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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혜 Mar 18. 2017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

#여행한담(閑談)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


늘상 품고 있는 생각이지 진심으로 돈이 많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예를 들 누군가의 노동과 노력에 제값을 치르고 싶은 그런 (제값이 얼마인지는 별개의 문제).


군산 여행 3일차이자 마지막 날. 점심시간 한참 전부터 늘어선 긴 줄을 보고,  맛집 체험을 포기했다.  별 취미 없는 행위를 포기하고 나니 카페인이 고파졌다. 벌써 이틀째 충전을 못한 탓이었다. 목적지 부근에 위치한 이름 모를 카페로 조심스럽게 들어섰다.


흰머리가 인상적인, 내 눈에는 어딘가 메릴 스트립을 닮은 초로의 사장님이 홀로 신문을 읽고 계셨다. 손님 맞이를 위해 서둘러 카운터 앞으로 자리를 옮긴 사장님을 세워두고, 뭘 마실지 한참을 고민했다. 고민해 봤자 결론은 거기서 거기. 빈 속을 고려해 겨우 카페라떼 한 잔을 주문했다.


제일 구석진 창문 옆에 자리를 잡았다. 바깥 세상 구경을 하고 있자니 커피를 진하게 먹는 편인지 기호를 물으셨다. 그렇다고 답하니, 에스프레소 2샷을 넣어주겠다 하신다. 보통은 에스프레소 1.5샷을 넣으신다며.

 

넋놓고 있느라 사진이라고는 비뚤어진 이것 한 장 뿐이다. 카페 이름도 생각나질 않는다. 동국사에서 도보로 약 2분 거리라는 기억만 있을 뿐.


아무 기대 없이 커피를 받아 들었다. 볕이 좋은 탓인지 행인들의 얼굴이 밝았다. 덩달아 따라 웃으며 커피를 홀짝였다. 몇 입 마시다 보 적당히 뜨거운 온도와 곱고 균일한 우유 거품이 느껴졌다. 손님이 밀려드는 프렌차이즈 카페에서는 잘 만나지 못하는 제대로 된 우유 거품.


자리를 정돈하고 나와 트레이를 돌려드리며 우유 거품이 참 좋았다고 말씀드렸다. "다들 이렇게 하는 거 아니"냐고 겸손해 하시며 온 얼굴로 웃으셨다. 그러고 보니 손님이라곤 나 하나 뿐인데, 사장님은 내내 카운터 주변에 서 계셨던 모양이었다.


라떼값 2,800원. 그에 비에 너무 많은 것을 받은 것 같았다. 민망하고 죄송한 마음에 꾸벅 인사를 하고, 서둘러 꽁무니를 뺐다.


온기가 남은 라떼를 손에 들고 일제강점기에 지어졌다는 동국사를 한바퀴 돌았다. 절에서 써두신 쪽지와 달리, 동백이(동국사에 있는 멍멍이)는 가까이 다가가 이름을 불러도 계속 짖었다. 불러도 대답 없는(?) 동백이를 뒤로 하고, 대웅전이 마주 보이는 벤치에 앉아 일본풍 지붕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배가 고팠다. 


전날 밤마실 때 눈여겨 봐두었던 식당으로 자리를 옮길 타이밍이었다. '일식 창작 요리 전문'이라는 문구가 맘에 들었던 곳. 문밖에 늘어선 줄은 없었지만, 안에 들어가보니 거의 만석이었다.(후배 녀석에게 얘기하니 이미 블로그에 거론된 맛집이라며, 검색 결과를 보내주었다.)

받아든 메뉴판 표지에 적힌 문구가 눈에 들었다. "주문과 동시에 조리가 시작되어 손님이 몰릴 시 다소 음식이 늦게 나올 수 있습니다. 그만큼 정성을 다해 요리해 드리겠습니다."


식당의 이름와 동일한 명칭을 쓰는, 아마도 시그니처 메뉴일 짬뽕을 주문했다.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각오를 했기 때문인지, 예상보다 빨리 나온 식사에 조금 놀랐다. 붉진 않지만 얼큰한 짬뽕 국물에 또 잠깐 놀랐다.

국물맛이 꽤 괜찮았다. 개인적으로는 전채로 나온 두부 튀김-한 조각-이 입맛에 더 맞았다. 보온병에 담긴 따뜻한 보리차도. 뭔가 잘 먹었다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히마와리 짬뽕. 역광이라 사진에 음식 색깔을 제대로 담지 못했다(필터 미적용).


