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한담(閑談)
왜 때문인지 이번 여름 휴가는 떠나기 전부터 우여곡절이 자꾸 생긴다. 다행히 큰 손해 없이 해결되어 가고 있지만, 해결하느라 받은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어딘가에 위자료를 청구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서 남기는 기록 - 아고다, 익스피디아 등을 이용할 때 알아두면 좋을('은' 아니고 '을'이다. 꼭 필요한 정보는 아니라는 뜻) 점!
※ 이것은 여행기가 아닌 여행 준비기이며, 여행지에 대한 정보는 1도 없음을 미리 밝힌다. (여행기를 기대하신 분이라면 조용히 뒤로 버튼을 눌러주심 되겠습니다.)
#스압사전경고 #사진도조금밖에없음
여름휴가를 언제 어디로 갈지 몇 달째 고민만 하다가 8월 마지막 주 일정으로 뱅기표를 구매했다. 결제 버튼을 누르고, 돈이 빠져나갔다는 문자까지 받았는데... 아뿔싸! 회사의 중요 행사가 그 기간에 끼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예약한 지 10분도 되지 않아 사태 파악을 하고, 취소를 하기 위해 사이트(익스피디아)를 뒤졌다. 그런데 도무지 취소하는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고객센터에 전화조차 할 수 없었다. 이미 밤 12시가 넘은 시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뱅기표 구경하다가 즉흥적으로 예매를 해버렸던 것이다.
뱅기표 구매 취소는 처음이었다. 탑승 조건을 검토할수록 환불을 못 받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커졌다. 내 피 같은 00만원...걱정이 태산 같이 쌓였다. 두근두근 폭발 직전인 심장을 붙들고 거의 울면서 검색을 하는데, 구매 24시간 이내에 취소를 하면 위약금이 없다는 정보들이 많았다. 올레! 바로 기분이 좋아져서 익스피디아에 이멜을 발송했다. 바로 취소한 것이라는 흔적을 남길 목적이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익스피디아에서 연락이 왔다. "위약금을 내셔야 합니다!" 24시간 채우려면 아직 15시간이나 남았는데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상담원은 뭔가 본인이 죄를 지은 것 마냥 굉장히 미안해하며 설명을 했다. '해외 사이트인 데다가, 일단 여행사가 구매를 해놓은 표이기 때문에 소비자가 구입한 즉시 발권이 된다...'는 취지로 이해를 했다. 발권이 되었다면, 위약금은 피할 수 없어 보였다.
그래, 덜렁거린 내 탓이지 누구의 잘못이겠는가. 저가 티켓인데 일부라도 환불해주는 게 또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렇게 마음을 고쳐 먹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속상하다. (그날 저랑 통화했던 상담사님, 제가 울컥해서 약간 목소리가 높아졌던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10만원아, 잘 가거라. 맥주가 몇 잔이더냐...
* 결론 1. : 해외 사이트에서 뱅기표 구매 시에는 '24시간 이내 구매 취소 시 전액 환불' 컨디션이 통하지 않을 수 있으니 결제 버튼 누를 때 신중하세요.
며칠 지나지 않아 장소와 날짜를 모조리 바꾼, 새로운 뱅기표를 구입했다.
뱅기표를 샀으니 이제 숙소 물색에 들어갈 차례! 숙소 사장님들한테는 죄송하지만, 나는 일단 맘에 드는 숙소가 있으면 우선 예약부터 해둔다. 아고다를 주로 이용하는데, 가격이 조금 비싸도라도 꼭! '▲ 숙소에서 지불 ▲ 0월 0일 이전 취소는 무료'인 옵션을 선택한다. 며칠 두고 보면서 맘에 덜 드는 숙소를 하나씩 취소하고, 그나마 맘에 드는 한 군데로 선택을 확정하는 것이다.(최소 여행일자 3주 전까지는 예약을 확정하긴 하는데... 혹시 나 블랙컨슈머인가. 괜히 이 글 썼다가 영업 방해로 잡혀가면 어쩌지... 긁적)
이렇게 무더기로 숙소 예약을 하다 보면, 내 이메일에는 아고다가 보낸 메일이 쌓여간다. 물론 나는 이 메일들을 열심히 안 읽는데, 그러다보니 이제서야 알게 된 게 있다. 이 메일을 잘 들여다보면, '숙소에서 해당 날짜 이전에 결제를 할 수도 있다'는 주의사항이 쓰여 있다는 것! (이 문구를 보자마자 나는 쫄보가 되었고요...)
이 문제가 생기기 전에는 저런 주의사항을 몰랐던 터라, 이번에도 늘 하던 대로 숙소마다 집적거리며 예약을 걸었다. 그리고 하나씩 취소를 하는 절차를 밟고 있는데... 어느 날 저녁. 띠릭하고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해외 승인 00.00달러.
이런 적이 없어서 무지 놀랐다. 그래서 일단 문자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자세히 보니 이미 어제 취소를 한 숙소에서 결제를 했다는 거였다. 잠깐, 뭐가 됐든 취소한 지 열몇 시간이나 지난 예약 건을 결제한 건 좀 많이 이상하지 않은가?!
문자를 받은 시각이 밤 7시. 고객센터는 이미 업무가 끝난 상태라서 이번에도 즉각 이멜을 보냈다. 각을 세워서 블라블라블라 쓰고, 결제됐다는 증거도 다 첨부해서 보냈다.
