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박마차 Aug 20. 2021

가는데만 가면 재미없잖아요.

아이와 제주도에서 먹은 <흑돼지>

 우리가 제주공항에 내리자마자 흑돼지를 먹기 위해 선택하는 곳은 늘 <늘봄 흑돼지>였다. 제주도가 고향인 신랑 친구의 추천으로 아이들과 제주도를 갈 때면 항상 찾는 곳이다. 늘봄흑돼지는 제주도 사람들도 기념일이나 지인을 대접할 때 찾는 곳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곳에서 제주도에 왔다는 것을 확인하고 여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늘봄흑돼지 바로 건너편엔 <흑돈가>가 있는데 이곳은 서울 삼성동 방문이 먼저였기 때문에 나의 이른 기대감으로 음식보다는 서비스 차이를 크게 느꼈다. 제주공항에 늦은 저녁에 도착한 방문이라 그런지 어린 아르바이트생들로 분주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같은 값이면 흑돈가는 그냥 서울로 가곤 한다. 제주도엔 서울에서 갈 수 없는 흑돼지집들이 많아서 서울에서 갈 수 있는 곳은 자연스럽게 탈락된다. 또 대각선으로 <돈사돈>이 있는데 원형 테이블과 등받이 없는 원형의자는 고깃집 감성을 살리며 먹을 수 있지만 어린아이들과 방문할 때는 이 또한 고려의 대상이 된다. 감성 살리려다 멘털이 바닥 날 수 있다. 식당을 선택하기 전 우린 아이와 함께라는 걸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제주공항 근처 흑돼지 전문점을 더 다니긴 했지만 맛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곳은 이렇게 세 군데다. 그리고 이 세 곳은 노형동에 모여있고 잘 찾아보면 한 음식점에서 다른 음식점을 볼 수 있고 걸어갈 수도 있는 거리다.

함덕 곱들락

 우리가 최근에 발견한 최애 흑돼지 전문점은 함덕해수욕장 근처에 있는 <곱들락>이다. 곱들락은 소노벨로 숙소를 정하고 아이들과 하루 종일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하며 점심도 근처 김밥집에서 포장해다가 아이들만 대충 먹이고 7시까지 물놀이를 하고 함덕 해수욕장에서 숙소까지 걸어와 아이들을 겨우 씻기고 나도 씻고 다시 곱들락까지 걸어가서 아주 늦은 저녁을 시작해서 그런 거였는지 고기가 달았다. 흑돼지를 다 먹고 난 후에 양념갈비를 추가했는데 약간 매콤함이 있는 갈비였지만 평소 김치찌개를 좋아하는 우리 아이들은 맛있게 잘 먹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파도타기와 스노클링이 고기에 달콤함을 추가시킨 건 아니였는지  제주도에 다시 가게 다면 꼭 다시 들러 그 맛을 확인해보고 싶다.

서귀포 흑한우명품관

 제주도에서 흑돼지가 아니라 소고기가 먹고 싶을 땐 <흑한우 명품관>으로 간다. 가격은 사악하지만 고기 맛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친정 식구들과의 제주도 여행 때 갔던 <한라축산정육식당>은 애월 숙소로 넘어가는 길에 들렀던 곳이다. 손주들 소고기를 먹이고 싶으신 할아버지 덕분에 모든 가족이 소고기를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곳이다. 크고 깔끔한 정육점이 소고기도 흑돼지도 자기가 원하는 걸로 골라먹을 수 있는 정육식당의 장점을 잘 살린 곳이다. 관광지 식당 같은 외관이라 처음엔 조금 미심쩍게 발을 들였지만 맛과 서비스는 아이들과 함께 먹기에 불편함은 없었.

 흑한우 명품관과 한라축산 정육식당 모두 세 번 이상 방문한 곳으로 제주도에서 소고기가 먹고 싶을 때 방문하는 목록에 포함시켜 놓은 곳이다.

 <태백산>은 애월 숙소에서 일정을 마무리하고 서울로 가는 비행기를 타러 갈 때 브런치 시간이 맞으면 찾아가기 좋은 곳에 위치해 있다. 흑돼지로 런치가 가능한 가족이라면 제주 여행 일정을 마무리할 때 갈만한 깔끔한 식당이다. 

