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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혜 Jul 19. 2023

서울단상

애증의 도시, 서울

길었던 방황의 시간이 끝나간다. 마침표를 찍기까지는 아직 몇 번의 고비가 남았지만, 패닉에 빠뜨렸던 난기류에서는 제법 벗어났다. 이제는 집을 나가 서울로 도망쳐버린 정신머리를 잡아와야 할 때. 그렇다, 나는 최근 서울에 다녀왔다.


서울만큼 복잡한 마음


지역으로 주소지를 옮긴 지 이제 만 2년. 거의 매 달에 한 번 이상은 서울에 드나들었지만, 거리감을 좁히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서울은 내가 없는 짧은 시간들 사이에도 조금씩 달라졌다. 아니, 좋아졌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듯하다. 서울 외곽에 위치한 부모님의 동네에마저 유행하는 프랜차이즈 상점이 들어섰고, 인스타 감성’의 카페와 식당까지 곳곳에 자리 잡았다. 얼마 전에는 태양광으로 충전되는 바닥조명이 부모님 집 앞의 이면도로에 설치돼  비가 오거나 밤이 깊을 때에도 길을 밝히기 시작했다.


소위 ‘시내’의 변화는 설명할 수 조차 없을 지경. 내게는 ‘제2의 고향‘과도 같았던 대학로와 종로에는 익숙한 상점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고, 이전에도 어려웠던 강남거리에선 아주 작은 낯익음 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 결국 길까지 잃었다. 여의도역에서 환승(5호선→9호선)을 하던 중이었다. 화살표를 따라갔을 뿐인데 정신을 차려보니 환승 게이트가 아닌, 개찰구 앞에 도착해 있었다. 한때 꽤나 자주 다녔던 동선을 이렇게 헷갈리다니... 서울과 정말로 멀어졌다는 것이 실감 났다.


2022년 가을, 서울 여의도공원


언제부턴가 서울에 갈 때면 긴장도가 높아졌다. 처음에는 인구밀도 탓인 줄만 알았다. 조금만 방심하면 어깨를 부딪힐 만큼 북적이는 거리, 숨 쉬기 힘들 정도로 꽉 들어찬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 그리고 도로에 가득한 자동차들과 마천루. 그런 모습들이 새삼 어색하게 느껴지더니, 고속버스 유리창 밖으로 현대-기아자동차 본사 건물이 나타나면(경부고속도로 - 만남의광장 근처에 위치해 있다) 나도 모르게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긴장이 시작되는 시점은 점차 앞당겨졌다. 서울행 고속버스 티켓을 예매할 때, 그리고 서울에 갈 계획이 잡히면 그 순간부터 걱정이 시작됐다. 핵심은 착장이었다. 서울에선 어딜 가도 잘 차려입은 사람들뿐이었다. 나는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내 차림새가 초라하지 않은지 자꾸 거울을 보았고, 옷매무새를 점검했다. 알고 있었다. '서울시민'이었을 때의 나와 지금의 내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런데도 서울에 가는 날이면 유독, 제대로 입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서울에 가던 날이었다. 고속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짜증이 치밀었다. 로퍼 안에 신은 덧신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나 말고는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을 페이크삭스였다. 출발 시간이 10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스킨 컬러 덧신을 신은 상태로 서울에 가고 싶지 않았다. 서울에 도착하기 전에 조치를 취하고 싶었다. 결국 편의점에서 흰색 덧신을 구입해 양말을 갈아 신은 후에서야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출발하고서야 그걸 굳이 갈아 신어야만 서울에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버린 내가 보였다. 서울시민이 아닌 내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것인가. 참담했다.


2023년 초, 서울역 일대


그래도 내 고향, 서울


그렇게 서울과, 과거의 나와 멀어지고 멀어졌던 그때. 갑자기 서울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움은 구직 사이트의 채용 공고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왔다. 백수생활의 무료함을 이기기 위해 방문한 부모님 집에서,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덩치를 불렸다. 그리고 오랜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나를 압도했다. 버둥거리며 생각했다. 내 사람들은, 내 인연들은 다 서울에 있는데 나는 왜 타지에서 외로움을 자처하는가. 새로운 친구를 찾으려 애쓰는가. 나의 선택과 행동들이 이상하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탈서울 생활에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아주 긴 시간을 고민했다.


결과적으로 나의 탈서울 생활은 연장되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나는 서울을 그리워하는 걸까. 아니면 그곳에 있는 내 인연들이 필요한 걸까. 복잡한 심경 탓에 잠은 오지 않고, 두서도, 결론도 없는 글을 며칠 째 붙잡고 있으려니 기분은 더욱 아득해만 진다.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결론을 내려보려고 한다. 어쨌든 서울은 내 고향이라고. 복잡한 감상에 빠지게 하는 곳이 고향이라고. 서울이 가진 지역적, 사회적 의미를 탈색해 버린 채, 지금은 그냥 이렇게 단순하게 결론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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