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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혜 Oct 17. 2017

떠난 사람을 기억하는 법에 대하여

<아이 앰 히스레저> 시사 후 한담

아빠, 나이를 먹으면 죽음에도 무뎌져?

'알코올 중독을 앓던 이웃집 아저씨가 며칠 전 새벽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더라.' 동네 소식을 전하는 아빠의 말끝에 전혀 관계 없는 질문을 붙였다. 대답을 원한 물음이 아니란 걸 아신 건지, 아빠는 그저 묵묵부답이었다.


<아이 앰 히스레저>를 관람한 뒤, 아빠와 나눈 시시한 이 대화가 떠올랐다. 1년을 조금 못 채운 기간 만큼 묵혀둔 숙제 때문이었다. 

지난해 늦가을, 15년을 함께 했던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를 좋아하는 만큼의 마음을 담아, 어쩌면 공식적인 작별 인사가 될 편지를 쓰겠다고 마음 먹었. 내 나이가 지금의 두 배가 되어도 그를 기억할 수 있도록 조그마한 것들까지 적어 두려했다. 지금은 여기 없지만, 내 친구가 이렇게 괜찮은 녀석이었다는 걸 세상에 알리고 남기고 싶었다. 모든 것들이 더 사라져 버리기 전에.


SNS 이곳저부터, 일기장에, 심지어 휴대폰 음성 녹음에까지 뭔가를 남기려 시도했다. 하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언젠가부터는 한 문장도 쓸 수가 없었다. 쪽지들대부분 결국 미완 상태로 방치되었다. 나는 그 흔적들을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곳에 감추고, 죽음이라는 것에 무뎌지는 때까 무력하게 기다리자고 마음을 바꿨다.

히스 레저가, 여기 없는 그 친구를 소환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히스의 가족과 친구들이 내 숙제를 불러냈다.

영화를 얼마나 사랑하고 열정적이었는지, 친구들을 얼마나 아꼈는지, 자신의 성공을 누구와 어떻게 왜 나누고 싶어했는지와 같이 좋은 모습에서부터, 예민함과 고집,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면 시간을 가리지 않고 불쑥불쑥 전화를 해 곤란하게 만드는  단점까지...그들은 히스가 마치 지금 여기 있는양, 하나하나 꺼내놓았다.


영화 <다나이트>에서 조커를 연기한 배우로만 히스 레저를 기억하고 있던 나는, 영화가 끝을 향해 갈수록 배우가 아닌, 히스라는 이름을 가진 온전한 한 사람을 알 수 있었다. 만약 지금 살아 있다면, 이런 모습이겠구나, 조금은 상도 할 수 있을 만큼.

사랑스럽고 아름다웠던 히스와 그를 떠올리는 지인들의 모습에 나와 내 친구가 비췄다. 만약 누군가 그녀를 기억하는 무엇인가를 만든다면, 나는 15년 지기인 그녀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결국 쓰다만 쪽지들을 돌이켜보고 말았다. 거기에 그녀는 없었다. 그저 떠난 친구의 이름을 끊임 없이 호명하며, 원망만 반복하는 내가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아이 앰 히스 레저>는 내게, 히스 레저가 아닌 소중한 사람을 그 마음 그대로 간직한 이들의 이야기로 읽혔다. 

죽은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 히스 레저라는 아주 멋진 사람과 그의 지인들은, 슬픔에 무너지지 말고 떠난 이를 기억해 주는 것이 애도라고 말하는 듯 했다. 

나이가 들어도 죽음에 무뎌지는 일은 없다고, 아무리 기다려도 죽음이라는 것에 무뎌지는 때는 오지 않는다고,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친구를 제대로 기억하라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은, 그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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