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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혜 Jun 21. 2022

'서울 출신'이라는 정체성

'서울이 아니면 뭐?'라고 생각했지만,

고향이 어디예요.

가끔 들었던 말이지만, 그동안은 이 말의 이렇게도 어마어마한 의미인 줄 몰랐습니다.

서울이에요, 라는 답변 뒤에 따라오는 반응 때문이죠. 탈서울 한 이후예요.


대체 왜 내려왔어요?라는 반응은 너무  자주 들어 이미 식상해졌고요.

심지어는 '서울 식당은 모든 게 맛있다', '서울은 모든 게 다 좋다'는 식의 끝도 없는 칭송이 따라옵니다.

그래, 바뀐 내 직장이 주로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걸 지향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받아 들이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닌가 봐요.

서울이 고향인 한 친구의 반응을 보니 서울에서 산다는 것이 엄청난 의미였던 것 같아요.

그 친구 역시 서울이 고향인데요, 최근 경기도 남부권에 아파트를 마련했어요.

청약 당첨이라니! 축하할 일이죠.


나는 서울 북쪽, 사실은 서울이라기보다는 경기도 북부와 가까운 곳에서 30여 년을 살았는데요.

그래서 경기 남부는 가볼 기회가 없었죠.

친구의 새집 이야기를 하다가 그 아파트가 위치한 지역을 포함해

경기 남부에 있는 몇 개 시들의 위치를 구별 못한다고 하니, 어디 가서 그런 말을 하지 말래요.

사람에 따라서 자신의 거주지를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대요.


나는 의아했어요. 서울에 있는 내 집(부모님 집)의 위치도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 했거든요.

그럴 때 나는 무시받는다는 느낌을 거의 받지 못했어요.

지역으로 내려온 뒤에도, 탈수도권을 한 뒤에도 내가 지금 사는 동네를 모른다고 하면

그렇게까지 불쾌했던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는 집을 구하고, 부동산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마음이 많이 상한 모양이었어요.

계급이, 부모보다 자신의 계급이 떨어지는 느낌이었을까요?

박탈감에 날카로워져 있는 그 친구에게 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죠.


어색하게 대화를 마치고, 업무에 다시 집중하려는 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 친구가 아니라, 내가 이상한 거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저기 어디 안정적인 공무원들이 모여사는 지역이 아니라,

지방 소도시에 있는 기관에 소속되어 있다고

자신의 조직에 애정도, 업무에도 의욕이라고는 하나 없이 일하는

이 영혼 없는 조직의 일원들이 마구마구 떠올랐거든요.

맞아요. 앞서 말했던, 서울 출신인 내게 '대체 왜 여기까지 온 거냐'라고 반응했던 그 사람들이요.


그렇다면 나는 왜, 괜찮을까요. 내 거주지역을 모른다는 말에도 나는 왜 아무렇지 않은 걸까요?

여러 이유가 있는 걸 알아차렸어요.

먼저, 탈서울은 나의 자발적인 선택이었고요.

전혀 안정적이지 않지만 남들 눈에는 안정적인 직업이 있죠.

많지는 않지만, 소득도 나쁘지 않은 편이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게는 '고향은 서울'이라는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어요.

서울에서 30여 년을 살았고, 학업을 마쳤어요.

그래서 나는 지금 지역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내 계급적 기반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내 안에 있었던 거예요.

나는, 여차하면, 여기가 마음에 안 들면, 손 탁탁  털어버리고 서울로 돌아가버릴 수 있는 사람이었던 거죠.


그러니까 사실은 나도 괜찮지 않았던 거였어요.

서울을 선망하는, 서울이 아니면  된다는 마음이 조금 다른 언어로 내게 새겨져 있었을 뿐이죠.

어쩌면 이렇게 속물적인지.

내 안의 속물을 이렇게 못 보고 살았는지.

대체 이놈의 주제 파악은  살까지 해야 하는 과제인지 모르겠어서,

그저 막하고 아득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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