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비다, 비때문이다

by 김지혜

이게 다 비다, 비때문이다.

소중한 내 저녁 시간이 엉망이 된 건

소스부터 사이드디시, 맥주까지 완벽했던 내 만찬을 망친건 갑자기 찾아든 비때문이다.


이게 다 비다, 비때문이다.

아까운 음식에 한방울이라도 들어갈까

급하게 지붕 밑으로 기어들어왔더니

금방 그쳐버린, 소스도 사이드디시도 포기했는데

겨우 살린 맥주와 메인 디시가 초라해져버린 건

모두 다 갑자기 그쳐버린 비때문이다.


이게 다 비다, 비때문이다.

지붕도 아닌 웬 건물 구조물 아래 숨어

지는 해 다가오는 폭우 구름을 등지고

정신없이 페달을 밟았던 공포스럽던 순간을 떠올린 건

모두 다 하루 종일 올듯 말듯 약올리다가

방심한 순간 쏟아져버린 그 비때문이다.


이게 다 비다, 비때문이다.

하늘도 아닌 사람이 내린, 국지성 아니

어딘가를 조준한 듯 목적을 갖고 쏟아진

피아를 이미 갈라버린 채 70세 노인을 향해 쏟아진

그 비, 아니 물대포 때문이다.


이게 다 비 때문이어야 한다.

그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조바심을 내 성미급함을

내 조심성 없고 성마른 성품을

그리고 사람의 모양만 겨우 갖춘 그들의 천박함을 참아낼 수 없을테니

그저 다 비때문이어야 한다.


#백남기 어르신. 남은 일은 저희에게 모두 맡기시고, 그곳에선 평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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