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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추근거림'인걸까

#미투

by 김지혜


이윤택, 조민기에 이어 안희정, 김기덕, 조재현까지. 유명 인사들의 극악스런 범죄 행위가 연달아 폭로됐을 때 나는 다른 이유로 몹시 불안했다.


두 가지 때문이었다. 하나는 가해자가 유명인이 아닐 경우, 또다른 하나는 가해 행위가 저들에 미치지 않을 경우. 다시 말해 일상적인 인물이 가해자이고, 그의 행위가 (누군가의 저속한 표현을 잠시 빌리자면) 그저 '터치'였거나 언어적 '롱' 뿐이었을 때, 그 피해자들의 고발은 과연 사회적으로 의미있게 받아들여질 수 것인가. 까놓고 말해, 비유명인에 의한 강간 미만의 행위가 성범죄로써 팔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애석하게도 우려는 곧 현실이 되었다. 정봉주 씨의 성추행 의혹에서였다. 이 피해자의 주장을 전혀 믿지 않는 이들은 논외였다. 그들은 상수였다. 내 불안을 자극한 변수는, 지금까지 "미투"와 "위드유"를 함께 외쳐온, 심지어는 이 사건 피해자의 얘기를 믿는 듯한 스탠스를 취하는 이들이 작성한 글에서 우려의 증후가 목격되었기 때문이었다. 정봉주의 행위를 그저 '개저씨가 찝적거리다/ 개수작을 부리다 실패'한 것으로, 범죄로 보기는 힘들지 않냐는 주장 말이다.


누구의 피해가 더 큰지, 누가 더 고통스러운지 비교하는 것은 의미없다. 하지만 법적 혹은 사회통념적으로 앞서 언급한 사례들에 견주어, 정봉주 씨의 가해 행위가 가벼운 것은 사실이다. 허나 이 지점에서 정 씨의 행위를 그저 "개저씨의 찝적거림 실패기" 정도로 취급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다. 저 정도의 행동은 그냥 참고 넘어가 줄 법하다는, 때에 따라서는 참고 넘어가줘야 한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정치인 출신의 유명인이어도 이런 상황이라면, 회사나 학교, 집과 같은 일상의 공간에서 '보통의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는 소위 가벼운 수준의 성추행들은 어떻게 받아들어질까. "미투"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닌지, 불안과 걱정을 비료 삼아 공포는 자꾸만 자라난다.


그래서 차라리 솔직해 줬으면 좋겠다. 피해자의 말을 믿고 싶지 않다고, 믿을 수 없다고. 지금 상황에서는 그 편이 훨씬 나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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