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귀촌, 발령 빼고 - 3년 차 탈서울러의 잡상
지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고 나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을 꼽자면 단연 이 한 문장이다.
왜 서울을 떠났어요?
지역 이주, 후회하지 않냐고요
이 질문을 가장 자주 마주한 때는 역시 새 직장을 구하기 전후였다. 공무원이라는 '괜찮은 직업'은 구질구질한 설명이 필요치 않은, 탈서울의 합리적인 이유였다. 그래서 공무원을 그만두고 나왔을 때에서야 나는 비로소 이 질문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이전 직장 동료들, 그리고 서울에 사는 지인들은 내가 당연히 서울로 돌아올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어느 회사에서든, 면접관들은 내게 서울을 떠난 이유를 물었다. 전북 군산에서 24개월을 살았고, 주민등록상으로도 전북도민이었지만, 그네들에게 나는 여전히 '서울사람'이었다.
사람들은 탈서울의 이유를 왜 이렇게 궁금해할까. 습관처럼 뉴스부터 검색한다. 네이버 뉴스 검색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탈서울’이라는 표현은 1990년대 초에 등장했다. 서울의 집값을 감당할 수 없어 사람들이 수도권으로 떠나고 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이 문제를 다룬 기사도, 탈서울이라는 표현 자체가 쓰인 경우도 그리 많지 않다. 탈서울의 언급 빈도는 2000년대에 들어서며 증가하는데(인터넷 언론의 등장한 탓도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귀농·귀촌한 5060, 중장년층의 사례가 눈에 띈다.
그리고 2020년을 전후한 시기, 마침내 청년들의 탈서울 움직임을 다룬 기사들이 하나둘씩 나타난다. 소위 '로컬'스러움이 힙한 트렌드로 여겨지는, 지역색을 강조한 각종 굿즈(상품)와 여행지들이 인기를 얻어가는 유행과 함께 말이다. 나도 이런 트렌드를 일상에서 종종 느꼈던 것 같다. 지인들로부터 "탈서울이 유행”이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나는 걸 보면.
그 때문일까. 나는 조금 착각했다. 왜 서울을 떠났냐는 질문에 '서울이 싫어서. 지방이 좋아서 왔다'고 답하면 이해시킬 수 있을 줄 알았다. 큰 착각이었다. 귀농귀촌 열풍이 불었던 2000년대 초반에도, 로컬이 트렌드가 된 2020년 이후에도, 탈서울은 부동산과 관련 있는 영역에서 가장 많이 언급됐다. 작고 귀여운 월급으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서울의 부동산 가격에 대한 일종의 반발(?)로 인구가 수도권으로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그런 내용의 기사들 말이다.
그러니까 나처럼 수도권을 한참 벗어난, 귀농도, 귀촌도, 심지어 발령도 아닌 탈서울행은 여전히 미디어에나 등장하는 사례였다. '특기할 만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낯선 것이라는 의미의. 그러니 이유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했다. 문제는 나였다. 나에게는 서울을 떠나기로 결심했던 드라마틱하거나, 명확한 계기가 없었다. 그저 지난 몇 년 동안 좌절과 실망의 경험들이 켜켜이 쌓였고, 그러다 서울살이에 지쳤고, 결국 서울을 떠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부여안고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나는 자주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내 멋대로 질문을 조금 비틀어버리기로 했다. 솔직히 이 질문에도 역시 답을 찾기가 수월하지만은 않지만, 그나마 탈서울 3년 차에 걸맞은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왜 아직 서울로 돌아가지 않았나?
가장 절박한(?) 이유는 '집'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21평 형의 아파트(전세). 지어진 지 20년이 넘은 곳이라 낡고 불편한 점이 많다. 하지만 거실에 누워있으면 너무 휑하다고 느껴질 만큼 1인분의 삶을 꾸려가기에는 무척 넉넉하다. 이전에 군산에서 살던 집 역시 집의 규모면에서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몇 달 전, 서울에 있는 회사에 면접을 보러 다니면서 혹시나 싶은 마음에 내가 가진 돈으로 구할 수 있는 집을 찾아본 적이 있다. 빌라, 분리형 원룸, 월세였다(빌라 전세는 무서우니까). 주차장이라는 조건까지 더하면 선택지는 더 좁아졌다. 부동산 앱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아, 나는 이 넉넉한 개인 공간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집순이인 내게 집은 소중하니까.
집이라는 나의 공간이 커진 만큼, 일상에서의 작은 여유들도 늘었다. 지금 생각하면 출퇴근에만 왕복 3시간이 넘게 걸리는 회사에서, 매일 10시간 이상 일하며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모르겠다. 그때는 그게 직장인의 디폴트 인 줄만 알았는데, 아니었다. 군산에서는 출퇴근에 보통 40분, 전주로 온 뒤에는 왕복 1시간이면 충분(교통체증만 아니라면 왕복 30분 각)하다. 늦춰진 기상 시간과 빨라진 저녁식사 시간 덕에 밤시간이 오롯이 나의 것이 되었다. 그 시간에 쓸모 있는 일이라곤 전혀 하지 않지만, 야행성인 나에게 잉여로운 밤은 포기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 외에도 덜 경쟁적인 분위기이나 로컬푸드 마켓 같은 것들에 만족감을 느낄 때가 많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사실은 기억이 안 나는) 작은(?) 이유들도 분명 많았을 것이다. 전주로 이사를 온 다음에는 익일배송(군산에서는 쿠팡 로켓배송이 불가능했다)까지 가능해져서 그나마의 불만 사항이 하나 더 줄었다.
그러니까 탈서울을 후회한 적은 없어요?
무난하게 무탈하게 탈서울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가끔 깊은 고민에 빠질 때도 있다. 서울로 돌아가겠다는 결심마저 들게 했던 지난 구직 과정을 제외하면, 나를 흔드는 건 대게 아주 작은 일들이다. 예를 들면 며칠 전, 동생과 나눴던 대화 같은 것.
갑자기 훠궈가 먹고 싶어진 막내 동생이 특정 프랜차이즈 식당의 이름을 반복해서 불러댔다. 마침 나도 먹고 싶었던 메뉴라 같이 먹자고 답했다. 동생은 자기가 전주에 오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런데 그럴 수 없었다. 그 프랜차이즈 식당이 전주에 없었던 탓이다(서울과 부산에만 매장이 있다). 훠궈 전문인 다른 프랜차이즈 식당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원하는 걸 먹으려면/ 특정 물건을 사려면/ 전시를 보려면 서울까지 가야 하는 상황에 처할 때면, 울컥 지방살이의 설움이 북받쳐 오르곤 한다
그 울컥은 보통 찰나에 불과하지만, 가끔 깊은 감정으로 이어질 때가 있다. ‘그 식당’을 못 가는 것보다도 가족, 그리고 친구...함께 밥 먹고 싶은 사람과 마주 앉는 일이 더 어려워진 데서 오는 서러움 탓이다. 혹시 본가에 일이 생겼을 때 제때 가보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까지 밀려들면 여지없이 후회가 찾아오고야 만다.
전북에서 가장 큰 도시에 살고 있지만, 서울과 비교하면 인프라도 기회도, 놀거리마저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들 없이도 나는 잘, 문제없이 살고 있다, 아직은. 그리고 이곳에서 살아간 시간이 길어질 수록 앞으로도 후회하지 않고 계속 이곳에서 잘 살고 싶은 마음도, 잘 살 수 있다는 확신도 자라나고 있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