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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한 소리,한담(閑談)
by 김지혜 Jul 31. 2017

나보다 더 나쁜 놈

아니 그러니까 내로남불

쟤가 먼저 때렸어.


친구인지 형제인지 관계는 알 수 없지만, 서로 치고박고 싸워서 혼나는 모양이었다. 선빵을 맞아 갚아준 것이라는 아이의 항변은 자기방어와 같은 말일테지만, 요즘 들어 이런 말이 부쩍 달리 들린다.


아마 다음과 같은 말들도 한묶음일테다.


나도 잘못했지만, 쟤가 먼저.
나도 잘 한 건 아니지만, 쟤가 더.
이것도 문제지만, 저게 더 근본적인.


전면 부인은 아니기에 뭔가 조금 나아 보인다. 하지만 정신 차리고 보면, 본인이 문제라는 걸 인정하는 말은 장식일 뿐. 정작 책임은 저쪽에 모조리 떠넘고 있다.

사실 이건 내가 즐겨 쓰는 전형적인 변명의 레토릭이다. 여지껏 수차례 지적을 받으면서도 알지 못했다. 좋은 사람일수록 특히 이와 관련한 조언을 해주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뭐가 문제인지 이해도 못하면서 고치겠노라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있던 말들이 신경쓰이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 언젠가부터 부쩍 자주 눈에 띄기 시작한 '**가 더 나쁜데 거기가서 따져라', '왜 @@은 그냥두고 ㅁㅁ한테만 뭐라고 하냐'... 등과 같은 댓이 계기였다.


내로남불이라고 실컷 비아냥거렸다. 난 마치 그렇지 않은 듯 혀를 끌끌 찼다. 지금 생각하면 몹시 부끄럽게도 나는, 정말 저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문제의 핵심알려준 건 이번에도 역시 단 한 문장이었다. '서울의 모든 집에서 태양광 발전을 한다면, 핵발전소 24기를 줄일 수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말은 뭔가 훅 들어와서는, 나의 비겁함을 감쌌던 껍데기를 깨부수기 시작했다.

평소 나는 에어컨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더위를 잘 타지 않고 에어컨 바람을 싫어하는 데다가, 프레온가스 등이 내 주변을 더 덥게 만드는 게 마음에 걸린다는 이유 때문이다. 나 하나 시원하자고, 주변에 에어컨 없는 이들을 더 덥게 만드는 일이 나는 너무 불편했다.


캄보디아에서 지냈던 몇 달은 이 생각을 특히 강화시켰는데, 내가 에어컨을 사용하면 실외기와 근접한 나의 옆집, 에어컨은 커녕 냉장고도 없고 선풍기 사용도 부담스러운 나의 옆집이 더 더워졌다. 그 현실을 목격한 후로 나는 에어컨을 함부로 켤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열대지역에서 혼자 지냈던 석달 동안, 에어컨을 단 한 번 가동했다. 그것도 이사 직후, 에어컨이 정상인지 테스트하기 위해서였다.


그랬다. 전기를 아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탈핵을 지지하면서도 산업용 전기만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전기 과잉 소비의 원인을 포항제철에, 현대중공업에 모조리 떠넘겼다. 핵발전과 전기 사용, 에어컨의 관련성을 파악하지 못한 나머지, 일반 가정은 아무리 노력해도 핵발전소를 줄이는 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내가 틀렸다는 것이, 박원순 서울시장의 말이었다. 껍데기가 부서지고 초라한 속이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더 나쁘고, 덜 나쁜 쪽은 있을 것이다. 죄의 경중은 충분히 다를 수 있고, 그에 따라 책임의 무게도 달리 져야 한다. 허나 저쪽의 죄질이 더 나쁘다고 해서 나의 행동이 죄가 아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더 추악한 행위가내 면죄부가 될 수 없다는, 이토록 명확한 사실을 나는 왜 자꾸만 는가. 구차하고 치졸하게, 다른 쪽에 책임을 넘기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고 살고 있는 건 닌지 사뭇 두렵다.

쉽게 고쳐질 지 의문이지만(이번에도 전제를 달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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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키도 작고 마음도 작은)시민입니다. 
아직도 사춘기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성장통은 언제 멈출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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