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 #metoo
jtbc 뉴스가 시작하기 아주 조금 전에 메시지 하나를 받았다. 안희정의 성폭력 범죄에 대한 보도가 있을 것이다....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치인으로서 믿었던 이었다. 성소수자 등 인권 이슈에서 보여주었던 그의 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래서 부정했다. 가짜 뉴스일 거야. 마타도어일거야...라고.
몇 분 뒤, jtbc에서 뉴스 예고가 나왔다. 믿고 싶지 않았던 그 메시지의 내용이 하단 자막에 그대로 표출됐다. 피해자 김지은 씨가 직접 대중 앞에 나와 자신이 겪은 일을, 고통 속에서 고발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분노, 배신감, 허탈...따위의 감정이 치솟았다. 소주 한 병을 원샷하고 싶을 만큼 속이 답답했다.
거기에 아빠가 석유를 부었다. 안희정의 가해 사실에 대해 말하면서 아빠는, '***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서 콱 없어져야 한다'고 했다. 댓글에서 많이 본, 이런 부적절한 발언을 아빠에게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쌓아놓았던 화가 한번에 치솟아서, 앞뒤 안가리고 쏘아붙였다. 피해자가 또 있었으면 좋겠다는 뜻이냐고. 만약 있다 하더라도 그 피해자를 누군가의 정치 생명을 끊어내기 위한 도구처럼 여기는 말은 하지 말라고.
아빠는 잘못했다면서, 앞으로는 이런 말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으나, 꺼림직한 기분은 가시지 않았다.
1차원 수준의 이기적인 감정들이 물러나기까지 그로부터도 조금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날짜가 바뀌고, 새벽이 되어서야 내 감정이 아닌, 피해자와 마주할 수 있었다. 힘겹게 내뱉던 호흡 한 가닥, 한 가닥... 무엇이 얼마나 힘들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타인의 고통에 공감한다는 말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알면서도 나는, 피해자에 자꾸 내 경험을 비춰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아빠의 말이 왜 찌꺼기를 남겼는지 깨달았다. 가장 먼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아빠는 될 수 없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기 때문이었다.
엄마 역시도 아니었다. 10여년 전 쯤, 콘서트에 갔다가 늦게 귀가한 날이었다. 노상방뇨 하는 아저씨의 옆을, 잔뜩 긴장해서 조심스럽게 지나가고 있었다. 인기척을 최소화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저씨가 갑자기 말을 했다. "만져주면 1만원 줄게."
몇 차례 변태한테 당한 적이 있었기에, 다음에 만나면 욕을 해주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다녔다. 늘 각오 뿐이었는데, 이날은 무슨 용기가 났는지 입밖으로 소리가 나왔다.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몇 마디 욕설을 내뱉고는, 너무너무 무서워서 있는 힘껏 도망을 쳤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서 집에 들어오니, 엄마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솔직히 얘기하면 달래줄 거라 생각했는데, 돌아온 건 등짝 스매싱이었다. 칼이라도 들고 해코지 하러 쫓아오면 어쩌냐고, 다음부터는 그냥 못 들은 척 하라던 엄마는, 늦게 다녀서 그랬다는 추궁으로 말을 마쳤다. 서러웠다.
엄마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는 건 꽤나 참담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상처가 더 아팠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피해자의 한 마디, "선배에게 말했으나 도움을 받지 못했다." 그 증언이 나를 깊게 찔렀다.
지금까지의 나는, 내 피해만을 걱정했다. 입으로, 손가락으로는 함께 하겠다고 수십번을 말하면서도, 나 스스로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과연 나라는 사람은 피해자가 믿고 의지할 만한 사람인가. 피해자를 믿고, 그 곁에서 함께 싸울 수 있는 사람인가... 내 안의 저울추는 확신을 잃고 계속 흔들렸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withyou 뿐이다. 믿을 만한, 함께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를 계속하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했던 지난 10여년을 부정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 단단한 남성 중심 사회를 뒤흔든, #metoo 운동 아니 혁명을 이끌어가는 당신들께 진심으로 연대의 헌사를 바칩니다. #with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