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갈지도 모르겠다
지금 아니면 영영 쓰지 않을 것 같아 남겨보는 #단양 여행 후기(?)
꽤 오랜 시간 여행지를 결정하지 못했다. 딱히 가고 싶은 곳도 없었고, 무엇보다 평소와 달리 바다가 아닌 산이 보고(!)싶었다. 산 뷰, 마운틴뷰, 포레스트 뷰 등, 이런저런 단어로 검색을 여러 번 해보았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야경 사진을 한 장 보고, 이 장면을 내 눈으로 보고야 말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양에 있는 썸데이게스트하우스의 루프탑 뷰였다.
단양, 한 번도 내 여행지 리스트에 넣어본 적 없는 지역이었다. 찾아보니 서울에서 꽤 가까웠고, 기찻삯도 저렴(누리로 타면 1만원을 조금 넘고, KTX도 2만원을 안 한다)해 백수의 주머니 사정에도 적합했다. '단양 8경'이라고 볼거리도 충분한 듯했다. 관광지를 찾아다니는 걸 즐기진 않지만, 어쨌든 볼 게 많다는 건 좋은 거니까. 고민 없이 결정했다.
일정이 문제였다. 주 1회 받는 상담일이 일주일의 한가운데인 수요일이었다. 사람 많은 주말여행은 피하고 싶었고...숙소는 월요일과 화요일이 쉬는 날이었다. 어중간하게 수요일에서 토요일까지, 3박 4일을 예약했다. 2박만 하면 부지런히 다녀야 한다는 압박감(?) 같은 게 있기도 하고, 2박은 왠지 짧은 느낌이 드니까.
기차를 타고 단양으로 향했다. 역은 완전 번쩍번쩍한 새 건물인데, 역에서 조금 벗어나니 관광지 느낌이 전혀 없었다. 숙소까지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여서, 걷다가 보이는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체크인을 할 계획이라면 계획이었는데...일단 숙소가 보일 때까지 계속 걸었다. 체크인 시간보다 한 시간 이상 일찍 도착했다. 짐만 맡기고 나오려던 차였는데, 사장님께서 봐주신 덕에 다행히 일찍 체크인까지 마쳤다. 짐만 대충 던져놓고 점심을 해결하러 서둘러 나왔다.
어찌 된 일인지 숙소 주변의 식당 중 괜찮아 보이는 곳들은 문이 닫혀 있었다. 지도를 살필 때 눈여겨봐 두었던 막국수 집은 하필 수요일이 정규 휴무일이었고, 다른 식당들의 문도 굳게 닫혀 있었다. 그냥 닫힌 게 아니라, 영업을 중단한 곳이 많았다. 코로나에 줄어든 관광객이 지역 경제에 큰 타격을 준 모양이었다. 지역의 '메인 시장'인 구경시장에도 닫힌 식당, 상점들이 많았다. 평소 맛집이라고 소문이 난 듯한, 티브이 출연 화면이 잔뜩 붙어있는 몇몇 곳만 운영 중이었다.
줄어든 선택지는 나흘 내내 내 배와 입을 고민스럽게 했다. 덩어리 고기는 먹지 않는 채식 지향인인 데다가, 단양 특산품인 민물 생선은 먹지 못하기 때문에 안 그래도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결국 여행 중 총 7번의 식사 중 편의점에서 두 끼, 막국수로 두 끼를 해결하고..한 번은 동네에서 유명하다는 순댓국을 먹었다.(차라리 편의점에 갈 걸 그랬나. 간만에 먹은 순댓국이 살짝 얹혀서 다음날 점심을 굶었다. 잘 된 건가?)
끼니 해결도 문제였지만, 무너진 상권에 자꾸만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안 그래도 줄어드는 비수도권 지역의 인구 사정에, 코로나19까지...이 감염병 사태가 끝난 뒤에 우리 앞에 또 다른 위기가 내 눈 앞에 있는 듯했다. 좋은 경치를 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걷다가 괜히 신이 나서 양팔을 휘저으면서도 가끔 괜히 눈치가 보였다. 아무도 눈치 주지 않는데.
