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픔'와 '애도'에 관한 잡상
며칠전 책꽂이 정리를 하다보니 사라진 책들의 빈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비좁은 방, 더 비좁은 책장이 이미 차고 넘쳐 몰랐을 뿐. 잠시 한 눈판 사이에 책들은 시리즈 통째로 없어지기도, 애매하게 한 권만 종적을 감추기도 했다. 사라졌다는 사실조차도 기억나지 않는 녀석도 있을 거다.
가장 빈도가 높을(추측이다!) 실종의 양태는 무척이나 난감하다. 실물도 내 옆에 그대로, 제목도 작가 이름도, 표지 디자인도 내 머리 속에 남아 있는데 내용만 없다. 청문회에 나온 증인도 아니건만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런데 기억에서 사라져버린 녀석들 중 몇몇의 제목이 자꾸 떠오른다.
예를 들어, 김소연 시인의 「마음사전」 같은 작품. 몇 년 전부터 도무지 어떤 느낌인지를 잊어버린 감정이 하나 있는데, 이 책에서 그 감정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보고싶다. '보고픔'이란 대관절 어떤 느낌인 걸까.
사실 나는 이 단어를 종종 사용한다. 문제는 이 말을 내뱉을 때 내가 받는 느낌이 실제 이 단어와 조응하는지 여부를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나 아닌 누군가가 이 단어를 발화할 때 역시, 상대가 어떤 감정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애도'라는 단어 또한 정체를 알수 없기는 마찬가지. 애도할 일이 많았던, 진심으로 애도하고 싶었던 2014년 그리고 지난해. 이 말의 진정한 의미가 절실했다.
그 때 떠오른 책이 한때 무척 애정했던 「애도하는 사람」(텐도 아라타 저)이라는 일본 소설. 어렴풋 기억나는 소설의 줄거리와 달리, 소설에서 묘사된 '애도'의 의미는 당시 내게 무척 의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잊은지 오래되었다.
손가락으로 이렇게 주절거림을 늘어놓는 사이에 다시 읽으면 되겠건만, 용기가 나질 않는다.
하나는 처음 그 책을 만났을 때 받았던 느낌에 생채기가 날까봐. 둘은 이 감정들의 정체를 알게 될 이후가 두려워서.
수년 전 잃어버린 책을 다시 되찾아오는 것은 과연 좋은 선택일까.
* 사진은 지난주 일요일(3/19) 순천 선암사에서 찍은 매화입니다. 남도에는 벌써 매화가 한창입니다. 물론 미세먼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