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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혜 Apr 17. 2017

다름을 머리로만 알면 나타나는 증상

오늘도 반성문

어제는 현타가 줄줄이 소세지 같이 이어진, 좀 많이 한심한 날이었다.


#1.
 외출을 하는데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인 한 분이 버스에 타셨다. 저상이 아닌 일반 버스였다. 너도나도 그 분이 타고 내리는 일을, 휠체어를 옮기는 일을, 버스에서 휠체어를 붙잡고 있는 일을 함께 했다. 나까지 순서가 돌아오지 않았다. 안절부절하며 상황을 지켜봤다. 뭔가 흐뭇한 기분으로.


그 분이 내리고, 제일 열심히 도와주신 기사님과 아주머니 한 분이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저상 버스가 있는데 왜 일반 버스를 타냐는, 그런 내용이었다. 기다렸다가 타면 되는데 왜 그러냐고... 나도 따라 끄덕이다 며칠 전 읽은 기사가 생각났다. 저상버스를 교체할 때, 같은 저상으로 바꾸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었다.(관련 기사 ▷ http://www.redian.org/archive/108828)


나는 분명 저 기사를 읽으며 같이 분노했다(고 착각했다). 그런데 막상 이런 상황에 놓이니 다른 생각을 품어버렸다. 대체 왜, 왜! 휠체어를 탄타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보다 더 오래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뒤늦게 분노한 나는 자괴감에 휩싸였다. 문제는 뒤북으로 깨달으면서, 당연한 일에 뿌듯해하는 내가 너무 부끄러워서였다.


#2.

두번째 타격이 곧바로 이어졌다. 지적인 척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는 모임 자리였다.


누군가 동성애 이야기를 꺼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고 싶어하는 게 본능이다. 동물도 그렇다고 한다. 그런데 진보라는 건 이 본능을 거스르는 걸 인정하는..."


읭? 나는 진화심리학을 인용하면서 이 주제를 말하는 사람(이라 지칭해주기 싫지만 대체어 못 찾음) 치고 제대로 된 말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내 대응이었다. 분위기가 이상해질까봐, 나는 부글거리는 성질을 애써 참았다.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3.

 맞은 편에 앉은 또다른 분이 연이어 펀치를 날렸다.


자기는 여자이지만 여자들이 이래서 문제고 저래서 문제라고 말하는 게 너무 듣기 싫다고. 의도적으로 그런 말 안 한다고. 자기는 문제라고 느낀 적이 별로 없다고.


특히, 자기가 요즘 집을 구하는 데 왜 무섭다고득 하는지 이해가 잘 안 간다고 했다. 한 번도 혼자 살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전제를 붙이기는 했지만, 너무 나이브한 얘기였다.


나는...내 경험을 말했다. 캄보디아서 혼자 살았다니 거기라서 그렇단다. 그리고 그건 남자라도 무섭다(진화심리학 발언한 그 놈)는 말이 따라왔다.


아니...캄보디아서 살아봤나? 거기 생각보다 살만하다. 글고 나는 살해나 도둑이 아니라 강간의 공포가 크다고! 꾹꾹 참고 말했다.

강간이라는 단어를 입밖으로 꺼내자 그때서야  조용해졌다. 나도 그 자리에서 입을 다물었다.


#. 그리고...

나는 그 모임에 다시 나가지 않을 것이다. 2연타 플러스 알파를 맞고 결심했다. 그렇지만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되는 것일까. 틀린 걸 알면서, 틀렸다고 말하지 않고, 도망가버려도 되는 것일까.


혼자 젠체하면서, 자기만족 하다가 달다구리를 쳐먹고 더 우울해졌다. 그러니까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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