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지향인(a.k.a.야매 세미 베지테리언)의 3개월

없이 살아봐야 안다?

by 김지혜

지난해, 폴로 채식(조류까지는 먹는)을 시도하다가 며칠 만에 무참히 실패했다. 그래서 올해는 방법을 바꿨다. 비덩! 덩어리 고기만이라도 먹지 말자!


채식 지향, 비덩 생활을 시작한지 어느덧 만 3개월.
(맙소사, 벌써 2017년의 네번째 달이다!)

솔직히 그 사이에 고기를 먹긴 먹었다. 양고기도 먹었고, 돼지국밥에 든 커다란 고기 건더기도 먹고, 수육도 족발도 한두점 했다. 기억을 더듬어 헤아려 보니 다섯 손가락이 조금 부족하다. 기억나는 것만 7번, 꽤 먹었다. (반성합니다만, 그래도! 회식, 각종 모임 등 술자리 횟수 따져보니 나름 선방했다고 자위를 해보는데... 자괴감은 피할 도리가 없다.ㅠㅠ)

없어 봐야 안다고 했나? 채식 지향인으로 고작 3개월 살았을 뿐인데 새삼 육류의 빈자리가 크다. 고기를 못먹어 힘들다는 뜻이 아니다. 밖에서 밥을 먹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음식이 무지막지하게 줄었다는 의미다.

비덩으로 살자고 처음 결심했을 때 떠올린 건 삼겹살 등 구운 고기류 뿐이었다. 이전에도 구운 돼지고기는 가능한 피하는 음식이었다. 5번 먹으면 4번은 으레 배탈이 나는 데다가,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던 어느날 맡았던 피냄새가 너무 역했기 때문이다. 구운 고기 안 먹기, 이 정도면 별거 아니겠다고 생각했다.


폴로 채식을 시도했을 때는 먹을 수 있던, 치킨을 못 먹는다는 걸 깨달은 순간. 비덩이 별거라는 사실이 실감났다. 치킨을 코앞에 두고 감자 튀김을 먹는데, 정말 와구와구 먹었다. 감튀를 빨리, 많이 먹었다.


그날 이후 먹을 수 없는 음식들과 매일 마주친다. 돈까스를 못 먹고, -원래도 1년에 두어번 밖에 먹지 않지만- 햄버거도 안 된다. 스테이크와 육회, 제육볶음과 두루치기, 탕수육과 깐풍기, 족발과 보쌈, 닭도리탕과 삼계탕은 당연하다. 수많은 술안주가 그렇게 사라졌다.

마음 속 메뉴판에서 지워버린 음식이 어느덧 한 무더기인데, 다른 쪽에 또다른 것들이 쌓이고 있다. 덩어리 고기로 분류해야 하는 건지 고민되는 음식들이다. 예를 들어 곱창(볶음/전골/구이), 순대(국/볶음), 감자탕이나 갈비탕, 그리고 햄과 소시지...등등.


뭘 먹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늘어갈 수록 새삼 깨닫는다. 내 식단이 이토록 '남의 살'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구나. 먹거리에 대해 별 고민 없이 입과 배만 채우고 있었구나.


우리 모두 다같이 고기를 끊읍시다! 이런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나는 여전히 냉면 위에 얹어진 고기를 먹는다. 삼겹살에서 나온 기름으로 구운 버섯과 감자도 먹는다. 고기가 들어간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소고기 육수로 맛을 낸 칼국수와 쌀국수, 라멘도 잘 먹는다. (쌀국수와 라멘은 정말 포기할 수 없다!)


다만, 한번쯤 같이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내가 먹는 이 음식이 어디서 온 건지, 누가 어떻게 키운 건지, 음식이 되기 전에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중국에서 소득 수준 상승과 함께 육류 소비가 늘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국민소득이 2만7천달러까지 상승하는 동안, 우리도 이전보다 육식을 더 많이 하게 되지는 않았을까? 동물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불편하다고 해서 채식주의를 고민할 이유가 없는 게 아니다. 잡식 동물인 우리는 어쩌면 필요보다 넘치게 고기를 먹고 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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