담날이 토요일이었는데 전화가 왔다(아고다는 토욜에도 고객센터를 하더라). 친절한 상담원이 숙소 측의 실수가 맞다고 확인을 해줬다. 아고다에서도 숙소에 연락을 했지만, 결제를 취소하려면 카드 정보가 필요하기 때문에 나도 직접 숙소와 연락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근데... 카드번호 / 유효 기간/ 소지자 이름 / CVC값을 모두 써서 이멜을 보내야 한다고 했다. 뭐시?! 이메일에 저 정보를 모조리 입력해서 보내라고? 저거 다 알면 해외 사이트에서는 결제가 가능한데? 찝찝한 기분이 들어서 상담사에게 되물었다. 상담사는 매우 곤란해하며 아고다에서도 모조리 요구할 때가 있다고, 다 써서 보내라고만 했다.
얼마 안 되는 금액이지만 정성껏 '영문' 메일을 썼다. 불안한 마음이 채 가시질 않아 카드번호와 CVC값 일부는 * 표시로 가린 채 보냈다. 다시 월요일이 시작되었을 때 숙소 사장님으로부터 답장이 와 있었다. 직원의 실수라고 환불해 준다는 쿨한 답변. 기분이 나아졌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총 사흘. 그럼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결제된 날짜는 8월 11일. 오늘은 9월 1일.
그렇다. 제때(아마 열흘 이내. 외쿡이니까) 환불을 받았다면 나는 지금 이렇게 긴 글을 쓰는 수고를 자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 성질이 나는 건 나는 아고다에서 숙소 예약을 했는데, 내 숙소는 부킹닷컴을 통해 내 예약 내역을 전달받았다는 사실이었다.
부킹닷컴의 등장은 정말 무뜬금이었다. 쿨하게 환불해주겠다고 했던 숙소 측에서 일주일이 넘도록(사고 발생 열흘 째) 아무런 소식이 없자, 나는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혹여 카드정보를 모두 공개하지 않은 게 문제가 될까 싶은 마음이었다. 나는 숙소 측에 다시 이멜을 보냈고, 숙소 사장은 다시 확인해보겠노라 답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숙소 측에서 이멜이 또 왔다. 부킹닷컴 측에 다시 연락을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부킹닷컴이라니? 숙소에서 착각을 했나 싶어서 '나는 아고다를 통해 예약을 했다'고 답장을 보냈다. 숙소 사장은 '자신은 내 예약을 부킹닷컴을 통해 전해받은 게 맞다'면서, '괜찮으면 아고다에라도 연락을 다시 한번 해달라'라고 요청했다.
무슨 상황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 정보를 아고다가 부킹닷컴에 넘겼다는 소리가 아닌가?! 결국 뚜껑이 열렸다. 처음에 연락을 해왔던 아고다 고객센터로 이 상황에 대한 항의성 이메일을 보냈다.
다음날, 아고다 고객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아고다는 부킹닷컴 등과 제휴가 되어 있는데 일부 예약의 경우에는 제휴 사이트를 통해서 하기도 한다"는 게 핵심 내용이었다. 아고다 상담사는 내 이메일 주소를 부킹닷컴에 넘겨줘도 되냐고 물었고, 나는 오케이 했다.
전화를 끊은 직후에는 '뭐시라?!' 싶은 마음뿐이었다. 성질이 머리 끝까지 차올라서, 해당 숙소를 예약한 직후에 받은 이메일부터 뒤지기 시작했다. 소비자단체에 고발이라도 할 생각으로 말이다.
이메일을 다시 보니 내가 그냥 흘려보낸 내용이 기입돼 있었다. 부킹닷컴을 통해 예약이 된다는 게 하단에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는데, 이걸 간과했던 거다. 아고다에서 예약을 할 때마다 이멜에 적혀 있던 저런 공지사항을 봤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스쳐 지나갔다. 아..........이래서 계약서는 꼼꼼하게 봐야 되는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아고다에서 답장이 왔다. 부킹닷컴에서 메일을 줄 거라고. 그리고 곧 부킹닷컴에서도 메일이 왔다(8/26). 워킹 데이 하루 이내에 카드 번호를 입력할 수 있는 보안창 링크 주소를 보내주겠다고. 보안창 링크 주소는 그 메일이 온 지 사흘 뒤인 8월 29일에서야 내 이메일 계정에 도착했다. 나는 바로 카드 정보를 입력했다.
그리고 8월 31일. 부킹닷컴 상담사가 전화를 걸어왔다. 외쿡인이었다. (음질이 안 좋아서 잘 못 알아들은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전화 영어 죽어라!!!) 거의 절반밖에 못 알아 들었는데, '곧 환불이 될 거다', '이메일을 보낼 테니 정보를 입력해라', '결제 취소를 해도 입금까지는 며칠 더 걸릴 거다'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이미 이메일을 받아서, 카드 정보 입력을 했다고 답했다. 상담사는 놀라며 알았다고 했고 - 원래 이렇게 부서 간 의사소통이 안 되나? - , 우리는 서로 좋은 하루 보내라며 전화를 끊었다.
앞서 말한 대로 나는 아직 환불도, 결제 취소 문자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끝났다는 예감은 든다.
이 예상치 못한 사고를 통해 하나 얻은 게 있다면, 공짜로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것 뿐. 피곤하다.
* 결론 : 아고다라고 해서 다 같은 아고다가 아니다. 다른 사이트를 통해 예약이 되어도 아고다는 사전 고지를 하지 않는다. 그러니 숙소 예약시에 오는 메일을 꼼꼼하게 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