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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한 소리,한담(閑談)
by 김지혜 Jul 24. 2017

사람 값 - 오래가는 5달러

오래된 호주 워킹홀리데이, 한담

일을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매니저가 불러 세웠다.  잠깐 기다리라는 말에 움찔. 첫날부터 뭔가 잘못했나 잔뜩 긴장한 나를 앞에 두고, 매니저는 포스기의 돈통을 뒤적였다.


꺼내든 것은 5달러 짜리 지폐. 동그랗게 떠진 눈은 작아질 줄을 몰랐고, 한 손은 엉덩이 근처에서 또다른 손은 가방끈을 잡은 채 그대로 굳어 버렸다.  가뜩이나 익숙하지 않았던 영어는 두뇌에서 모두 휘발됐다. 네 몫이라며 받아가라는 점장의 손을 쳐다만 보다가, 간신히 한 단어를 입밖으로 꺼냈다.

왜why?


2007년 2월 무렵이었다. 벌써 10년도 더 지나버렸지만, 이 순간의 기억은 곧잘 내 머리에서 자동 재생되곤 한다. 이유없이 지치는 날이면 더더욱.


 시기 나는 워킹홀리데이 비자, 호주 서부의 주도인 퍼스Perth에서 머물고 있었다. 한국계 교포가 운영하는 불고기 전문 식당에서 하루 3-4시간, 일주일에 5-6일을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했다. 최저임금의 3/5 수준 밖에 받지 못했지만(이상하게도 한일계 식당의 대부분은 최저임금을 준수하지 않았다. 대신 세금도 내지 않아서, 실수령액 기준으로는 시간당 2-3불 정 차이가 났다.),  집값을 포함한 생활비는 충다.  


다른 일을 할 생각은 없었고, 여유 시간은 차고 넘쳤다. 책 읽고, 산책하는 일도 계속되니 무료했다. 알바하는 식당에서 채 20걸음도 떨어지지 않은 또다른 가게 유리창에 붙은 쪽지를 본 게 그 무렵이었다.

"자원봉사자 구함. 하루에 2시간"


무슨 용기가 났던 걸까. 그냥 지나치기만 했던 그 매장의 문을 결국 열고야 말았다. 문틈으로 인도를 연상시키는 향의 냄새가 쏟아져 나왔다. 매장 안은 엽서, 사진부터 커피, 초콜렛, 그리고 인형, 접시를 넘어 뭔가 용도를 알 수 없는 장신구들까지, 호기심을 동하게 하는 온갖 물건가득 채우고 있었다. 

카운터를 지키던 매니저에게 다가가 말했다. 오래 할 수 없다. 그리고 영어를 잘 못한다. 매니저는 답했다. 괜찮다. 2시간 이상이라면 한 번만 해도 무방하다.

뜨내기에 불과한 내가, 무엇인가 봉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마냥 신이 났다. 첫 활동 날까지 며칠의 말미가 있었지만,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아볼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잔뜩 들뜬, 그리고 완벽히 무지한 상태로 다시 한번 그곳에 들어섰다.
 

옥스팜Oxfam. 당시 내게는 무척 생경한, 솔직히 말하면 처음 듣는 국제기구었다 . 호주에서 만든, 자체적인 국제단체인 줄로만 알았다. 공정무역Fair trade이라는 개념은 더 낯설었다. 단 한 명의 손님도 찾아오지 않는 그곳에서 매니저는 옥스팜과 공정무역에 대해 쉽고, 느리게 설명했다.


첫날 2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손님이 오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무척이나 머쓱했다. 내 일손이 필요한 게 맞는지 잔뜩 고민을 하며, 다음 활동 날짜를 정했다. 영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붙들고 돌아나오는데, 매니저가 나를 불렀다. 그때까지 단 한 번도 만지지 않았던 돈통을 열고는 5달러를 꺼내 내밀었다.


당황, 뒤이어 불쾌함이 마음 밖으로 삐져 나왔다. 아시아계라고 동정하는 건가. 이게 말로만 듣던 호주의 인종차별, 백호주의라는 건가. 어리둥절을 넘어,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며 이유를 묻는 나에게 매니저는 답했다. 누구에게나 지급하는 정당한 몫이라고.


여기서 일한 시간에 대해서는 대가를 지급하지 못하지만, 이곳까지 오는 교통비와 시간에는 최소한으로 보상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매니저는 설명했다. 몇 시간을 일하든, 모든 자원봉사자에게 정액으로 5달러가 지급된다는 이야기가 덧붙었다.


그저 5달러였다. 왕복 버스비 또는 커피 한 잔 값에 불과했다. 최저임금의 1/3 미만이었고(실제 일한 시간이 2시간이니 이를 기준으로 셈하면 거의 1/7수준), 그 매장에서 판매하는 초콜렛 하나 가격에도 미치지 못하는 그런 금액이었다. 하지만 그 지폐 한 장은 직장에서도 값어치를 인정해준 적 없는 시간, 준비와 통근하는 데 들어가는 나라는 사람의 가치에 대한 보상었다.


사람 값을 제대로 받은, 그 존중받은 기분을 이 땅에서는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몇 푼 안 된다며 최저임금에서 시간당 40원 씩을 떼고 계산하겠다던 사장님의 말. 이제는 너무 익숙해서 비판의 날이 무뎌져 버린 무급 인턴, 열정페이 류의 단어들. 그리고... '좋은 일'을 한다는 핑계(진짜 좋은 일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뒤에 숨어 희생과 자원봉사, 기부를 요구하고, 또다시 뜯어내기 위해 영혼 없이 떠받드는 뻔뻔함들...


10여년 째 꺼내어 쓰는 5달러는, 그래서 한없이 서럽기만한가 보다.


+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덧붙이는 사족 한 줄. 내 손에 들어왔던 5달러들의 행방은?공정무역 다크 초콜렛과 바꿔 먹느라, 다들 포스기 안으로 돌아갔다.


++ 옥스팸의 철학을 알 수 있는 또다른 이야기.

[한겨레 칼럼]  변화를 일으키는 공감 능력 (2017/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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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키도 작고 마음도 작은)시민입니다. 
아직도 사춘기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성장통은 언제 멈출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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