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집에 가고 싶다

'집'에 관한 잡념

by 김지혜

집에 가고 싶다.


습관처럼 튀어나온 말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가 앉아 있던 곳은 다름 아닌 우리 집 거실... 주말 내내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는 일에 지쳐서 한숨처럼 내뱉은 말이 집에 가고 싶다는 소리라니. 헛웃음이 났다.


웃음 끝에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집에 있는데, 집에 가고 싶다면 대체 그 집은 어디인가. 여기서 집은 어떤 의미인가. 집으로 상징되는 공간은 대체 어디인가.


relax-home-0.jpg


그러다 문득 집에 가고 싶지 않은 날들이 떠올랐다. 엄마와 싸웠던 그다음 날들... 괜히 이 친구, 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았다. 놀아줄 친구가 없으면 괜히 몇 정거장 떨어진 곳에 내려서, 몇 시간이고 걸었다. 보고 싶지 않은 영화를 보고, 혼자 노래방을 가면서 시간을 버렸다.


외국에 잠시 머물렀을 때도 집은 이전과 사뭇 다른 공간이 되었다. 석 달 동안 지낸 셰어 하우스 주인과는 이유 없이 친해지지 않았고,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망설여지는 때가 있었다. 그렇다고 집 한 채를 통째로 혼자 쓰는 게 편한 것도 아니었다. 시시때때로 나타나는 타란튤라와 바퀴벌레 때문이 아니었다.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닌 것 같은, 공포와 두려움이 집의 빈 곳곳을 자꾸 채웠만 갔다. 잠들기가 어려웠고, 집이 아닌 것만 같았다.


그곳들에서 결국 나는 내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가고 싶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곳으로 말이다. 생각이 이곳에 이르자 갑자기 마음이 시큰했다. 집이 없으면 어떡하나. 집이 있어도 가고 싶은 공간이 아니라면 어쩌나. 집이 오히려 가장 괴로운 공간이라면 그럴 때는 어디로 가야 하나...


나에겐 그저 잠시에 불과했던 '불편한 집'이 누군가에겐 일상일 텐데, '집에 가고 싶다'는 말조차도 한숨처럼 내뱉을 수 없다면...그 고단함을 어디에 내려놓을 수 있을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야매 채식' 1주년 기념 무뜬금 FA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