 마지막으로 <돼지굽는정원 제주협재점>은 여름엔 피해야 하는 곳이었다. 여름휴가로 협재에 숙소를 잡고 협재와 능곡 해수욕장에서 물놀이할 때 <별돈별>에 갔다가 대기가 너무 길어서 방향을 틀어 돼지굽는정원으로 향했었다. 식당 앞에 도착했을 때 정문 외관은 반짝빤짝 관광지 간판을 하고 있었다. 신랑은 깜짝 놀라 차를 돌리자고 했지만 저녁시간이 한참 지났고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고  말하는 횟수가 늘어났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내가 먼저 들어가 확인해 보겠다고 하고 차에서 내렸다. 실내는 깔끔했고 일반 불판에 4배 정도 되는 크기의  불판 위에 고기와 야채들이 구워지고 있었다. 깔끔하고 맛있어 보여서 차에 있는 남편과 아이들을 불렀다. 우리가 이 가게를 선택한 이유는 글램핑이 콘셉트인 흑돼지 집이었기 때문이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를 상황으로 외부 글램핑장에 자리가 남아 있었다.


 흑돼지와 한치 세트를 주문하고 글램핑 감성을 살려 아이들과 흑돼지를 구워 먹는다는 기대감은 잠시.. 우린 모기에 물리기 시작했다. 신랑은 차로 가서 모기 퇴치 팔찌와 뿌리는 모기 퇴치제를 가져와 빠르게 아이들에게 뿌렸지만 틈에도 아이들은 모기를 4방씩이나 물렸다. 그래도 다시 마음을 잡고 글램핑장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캠핑 감성을 살려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불판에 불이 오르고 고기가 구워지기 시작하면서 글램핑 감성을 모두 사라졌다.


 글램핑장 안을 감싸는 연기로 고기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처음 불판에 올라가는 고기를 봤을 때 질 좋고 맛있는 고기가 분명했지만 여름의 더위와 불판의 열기와 함께 내 미각이 사라져 버렸다. 장소 선택도 탁월했고 고기 질도 좋았지만, 때를 맞추지 못했다. 유채꽃을 보겠다고 가을에 산방산엘 우르르 가는 꼴이였다. 봄이나 가을 하물며 겨울까지도 괜찮았을 것이다. 여름만 아니었으면 되는 거였다.


 캠핑 좀 다녀 본 신랑은 괜찮냐는 식장 주인의 에 "이게 글램핑 하는 맛이죠"라는 말로 예의를 갖췄지만 이미 신랑도 땀을 뻘뻘 흘리며 미각을 잃어가고 있었고 아이들은 숟가락을 놓은 지 오래였다.

<돼지굽는정원 제주협재점>

 여행을 할 때 음식은 아주 중요하다. 그 지역의 음식을 맛보며 지역을 느끼기도 하고 식당을 찾은 손님을 홀대할 수 없는 주인에게 주변 사정을 묻고 들으며 여행에 대한 도움을 받기도 한다.


 여행지에서의 음식은 집에서 익숙하게 고른 음식과 같은 맛을 보장하진 않는다. 요즘은 식당 사진과 평가를 확인하고 가기 때문에 실패할 확률이 많이 줄긴 했다. 그 대신 설렘 또한 줄어들었다. 우리는 오랜만의 여행으로 완벽함을 원하며 식당을 찾지만 모든 방법을 동원해 찾은 식당은 기대만큼 실망을 안기기도 한다. 실망하지 않으려면 10년 전부터 제주도 여행 때면 항상 찾았던  <늘봄흑돼지>만 가면 되는 일이지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지로 수없이 많이 선택한 제주도에서 매번 가던 곳에 가고 먹던 것만 먹으면 아이들은 제주도에 흑돼지 집은 늘봄 하나인 줄 알 것이다.


 아직은 우리를 통해서만 세상을 보는 아이들에게 익숙하고 안정적인걸 몹시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여전히 새로운 도전이 힘들지만 조금씩 숙해져 간다.


아무일도 생기지 않게 할 수는 없어요.
아무일도 없이 어떻게 살아요?
재미없잖아요.  

-<영화> 니모를 찾아서-


 

매거진의 이전글 YES! KIDS ZON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