제대로 된 한 끼의 가격은 12,000원. 결재를 하면서 사장님께 가게 이름인 히마와리가 무슨 뜻인지 여쭤봤다. "해바라기요. 저는 볼 수록 해바라기가 예쁘더라고요." 사장님의 답변이 '일식 창작 요리 전문'이라는 문구와 닮은 듯했다. 배시시 웃는 사장님 따라 나도 웃음이 났다.


기분 좋게 먹고 돌아나오는 길, 전날 만난 선유도 횟집 사장님이 떠올랐다. 정말 감사했는데 그  마음이 제대로 전해졌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어딘가에는 전동 퀵보드 렌탈샵이 있겠지 싶어 무작정 들어갔던 신시도. 걸어도 걸어도 렌탈샵은 보이지 않았다. 외길따라 2시간 가까이 걷다 보니 내가 선 그곳이 이미 선유도였다.


문제는 되돌아나가는 길. 악천후는 내 여행의 유일한 길동무인데, 번에는 풍사(風師) -우사가 아닌게 어딘가!-가 나와 행했다. 히트텍에 후드를 쓰고, 그 위에 스카프를 칭칭 감아도 속살까지 뚫고 들어오는 바닷 바람. 선유도를 한 바퀴 돌고나니 체온도, 기력도 더 떨어져 있었다. 차마 걸어서는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풍사가 만들어준 아름다운 헤어스타일. 3월 둘째주의 선유도는 아직 겨울이다. 바다도 바람도.


오후 4시 30분. 비수인데다가, 관광객 무리도 이미 떠나 버린 시각이라 선유도에서 무녀도 입구(고군산대교 앞)까지 운행하는 봉고 차량들도 모두 영업을 끝낸 상황이다. 막배는 한 시간 전에 이미 떠났고...방법이 없었다. 콜택시라도 불러야 하는 건지 고민하며 어쩔 줄 몰라 거의 울고 있었다. 때마침  들려온 -점심을 먹었던- 횟집 사장님의 목소리. "타세요. 혼자 때문에 가는 거예요."


1인에 5,000원. 적어도 서너 명은 태우고 다니는 그 봉고는, 겨우 나 한 사람을 태우고 출발했다. 선유도 주민들에게만 특정 시간에 한해 개방된다는 공사장 흙길을 뚫고, 봉고는 곧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5천원만 줘요." 정가만 받겠다는 사장님께 1만원 짜리를 내밀었다. 잔돈이 없다며 난감해 하시는 앞에 -혹시 오만함으로 비출까봐- 조심스럽게 괜찮다고 답했다.


일종의 민폐라는 생각에 나는 사실 처음부터 1만원을 지불할 뜻이었다. 데려다 주시는 길에, 이제 곧 개통될 선유대교, 고군산대교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속얘기까지 들려주시지 않았던가!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미리 말씀을 드리지 않은 내 탓에 잠시 뻘줌한 상황이 생겨버렸지만, 사장님은 다행스럽게도 내 의뭉스러움을 눈치 채지 못하신 듯 했다.


뻘쭘한 마음에 쭈뼛거리며 차에서 내리는데,  사장님은 다시 오라고 몇 번을 말씀하셨다. 선유도는 4월말 5월 초에 벚꽃과 진달래가 만개해 제일 예쁘다며, 그때는 차비를 안 받으시겠다고 꼭 연락하라고 하신다. 그냥 그런 영업용 멘트가 아니었다. 정말 감사했던 당시 내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던 걸까.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조금은 덜 죄송한 마음으로 섬을 빠져나왔다.


고군산군도에서 나와 군산으로 돌아가는 시내버스 안. 버스 전면 유리창 썬팅 필름이 지는 해에 맞춘 듯이 오려져 있었다.


어쩌면 노동, 노력의 가치를 금액으로 환산해 보상하고 싶다는 생각, 그 자체 틀렸을지도 모른다. 오만함의 발현일 수도 있다. 돈을 내는 만큼 노동을 시켜도 되고, 감정 노동을 포함한 온갖 서비스를 바라는 태도가 애초에 글러 먹은 인식인 것처럼 말이다. 제값도 안 주면서 일 시키는 경우가 훨씬 더 많지만, 제값 준다고 다 오케이라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불한 금액보다 훨씬 더 많은 보상을 받은 이런 날들에 정말 부자가 되고 싶다. 타인의 노동에 제값을 줄 수 있어 어디선가 나도, 내 노동에 제값을 달라는 요구를 할 수 있게 될테니 말이다.


군산의 좋은 사람들에게서 노동의 신성함이랄까, 가치랄까.

잊고 있던 좋은 무엇을 발견하고 집으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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