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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혜 Jul 17. 2017

관계, 그 단절에 대하여

최은영 소설, <쇼코의 미소> 독서담

'친구 많아요?'라는 질문은 내게, 세상에서 가장 답하기 어려운 것 가운데 하나다. '낯을 가려요'라는 자기소개에 대한 청자들의 반응 역시 해석이 어렵기는 매한가지. 많은 이들이 낯을 가린다는 나의 말을 쉽게 믿지 않는다. 속을 드러내면 관계가 끊어질까 모든 순간 두려움에 떠는, 관계 맺기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나라는 사람은 무척 잘 감춰져 있는 모양이었다.


최은영의 소설 <쇼코의 미소>에 등장한 인물들에 금방 빠져들 수 있었던 건, 나와 닮았다는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설집에 실린 7편의 작품 가운데 유지된 관계는 단 하나도 없었다. 뚜렷한 이유로, 때로는 불투명한 이유로 관계들의 균형은 깨졌고, 부러졌다.


이를 테면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에 등장하는 이런 부분들.


"크게 싸우고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주 오래 조금씩 멀어져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후자다."
"어린 시절에 만난 인연들처럼 솔직하고 정직하게 대할 수 있는 얼굴들이 아직도 엄마의 인생에 많이 남아 있으리라고 막연하게 기대했다. 하지만 어떤 인연도 잃어버린 인연을 대체해 줄 수는 없었다.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의외로 생의 초반에 나타났다. 어느 시점이 되니 어린 시절에는 비교적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 관계의 첫 장조차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이 생의 한 시점에서 마음의 빗장을 닫아걸었다."


건조했으나 무엇보다 아픈 관계의 단절은 이런 표현으로도 등장한다. '씬짜오, 씬짜오'의 한 구절이다.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양쪽 모두 떠난 경우도 있었고, 양쪽 모두 남겨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떠남과 남겨짐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았다."


그녀의 소설 안에 묘사된 단절이 더 애달팠던 건, 그 끊어짐이 그저 사람 사이의 관계에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꿈, 또는 나 자신, 그리고 내가 딛고 있는 이곳에 대한 앎 역시 부서지고 조각났다. 표제작이자 지난해 젊은작가상 수상작이기도 한 '쇼코의 미소'에서 이런 느낌들이  특히 손에 잡혔다.


"그래서 꿈은 죄였다. 아니, 그건 꿈도 아니었다.
영화일이 꿈이었다면, 그래서 내가 꿈을 좇았다면 나는 적어도 어느 부분에서는 보람을 느끼고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지 감독이 되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마음에도 없는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었다. 나 자신도 설득할 수 없는 영화에 타인의 마음이 움직이기를 바라는 건 착각이었다."


"내가 창의적이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 능동적인 사람은 더더군다나 아니며 암기식 교육이 오히려 편하게 느껴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토록 싫어했던 제도권 교육 안에서 나는 얼마간 편안함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영어 단어를 외우는 동안 매일 채용 사이트에 들어가서 취직자리를 알아보는 일도 거르지 않았다.
새벽에 눈을 뜨면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단단한 땅도 결국 흘러가는 맨틀 위에 불완전하게 떠 있는 판자 같은 것이니까. 그런 불확실함에 두 발을 내딛고 있는 주제에, 그런 사람인 주제에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끊어졌기에 멀어졌지만, 멀어짐은 끝내 잊혀짐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 관계의 단절은 소리 나지도 축축하지도 않은, 드러날 수 없는 깊은 우울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 건조한 슬픔은 그저 자신의 발아래만 파고 내려가는데 그치지 않았다. 베트남 전쟁('씬짜오, 씬짜오'), 인혁당 사건('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세월호 참사('미카엘라')에 대해 저자는 우리 사회의 책임을 묻는다. 역사적 사건뿐 아니라 세대 간의 갈등('쇼코의 미소'), 인종 문제('한지와 영주'), 여성 문제('먼 곳에서 온 노래') 등에 대해서도 저자는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한다.('비밀'은 스포가 될 수 있어 생략)


개인의 내면 혹은 개인 사이에서 관계가 끊어지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내 발이 딛고 있는 이 세상과의 관계를 청산할 수 없음을, 개인이 겪는 관계 단절의 원인이 이 세상에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 최은영 작가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수많은 아픔을 <쇼코의 미소>를 통해 보여준 게 아닐까. 작가의 의도가 그것이 아닐 지라도 나는, 그렇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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