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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혜 May 09. 2022

집이라는 장소 (1)

2022 어버이날 후기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 가면 엄마는 늘 바빴다.

손님을 치르고, 요리를 하고 우리를 돌보는 일 외에도 엄마는 늘 스스로 분주했다.

특히 많은 시간을, 엄마는 할머니의 주방에서 보냈다.

싱크대에서 온갖 그릇을 다 끄집어내서 다시 닦고, 냉장고를 청소하고, 찬장을 정리했다.

할머니는 자신의 살림을 온통 뒤집어놓는 며느리가 싫지는 않았는지

엄마가 무엇을 하든지 그냥 뒀다.

어린 나는 평소 집에서도 깔끔한 편인 엄마가 할머니 댁에서까지 유난을 떤다거나,

할머니가 맏며느리에게 일을 시키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방문길에

엄마의 집에서 내가 과거의 엄마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이제 며칠 뒤면 지하철 무료 승차가 가능해질 나이가 되었지만,

(어찌 보면 굉장히 다행스럽게도) 엄마는 여전히 바쁘다.

엄마의 떡을 찾아주는 사람들이 많은 덕이다.

평소에도 가게에서 돌아오면 씻고 곧바로 잠드는데,

특히 요즘처럼 쑥이 무럭무럭 솟아나는 봄철에는 조금 더 바빠진다.

아무리 깔끔쟁이 엄마라도 꼼꼼하게 집을 돌 볼 여유가 없다는 걸, 나는 잘 안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여유롭게 찾아간 엄마의 집에서

엄마의 바쁜 일상과 동시에 과거 할머니 집에서 보았던 엄마의 뒷모습이 함께 떠올랐다.

싱크대 틈틈이, 화장실 구석구석이 예전 같지 않았던 탓이다.

고작 1년 전, 부모님의 집에 함께 살 때는 보이지 않았던 흔적들이었다.

왜 이걸 지금에서야 봤을까 하며, 이곳저곳을 닦았다.

다음에 올 때는 매직블록을 가지고 와야지 생각도 했다.


엄마는 말했다.

네 살림을 시작하니 그런 부분들도 보이기 시작하는 거야.


이 세 번째 독립은,

그렇게 또 이전의 독립들과 다른 점을 드러냈다.

내가, 드디어

1인분의 삶을 책임질 줄 아는,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중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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