는 시간이 단축되겠구나! 군산 내 집에서 서울 부모님 댁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가려면 모든 게 착착 맞아떨어져도 최소 4시간이 걸렸다. 군산시 내에서 이동 30분 + 고속버스 2시간 30분 + 서울 터미널에서 부모님 집까지 또 1시간. 차가 좀 밀리거나, 고속버스 시간이 안 맞으면 5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군산에 살 때에도 KTX 이용이 아주 어려운 아니었다. 하지만 익산역까지 가는 이동 시간을 계산하면 군산-서울 직행 고속버스와 소요 시간이 결국 비슷했다. 굳이 더 비싼 요금에, 갈아타는 불편까지 더할 이유는 없었다.


기대를 안고 전주로 왔다. 내가 사는 도시 안에 있는 역에서 KTX 그리고 SRT까지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 설렜다. 전주에서는 아무리 오래 걸려도 3시간 30분이면 서울의 부모님 댁으로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내 집에서 전주역까지 가는 길이 다소 험난(?) 하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은 전주역과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어(약 7km) 도보로 이동하기에는 버겁다. 결국 역까지 차편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집에서 전주역까지 가는 대중교통이라고는 시내버스 노선 딱 하나뿐이다. 문제는 배차 간격이 30분이고, 환승편도 없다는 점. 이 버스를 놓치거나, 중간에 차가 밀린다면 예약한 KTX와는 바이바이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었다. 여유를 가지고 움직이면 되겠지만, 시내버스와 KTX의 배차 간격을 고려해 미리 움직이다 보면 고속버스를 이용할 때와 시간차가 거의 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전주에서도 KTX 타는 게 어렵다니. 이런 고민을 할 때마다 지하철이 너무나도 그리워졌다. 물론 서울의 중앙버스차로도.


아, 비 오는 날에는 대중교통 타고 출퇴근도 하고 싶다(비 오는 월요일 지하철은 제외). 운전, 특히 빗길이랑 밤에 운전하는 거 너무 싫다. 



밤공기에서 선선함을 느낀 후에 나선 마실길에서도 차이가 눈에 들어왔다.


서울의 부모님 댁은 말 그대로 '베드타운'이었다. 낮시간에는 텅 비었던 동네가 저녁이 되면 북적북적해졌다. 특히 근처 천변을 따라 마련된 산책+자전거 도로에는 새벽 1시까지도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집 앞까지 오는 버스가 끊긴 늦은 밤 중에도 천변길을 따라 걷곤 했다. 삶이 신산해 잠이 오지 않는 날이면 새벽 서너 시에 나가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천변을 따라 늘어선 아파트 단지와 가로등 덕에 깊은 밤에도 길은 충분히 밝았고, 혼자가 아니라고 느낄 만큼의 인적도 늘 있었다.


지금 사는 동네로 거주지를 정한 결정적인 이유는 물론 돈 때문이지만, 부수적인 요소도 있었다. 집 주변에 천변 산책로가 있다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첫 밤마실 길에서 목격한 산책로의 모습은 내 예상에서 크게 벗어났다. 성인 남성의 키를 훌쩍 넘어설 만큼 크고 무성하게 우거진 초목에, 가로등도 없었다. 그 컴컴한 길 위를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당연히 거의 없었다. 그때가 겨우 밤 9시. 오래된 아파트 단지가 모여있는 주거 지역의 풍경이라기엔 너무 적막하고, 조금은 무서웠다.


닮은 듯 다른 도시의 풍경에 심란한 마음이 들었다. 전주 토박이인 회사 동료들에게 물었다. 원래 이곳의 밤풍경이 그러하냐고. 다른 동네의 천변 산책로는 제법 북적인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이외에는 일상에서 차이를 감지하는 순간이 거의 없다.


새 친구 만나기 어려운 건, 서울에서도 크게 다를 바 없는 일. 즐겨 찾았던 박물관이나 미술관 특별전도 이제는 취미라고 부르기 어려워진 상태가 되어, 그저 잠깐의 아쉬움이 스쳐갈 뿐이다.


김미향 작가는 <탈서울 지망생입니다>라는 자신의 책에 "소박한 봉급생활자의 꿈을 지방에서 이룰 순 없는 걸까"라고 물었다. "매우 가능하다"라고 답해주고 싶어 이런 글들을 적고 있다. 


물론, 일자리 구하기라는 가장 높은 장벽을 넘어야 하지만, 그 단계만 통과한다면 사무직 월급 노동자에게도 탈서울은 현실이 될 수 있다. 충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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