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도 병인듯 하여라
"혹시 기자셨어요?"
처음 만난 사람이 이렇게 물어왔다. 만난 지 겨우 한두 시간.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라 나는 고작 5분 남짓 말했을 뿐이었다.
뭔가 들킨 것 같았다. 당황한 기색을 잔뜩 드러내며 한참을 머뭇거렸다. 어색하게 그렇다고 답했다. 궁금했다. 어떻게 알았지.
다른 사람이 이야기할 때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 태도, 질문하고 답하는 방식에서 그런 느낌이 묻어났다고 했다. "제가 리액션이 좀 좋죠!" 민망해진 나는 농담으로 상황을 넘겼다.
약 7년. 취재를 하며 살았던 그 시간이 헛되진 않았던 듯 했다. 이렇게 온몸으로 '나 기자요' 하고 뿜어내니 말이다.
그러고보니 언론고시 준비 기간을 포함해 10년이 조금 못 된다. 습관을 넘어 , 나 자신이 되어버리기 충분한 시간.
조간 신문 읽기처럼 좋은(?) 것들도 있지만 -안 보면 초조해지는 건 빼고-, 나쁜 게 더 많다. 어쩌면 기계적이었을 리액션, 그리고 가장 깊게 새겨진 나쁜 습관, 야근이다.
몸이 무거운 엉덩이를 기억한다. 분명 '칼퇴근'을 해도 되건만 엉덩이도, 다리도 떨어지질 않는다. 하지 않은 일이 남은 것 같고, 긴급한 연락이 올 수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정체 모를 압박감, 어색함, 초조함이 내 발목을 붙잡고 퇴근 시간보다 10분이라도 늦게 나가라고 보챈다.
이건 분명 습관을 넘어선 병이다. 칼퇴가 정상이 아닌 이 사회에서, 땡하면 손 털고 나가면 오히려 눈치를 보게 되는 분위기에서 발생한 심각한 질환이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자하니, 이 병은 전염성도 높아서 부장에서 과장으로, 과장에서 대리를 거쳐 주임으로 사원으로 쭉쭉 옮아간다고 한다.
치료 방법은? 모두가 안다. 먼저 가는 일이 미안해지지 않도록, 근무시간과 업무량이 비례해야 한다. 넘치면? 일을 줄이거나, 사람을 늘려야 한다. 동시에 부장님으로 상징되는 숙주-어쩌면 나였을 수도 있는-도 사라져주셔야 하겠고.
야근병이 사라지니 몸이 달라지는 게 느껴진다. 다시 책을 읽고 싶어졌고, 취미생활을 고민하게 된다. 가족과 대화를 하고, 친구들을 만난다. 주변 사람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물론, 돈 쓸 일은 늘었다.
2017년의 대한민국이 괴로운 중대한 이유에는 분명 야근병이 포함될 것이다. 환자들이 넘쳐나는 세상이 행복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이치 아닌가.
안정성 100%, 부작용도 없다. 칼퇴근이라는 치료약을 모두에게 허하라!
6시를 -조금- 넘어선 시각에도 텅텅 비어 있는 시내버스가 괜히 서글퍼진 월요일 저녁의 이상한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