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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혜 Jan 04. 2018

잃어버린 것

2017년을 뒤늦게 돌아보다

날씨 탓이었을까. 가슴에 찬 바람이 일었다.


우울이나 미련은 확실히 아니었다. 상실감과도 결이 달랐다. 아주 누추하게 남아있던 무엇인가마저 무너져내린 기분, 갑자기 온 몸에 힘이 풀렸다.


언제부터였던가. 사람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워졌다. 따뜻한 말과 조언이 특히 그랬다. 나를 향한 모든 말들이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거짓은 아니지만, 빈말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낯선 사람들을 만나기가, 친해지기가 자꾸만 더 무서웠졌다.


서로가 누군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통성명조차 하지 않는, 그저 여행지에서 스쳐지나가는 이들이 누구보다 편하다고 느끼는 단계를 넘어선지는 이미 오래였다. 정말 소수를 제외하고는 타인에게 진심을 내보이지 않게 된 것도 한참 지난 일. 나는 다른 이들도 나와 같을 거라고 믿게 되어버렸다.


진심.


지난해를 돌아보며 가만히 생각해보지만 도무지 모르겠다. 내 진짜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무슨 감정을 품었던 걸까. 나는 어떤 말을 하고, 하지 않았던 걸까. 어쩌면, 나는 내 자신에게조차 솔직한 적이 없었을 지도 모르겠다.


이유 따위는 궁금하지 않다. 왜 아무도 믿지 않게 되었는지 안다고 하더라도 바뀔 것이 없으므로.


그렇지만 바닥엔 구멍이 숭숭 뚫려 요란하게 삐걱거리는 2018년, 내가 맞딱뜨린 이 자리가 어디선가 불어오는 찬바람에 무너질까. 점점더 두려워지고 있다는 것 정도는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다른 무엇도 아닌, 바닥에 나뒹굴 언젠가의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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