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을_넘긴_뒤에
지금도 그렇지만 이전에는 정말 뒤끝이 길었다. 한 번 싸우고 토라지면 절대 뒤돌아 보지 않았다. 손해 볼 일 없다고 생각했다.
스물을 넘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사람과 마주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가족을 포함해 누구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하루하루를 버티다 결국 일상에서, 지인들로부터 도망쳤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갖고 떠난 호주에서,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를 만났다. 맥주를 마시고 있었던가. 무슨 용기가 났던 건지 나는 갑자기 그에게 내 비루한 속내를 털어놨다. 나는 한 번 마음 접으면, 되돌아보지 않아. 가만히 듣고만 있던 그는 평소 같지 않은 단호한 말투로 나를 타일렀다. 사람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지 모른다.
그때의 나는, 그의 말을 그저 잔소리 정도로 생각했다. 고작 서너살 밖에 많지 않은, 그리고 생각하기조차 부끄러운 세속적인 이유를 따져가며 그의 말을 흘려버렸다. 겉으론 웃는 척하면서, 속으로 구시렁거렸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았다.
오래도록 그의 말은 잊혀 있었다. 세상 좁다는 격언도 그저 그런 속담 중 하나로 여겼다. 내가 손만 뻗으면, 모두가 나를 원할 줄 알았다. '성격의 장점'을 적으라는 자기소개서 문항에 “만민과 친구가 되자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라고 적을 만큼, 이유 없는 자신감에 취해 살았다.
이십대 후반은 처절하고 고통스러웠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때문이었다. 자기소개서를 고치고 또 고치는 과정 속에서, 나의 바닥과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낙방의 낙방을 거듭하고, 그때마다 자소서를 새로 쓰면서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비로소 깨닫기 시작했다. 내가 없으면 세상이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이 부서지면서, 나는 무너졌다. 만‘인’도 아닌 만민이라 칭했던 그 오만이 부끄럽기 시작했다.
서른이 되었던가, 아니면 그 직전이었던가. 인정하지 못할 것만 같았던 사실이 문득 고마워졌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닌 존재라는 사실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이상한 논리이지만, 내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면 특별히 더 소중한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이 찾아왔다. 그냥 우리 모두 똑같은 양만큼의 '소중함'을 보유하고 있는 것일 테니까.
그 이후부터 사람을 대하는 일이 부쩍 어려워졌다. 나보다 못난 사람도, 나보다 나은 사람도 없으니 관계 맺기에 고민이 늘어났다. 무시하거나 갑질을 할 수는 더더욱 없었다.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내게는 민페 투성이인 그이도 누군가에겐 소중한 사람일테니 말이다.
다만 한 가지 부작용이 생겨났다. 본인이 특별하고, 잘났다고 으스대는 사람에 대한 알러지. 인정받고 싶어 안달 난, 본인이 돋보이고 싶어 먼저 나서는 사람들을 견디기가 부쩍 더 어려워졌다.
10여년 전에 만난 그를 지금 다시 만난다면, 이번에는 내게 무슨 말을 해줄까. 그 으스대는 사람이 나라고 말해주지 않을까.
사람의 의미를 늦배운 나는, 오만의 구덩이에서는 아직 빠져나가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