농어촌버스를 타고, 단양읍내를 벗어나니 또 다른 부분에서 눈치가 보였다. 국내 여행을 다닐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지역의 버스 타기. 버스를 타고 뱅뱅 돌면서 동네 곳곳을 구경하고, 버스 안에서 어르신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훔쳐 듣는 재미가 있다. 그런데, 이번엔 그 소소한 재미가 사라져 버렸다. 어르신들의 얼굴은 마스크로 모두 가려졌고, 입은 굳게 닫혀 있었다. 간혹, 내리고 타실 때 주고받는 인사말이 전부였다. 그 얼굴들을 보면서, 서울에서 올라온 젊은 내가 혹시나 이 분들에게 큰 민폐를 끼치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 어른들의 눈빛이 느껴질 때면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창문을 열고, 마스크를 더 꼭 얼굴에 밀착시켰다.
그리고 시골에서 버스를 탈 때 매번 신경이 곤두서는 '그 문제'! 단양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읍에서 벗어나 지역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버스의 승객은 거의 노인 분들이다. 그런데 내가 타 본 '시골 버스' 중 어느 것도 저상버스가 아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끙"하는 소리와 함께 버스에서 타고 내리신다. 거동이 불편하신 분이 휠체어라도 가지고 올라타시려면, 원래 휠체어에 앉아 있던 분은 계단을 기어서 올라오시고, 기사가 내려서 휠체어를 들고 올라와야 한다. 저상버스가 일반 버스보다 훨씬 비싸다지만, 세금은 이런 데 쓰라고 내는 것 아닌가! 하루에 몇 번 다니지도 않는 버스 아닌가! 비행기 타는 것마냥 예정 시각보다 훨씬 먼저 나와 기다리고, 연착하면 그것대로 또 기다리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불편한데 말이다.
이런 장면들에 더 화가 났던 건, 이번 여행에서 내가 나이 들고 있음을 유독 실감해서 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하루에 10km 정도만 걸어도 다리가 말을 듣지 않고(네네...이건 평소 운동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ㅠ), 겁이 많아졌다. 혼자 걷는 길에서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오고, 짚와이어나 패러글라이딩 같은 액티비티를 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롯데월드 자이로스윙을 타면서 지루함을 느꼈던 나인데(대과거), 이제는 짚와이어 타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꾸 등이 찌릿찌릿했다. 같이 하자고 등 떠밀어줄 친구도 이젠 이 세상에서 없어져 버렸는데...어쩌면 그런 액티비티를 앞으로 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양의 야경은 아름다웠다. 여행 첫날 밤보다 둘째 날의, 그리고 셋째 날의 강바람이 매서워서 루프탑에 앉아있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단양강 잔도와 상진대교, 그리고 남한강을 따라 설치된 조명, 만천하 스카이워크가 뿜어내는 불빛들이. 어스름하게 그늘진 산봉우리와 강물이 뿜어내는 은은한 빛들이 좋았다. 돌아오는 날, 산을 둘러싼 운무까지도.
날이 더워지기 전에, 다시 한번 단양에 갈 수 있으면 좋겠다.
< 혹시 단양에 가고 싶어 할 #뚜벅이 여행자를 위해 >
1. 단양 버스 시간표
- 단양역 입구 나가기 직전에 엑스밴드 현수막 꼭 확인하세요. 단양 시내 모든 버스 노선 시간표가 정리되어 있습니다.
- 단양군청 홈페이지에서도 최신 버스 시간표 정보 확인 가능합니다. (https://www.danyang.go.kr/tour/573)
저는 시간표 다운 받아서 꽤 유용하게 썼습니다만, 동네 지명이 익숙하지 않아 시간표 보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_@
2. 관광지
- 도담삼봉과 석문...저는 그냥 걸어서 갔습니다. 4대강 자전거 길 + 그리고 도보 길이 잘 되어 있습니다. 구경시장 기준으로 천천히 놀면서 갔는데, 1시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 뚜벅이로는 상당한 도전이었던, 새한서점 갔습니다. 상진1리 정류장(썸데이게스트하우스 건너편 - 정류장 번호 : 2820123)에서 오전 11시반에 출발하는 하진행 버스 타고, 현곡리 정류장에서 하차. 마을 안으로 20분 정도 걸어들어가면 새한서점 있습니다. 한 시간 정도 구경하고 나오면, 내렸던 정류장에서 다시 단양행 버스 탑승 가능합니다.(회차지-하진-에서 2시45분 회차라, 현곡리 정류장에는 2시30~35분쯤 도착하는 것 같아요. 저는 불안감에 괜히 일찍 나오는 바람에 2시10분부터 기다렸는데, 저처럼 쫄보이신 분들도 2시25분 전후로만 도착하시면 될 듯)
- 만천하스카이워크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와서 잘 깔려있는 데크 따라 한 40분(천천히 걷는 경우) 정도만 걸어가면 됩니다. 반나절 정도 루트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